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하루

밑에 관하여 / 김영남

길가다/언젠가는 2006. 4. 3. 00:28

밑에 관하여 / 김영남

 

 

나는 위보다는 밑을 사랑한다

밑이 큰 나무, 밑이 큰 그릇, 밑이 큰 여자……
그 탄탄한 밑동을 사랑한다

 

위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밑동도 다 넓은 것은 아니지만

참나무처럼 튼튼한 사람,

그 사람 밑을 내려가 보면

넓은 뿌리가 바닥을

악착같이 끌어 안고 있다

 

밑을 잘 다지고 가꾸는 사람들 ……
우리도 밑을

논밭처럼 잘 일궈야 똑바로 설 수 있다

가로수처럼 확실한 밑을 믿고

대로를 당당하게 걸을 수 있다

거리에서 명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밑이 구린 것들, 밑이 썩은 것들은

내일로 얼굴을 내밀 수 없고

옆 사람에게도 가지를 칠 수 없다

 

나는 밑을 사랑한다

밑이 넓은 말, 밑이 넓은 행동. 밑이 넓은 일……
그 근본을 사랑한다

근본이 없어도

근본을 이루려는 아랫도리를 사랑한다

 

 

* 1957 전남 장흥군 대덕읍 분토리 출생  
                         1985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97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정동진역> 당선으로 등단  
                         1998 시집 '정동진역(민음사)'

                  1998   윤동주 문학상(우수상)수상  
                         2001 시집 '모슬포 사랑'(문학동네) 
                         2002   중앙문학상 수상 

                         2004   문학과 창작 작품상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기획조정실에 근무.
 

'詩가 있는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자/이정록  (0) 2006.04.05
[스크랩] 제사-오봉옥-  (0) 2006.04.03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 백석  (0) 2006.04.03
[스크랩] 개망초/안도현, 이향아, 이상훈  (0) 2006.04.01
밥 / 천양희  (0) 2006.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