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 놈
장진영
엿장수 가위 소리가 들린다 대밭 뒤엎고 헛간 뒤집어 쇠붙이를 쫓는다
까맣게 타버린 양철 냄비의 쪼그라진 허기 앞에 입맛 다시며
거친 들녘 등걸에 걸다 부서진 쟁기 보습을 찾아내고는 보물이라도 얻은 듯 좋아했다
놀이에서 연필 하나 타본 적 없었던 눈뜬 봉사였다
여느 때처럼 오늘도 빈손이다
토방 위 가지런히 놓인 어머니의 흰 고무신이 눈에 박힌다
뽀얗게 닦여진 어머니만의 고운 방이었다
늘어진 엿판 위에 칼질이 시작된다 칼끝에 조각 난 어머니의 방은 실려
가고 혀끝에 머물었던 단맛이 흩어질 무렵, 머리끝 근심은 독새꽃 만발이었다
이미 목젖으로 넘어가 찾을 길 없는 헐어지다 외로움 겨워 향기 잃은
저승꽃으로 꽉 찬 방
유년의 한나절 한낱 단맛에 홀려 삼켜버린 어머니의 그 방(房)
*[시와사람]창간20주년 특집- 봄/여름 통권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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