알기房(문학외일반)

천상병의 기일을 그리면서,,,

길가다/언젠가는 2006. 4. 29. 02:07

 

천상병의 '새'를 읽고

18기 김보람

  시인......
  '시인'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의젓하고 고아한 모습의 지성인이나, 세상을 등지고 살면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광적인 행동을 하는 이인을 떠올린다. 물론 내가 시에 대해 무지한 것에서 나온 편견이긴 하지만, 이른바 '유명한' 시인이라고 해서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라곤 이육사나 윤동주같은 저항시인이거나 이태백이나 김시습 같은 광적인 작가들뿐이었던 것도 일조를 했던 것 같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이렇게 편협된 시각을 가진 나에게, 소박한 표지에 작게 박혀 있던 시인 천상병의 사진은 가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일그러진 얼굴에 마음대로 헝클어진 머리...... 고된 삶에 찌든 사회 하층민을 보는 듯했다. 그런 그의 사진을 처음 본 순간의 느낌은 정말 당황스럽고 약간은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보는 사진을 찍을 때에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예쁘고 멋있게 꾸며서 찍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나 자신이 초등학교 졸업 앨범을 찍을 때만 해도,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들이었는데도 모두들 들떠서 조금이라도 잘 나오게 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일들이 기억이 난다. 하물며 자신의 시집에 내는 사진은 오죽할까. 또, 그런 사진은 일반 사진관에서 찍는 것도 아니고 출판사에서 특별히 신경을 써주는 부분일텐데 어떻게 그렇게 찍을 생각을 했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조금씩 그 꾸밈없는 모습이 긍정적인 인상으로 바뀌게 되었고, 나중에 그의 외모가 손상된 이유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는 처음 내가 가진 섣부른 선입관이 몹시 부끄러웠다. 그리고 점점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 빠져드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정상인으로 보기 힘들 것 같은 모습으로, 내가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전형적인 시인의 모습을 완전히 탈피한 그런 모습으로, 천상병 시인은 나에게 다가왔다.
  성격 탓인지 나는 유난히 소박하고 솔직 담백한 멋을 즐긴다. 화려한 기교로써 날 휘어잡은 시인도 없진 않지만 내가 정말로 즐기는 시들의 작가들은 구수한 고향 냄새가 물씬 풍기는 친근한 어투를 가진 사람들이다. 감수성을 풍부하게 해 주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시어도 많지마는, 언뜻 거칠고 투박해 보이는 시어 하나 하나에도 어떠한 미사여구로도 흉내낼 수 없는 진한 뒤끝이 담겨져 있다. 천상병이 던져주는 시어 하나 하나에서 느껴지는 아린 듯한 감각이 바로 그것이다. 감정을 솔직하게, 그리고 상스럽지 않게 툭툭 내뱉는 듯한 그의 어투는 절묘한 시어들과 어우러져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 하나 하나 앞에 스스로 껍질을 벗어 던지도록 만든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시제를 가지고, 지극히 상투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그의 시가 특별한 것은 왜일까?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나는 '새'라는 시에서 찾을 수 있었다.

<새>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 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연약하면서도 희망을 상징하는 일반적인 시어 '새'이다. 어떤 시인이든 한 편의 시쯤은 뽑아낼 수 있을 듯한 시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의 새가 특별한 것은 그만이 가진 능력에 의해 다시 태어난 새이기 때문이다. 내가 시집의 표제시인 '주막에서'라는 시 대신 이 '새'라는 시를 선택한 이유도 이 시에서 느낄 수 있는, '천상병의 멋'이 배어있는 그의 '새'가 좋아서 였다. 새를 특별하게 만드는 그의 손길은 짧은 시 곳곳에 깊이 스며있다. 자신의 죽음 다음 날에 찾아오는 내일의 모습이라는 역설적 표현이 특별한 새의 알을 창조해 냈고, 짧은 시 안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는데도 불구하고 부드럽게 연결되는 작가의 심리 표현은 특별한 알을 더욱 특별하게 부화시키는 것이다.
  천상병의 시는 읽을수록 깊은 외침같다. 소리없는 아우성이라는 표현이 정말 적절하게 어울릴 듯 하다. 처절한 절규도 아니고 부드러운 속삭임도 아닌 힘찬 외침이다. 목청 터져라 부르짖는, 하지만 시끄럽지 않은 고요의 메아리 같다. 그는 자신을 부르짖고 있다. 어제의 반성과 내일의 희망을 부르짖고, 정열을 부르짖고, 때로는 현실을 냉혹하리만큼 투명한 눈으로 퍼 올린다. 그는 꾸밈없는 순수한 정열만으로 고되고 외로운 짐을 묵묵히 지고 있다.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매력이다. 순수함, 깨질 듯 선명한 순수함. 그 것이 내가 '새'에서 볼 수 있었던 진정한 그 만의 멋일지도 모른다.
  천상병의 '새'를 본 뒤, 천상병의 시세계를 접한 뒤에, 아이의 천진난만함과 지성이, 순수한 열정의 중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나 자신이, 천상병의 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무지도 아닌 자기 기만도 아닌 그만의 순수함의 끝에서 다시 날개짓하는 새가 되고 싶다.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날에도 정열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한 마리 새이고 싶다. 그럴 수 없다면 나의 '새'를 만들어 보리라. 작고 볼품 없지만 단단한 하늘의 꿈을 가진 작은 새 한 마리를......

 

 

귀 천(歸 天)

천상병 시 / 유종화 작곡 / 김원중 노래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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