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하루

[스크랩] 기러기 비행장 외 / 마경덕

길가다/언젠가는 2009. 10. 30. 21:17

 

기러기 비행장 / 마경덕

 

 

가끔 하늘의 길도 지워지는 법이어서

불시착한 텃새가 머물다 가는 호숫가 기러기 비행장

단골고객인 고니, 청둥오리는

멋진 활공으로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고

일간지 헤드라인으로 떴다

이륙과 착륙이 반복되는 곳, 새떼의 발톱에 걸려

번쩍, 호수가 들린 적도 있었다

 

스스스스… 바람 우는 소리

타국으로 자식을 보낸 사내도 한낮을 울었다

사나흘 갈대밭의 눈시울도 축축해서

갈대숲에 숨어든 연인의 엉덩이가 다 젖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행에 몰입

훈련을 마친 조종사들 발 씻으러 물가로 내려와 

하나둘셋넷……발바닥으로 수면을 치고 날아가고

축! 저공비행

둘러선 갈대밭이 플래카드를 흔들며 난리부르스를 추는 것도 이때,

기러기조종사들은 그때서야 발자국이 찍힌 호수를 내려다보았다

 

갈대바람을 허리에 두르던 초보파일럿들 

꼭두식전에 갈대밭이 기능증명서를 교부했다

지난가을 자격증을 남발해서

V자로 펼쳐지는 에어쇼에 참가한 늙은 조종사와

첫 비행에 나선 어린 조종사가 추락한 사고도 있었다

 

격납고가 텅 비었다

출국수속을 마친 호숫가 비행장이 수상하다

찬바람에 발목이 부러진 갈대밭이

추스르고 일어서서 마지막 깃발을 흔든다

출항(出航)이다!

한 무리 기러기 편대, 활주로 수면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똥커피 / 마경덕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는 똥에서 나온다.

 

  명품 코피 루왁(Kopi luwak)은 커피 열매를 까는 게 귀찮아서 숲에 널린 사향고양이 배설물을 주워, 게으른 자가 만든 커피라는데, 한해 수확량은 통틀어 500kg, 커피 한잔에 오만 원에서 십만 원인 커피 값은 순전히 똥의 힘이다.

 

  뱀장어처럼 미끈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야생 사향고양이, 누구에게도 길들지 않는 야성은 사타구니 분비물을 커피나무에 문질러 찜을 해놓았다. 흰 꽃이 지고 시벳(Civet) 향이 짙어지면 인도네시아 자바섬은 체리 빛으로 흐드러져 오밤중, 커피나무 두 손이 빨갛게 물이 드는데, 사람에게 먹히기 전, 주인 몰래 가지에 다닥다닥 매달린 새끼를 사향고양이에게 입양해주는데, 고양이는 소화되지 않는 씨를 그대로 쏟아내고, 똥에 섞여 사흘만 버티면 씨앗에서 눈이 트는데,

 

  인근 주민들은 해가 뜨기 전 샅샅이 숲을 뒤진다. 커피나무 치맛자락을 들춰내고 그늘에 숨겨둔 배설물을 모두 수거해간다. 사향고양이 침과 위액에 섞여 발효를 마친 커피 맛은, 부드럽고 은은해서 그야말로 꿈의 커피,

 

  루왁은 천천히…어금니를 적시며 온다.

 

  세상에서 제일 비싼 커피 맛은 밭이랑을 날아오르는 흙냄새, 흙 묻은 베적삼이 비에

젖는 냄새, 미처 눈을 뜨지 못한 생두의 눈물맛인데,

 

 

 

염천(炎天) / 마경덕


산기슭 콩밭에 매미울음 떨어진다
울음을 받아먹은 밭고랑 열무 바짝 약이 올랐다
상수리 그늘에 앉아 쓰르 쓰르
속 쓰려, 쓰려
혼자서는 속 쓰려 못산다고  
짝을 찾는 쓰르라미 울음이 대낮 콩밭보다 뜨겁다  
이놈아 그만 울어!
불볕에 속곳까지 흠뻑 젖은 할망구
등 긁어줄 영감 지심* 맬 딸년도 없어 더 속이 쓰리다
호미 날에 바랭이 쇠비름 명아주 떨려 나가고
청상으로 키운 아들이 죽고 콩밭짓거리**로
김치 담궈 올린 외며느리에게서 떨려 나온 할멈도
쓰름쓰름 다리 뻗고 울고 싶은데
그동안 쏟아버린 눈물이 얼마인지, 평생 울지 못하는
암매미처럼 입 붙이고 살아온 세월
슬픔도 늙어 당최 마음도 젖지 않고
콩 여물듯 땡글땡글 할멈도 여물어서 
이젠 염천 땡볕도 겁나지 않는다
팔자 센 할멈이나 돌밭에 던져지는 잡초나  
독하긴 매한가지
살이 물러 짓무르는 건 열이 많은 열무
손끝만 스쳐도 누렇게 몸살을 탄다
호랭이도 안 물어가는 망구도 살이 달고
열무같이 풋내 나던 시절이 있었던가
폭염 같은 세월에 쪼글쪼글 졸아붙은 할망구
생전에 영감도 못 본 엉덩이를 훌러덩 까고 앉아
밭고랑에 쫄쫄쫄 오줌을 눈다
오줌발에 발등이 젖은 참나무숲은
산그림자 따라 슬금슬금  콩밭으로 내려오고  
쓰르……쓰르……쓰르…

호미 날에 울음이 뚝 잘렸다  
해는 식어도 고랑 고랑 펄펄 끓고
하루치 울음을 퍼낸 뒷산이 적막하다

 * 지심 - `풀(草)`의 전라도 사투리 
 ** 콩밭짓거리 - 콩밭 고랑 사이에 심은 야채, 주로 김칫거리를 말함 . 전라도 사투리.

 

 

 

미친 대추나무 /  마경덕

 

 

   그 해 여름 산자락 폐가에서 만난 대추나무를 기억한다. 빈집 창문을 들여다보던 그 대추나무 머리가 산발이었다. 언제 감았는지 언제 빗었는지 도저히 빗이 먹히지 않는 떡진 머리였다. 밑동은 실했지만 대추 한 알 없는 빈 몸 여기저기 죽죽 면도칼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나무는 몇 번이나 팔목을 그은 모양이었다.

 

  컴컴한 유리창 너머 무엇이 살고 있었을까? 깨진 병이 발등을 찌르던 집, 비닐장판이 까맣게 눌어붙은 안방엔 누가 살았을까? 눅눅한 산그림자가 소리없이 마당까지 내려오던 집, 뒤란 우물처럼 서늘하고 깊은 집.
 
  한때 꿀처럼 살이 달았다는 그 나무. 으슬으슬 해가 지면 혼자 남은 집에서 머릴 쥐어뜯으며 울었다고 했다. 끝내 미쳤다고 했다.


 

 

연밥 / 마경덕

 

                                                 

줄기마다 큰 밥그릇 작은 밥그릇
그득그득 차지게 익었다

 

저 벌집 같은 밥그릇들

 

연못이 꽃을 피운 건 벌집그릇에
밥을 담기 위한 것

 

꽃의 두근거림, 햇볕과 바람과 가물치 입질소리로 버무린 밥
아침이슬과 빗방울로 뜸을 들인 밥

 

연못이 뻘 묻은 손으로 주발 뚜껑을 열고
오물오물 밥알 씹는 소리, 고소한 밥내가 쏟아진다
밥 떠먹은 자리 송송 구멍이 뚫린다

 

볕에 그을린 연못의 입 속으로 퐁!
떨어지는 연밥들

푸짐한 밥상에 빈 그릇이 늘어난다

 

 

/ 마경덕

 

  물이 마르자 꽃이 사라졌다. 따글따글 돌 구르는 소리, 물새울음도 들리지 않는다.

 

  저 주먹만한 몽돌의 나이는 아무도 모른다. 흐르고 흘러 먼 섬에 닿았다가 수천 년 파도에 굴렀다. 어느 바람이 손이 헐도록 바위를 쪼개고 다듬어 둥글었다. 따글따글 물에 부딪혀 모난 성질 다독여, 꽃을 피웠다.

 

  그냥 두고 와야 했다. 저 돌멩이가 바다의 살점인 줄 몰랐다. 얼마나, 천천히, 천천히… 품고 어르고 한 숟갈, 두 숟갈, 짠물을 떠 먹여 키웠는지 미처 몰랐다. 그 아름다운 돌무늬가 돌의 마음이었다. 물이 마르니 마음도 거두어갔다.

 

 

즐거운 찰흙놀이 /  마경덕

 

                                                   
   내 몸 어딘가에 흙의 유전자가 남아 있다. 밀가루반죽 떡반죽을 보면 자꾸 치대고 싶은 버릇은 내 손가락에 빗살무늬토기를 빚던 선조의 피가 흐르기 때문. 거슬러 거슬러 오르면 찰흙놀이를 좋아하던 그 분이 계셨고,

 

   땅에 비가 없고 초목도 없고 빈들에 안개만 자욱할 때, 심심한 그 분이 독수리 까마귀 코끼리 사자도 빚으시고, 고운 흙으로 남자도 빚으시고  알고 보니 말씀으로 지으신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도 흙이었고, 즐거운 공작시간 내가 만든 자전거와 모자와 꽃게의 재료도 흙이었고,

  갈빗대로 만든 가냘픈 여자만 물렁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여자이고,

 

  목욕탕에 가보면 기골이 장대한 남자는 금세 뛰쳐나온다.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인 여자는 사골을 우려내듯 뜨거운 탕에서 오래 견딘다.      
 
  늙은 어머니, 자꾸 바닥에 누우신다.  땅과 가까워질수록 몸이 편하시다. 거슬러 거슬러 가면 찰흙놀이를 좋아하던 어떤 분이 계셨고…

 

 

*출처/ 시인회의 - 이달의 시인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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