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제16회 현대시학 신인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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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댄스의 기원을 찾아서/전형철
1.
마른 눈을 비빈다
일식이 몰려올 것이다
2.
춤은 나선형으로 원을 그리는 주술의 핵심이다
잇바디가 가윗날 같은 검은 무당들은 태양과 그늘의 경계에서 빛의 심장을 꺼내 제를 올린다
그늘은 풍경의 테두리를 쥐며 이를 악문다 거울을 비추면 측백나무는 부르르 먼지를 털며 원을 그린다
3.
예민한 후각으로 길을 찾는다 세포는 피로감에 쉽게 노출되어 척추의 신경선을 자주 은폐한다 달과 태양, 별들이 흐르는 길은 일정하지만 무당들의 역사는 공중을 나누는 연줄처럼 변화무쌍하다
바람이 운동장을 달릴때마다 살갗에는 붉고 가려운 무덤들이 솟아난다
나는 무덤을 바라보며 점을 친다
눈자위가 찌릿하고 다시,
개미들이 몰려올 것이다
환기의 오페라/전형철
밀폐가 먼지의 더께를 키운다
빈 무대에 그녀 먼지 홀씨같이 긴장한다
지문마저 지워진 마른 잎을 따라
밤의 장막이 열리면
그녀는 천 겹의 손날을 세운다
불멸의 악보에는 별이 검게 빛난다
마르고 날렵한 아리아는
모서리에 모였다가 절정에 오른다
과월호 잡지 사이로 휘날리는
유행은 가도 그녀는 브라바(Brava)
나는 음악을 닫지 못하고
몽그라진 손으로 리듬에 맞춰
창문을 연다
은막의 스타가 빛의 파장을 따라 퇴장 한다
바람이 연출한 그림자극은 지금 파국,
화장을 지운 나의 히로인
도피 중이다
歲旱圖세한도*/전형철
몸속의 지류를 덮는다
흐르는 것들이 예사롭지 않다
며칠 간 금식한 속이 비어 가고 있다
만지기라도 하면
흙담처럼 허물어 내릴 듯하다
물의 길도 허물을 벗을까
속 깊은 체념, 가지런히 벗어 놓으면
한바탕 큰물 져 흘러 갈 수 있을까
썩지도 않고 갈증만 더해 가는 시절을
영글지 않은 풋감을 씹어 먹으며
오래 한 사람을 사랑하고도
몇차례의 발작을 하고도
新疆신강, 그 끝없는 사막
따귀를 올려붙이던 모래바람을 맞으며
오래 서 있다 알았다
말라 버린 샘 속에서
더듬이를 잃고 맴돌고 있다는 것 모래를 삼키면
선 채로 모래 기둥이 된다는 것
저린 손끝을 중심에 가만히 대 보면
잘 달궈진 불씨가 마른 종이 위에
길을 내며 흐르고 있다는 것
*歲旱圖 : 歲寒圖의 音借
화투치는 계절/전형철
간밤 일기예보는
대대로 혈통이 좋다는 꿈이네
겨울잠을 자다 말고 노련하게 거미줄을 치네 눈 내린 골목에 느리게 글
눈을 겨우 밝힌 글씨체로 구판장 노인정으로 모여 드네 꽃, 단풍 다지고
검버섯만 핀 노름판에도 벽지는 온통 3월 춘 매화 못 먹은 뒤패마냥 형광
등이 번쩍, 光이네 궁륭에 박힌 파리똥이 별자리처럼 족보를 잡고 빛나네
한 시절은 가도 판은 약속대로 돌아가고 가을 단풍놀이 갔던 바람이 슬쩍
개평을 뜯네
온도계 눈금 영점 아래에서 끗발을 세운 봄
본전도 못하고 가네
매포역/전형철
갈꽃들 올 찬 솜이불 되어
금강을 보듬는다
눈이 맑은 새 한 마리, 어딘가
둥지 트는 소리 수면 위를 난다
가을 간이역 언저리로 안개를 토해낸 강물은
목이 좁은 여울에서 긴 여행의 피로로 쿨럭댄다
강 건너 산에 업힌 초가 몇 채는 벌써
포대기에 싸여 잠들고 있다
불빛 두어 개가 떨리고
섬돌 위에 가지런한 신발들이
저희끼리 얼굴을 부빈다
새벽의 끄트머리, 강물은 또 가을별처럼
살얼음이 박히고
작은 둠벙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떠날갈 것이다
황홀한 거울/전형철
잿빛 물매암이가 부들 곁에서 죽어가네 숨은 들끊는 노을처럼 황홀 하네
주검을 감싸려 갈잎 하나 떨어지고 물매암이 움켜진 허방을 놓지 않네
부들의 품이 얼마나 따스한지 모르네 지고 있는 하늘이 피울음을 깨물
때마다 더운 피는 어지러운 내장 안에서 잠들려하네 잠든 때가 아닌데 자
꾸만 어둠이 몰려와, 날선 빗살무늬로 번져가네
한 번도 물든 적 없는 연못에 물매암이 죽어가네 안으로만 가라앉는 물
매암이 파문은 잠시 출러일 뿐 연못가로 밀려나 빛으로는 밝힐 수 없는 어
두운 거울,
검은 눈물 빛나네
<심사평Ⅰ>
詩性들의 맨발들을 만나다
역시 사물들의 실핏줄까지 詳考하게 만드는 가을이다. 바람의 결이 사뭇 달라서 감성의 살결에 이는 속무늬가 있다. 이를 일러 颯奭하다 했던가. 이런 계절에 집중적으로 싱싱한 시들을 읽는 일은 복된일이 아닐 수 없다. 백여 명 천여 편에 이르는 시를 다 읽고나니 서늘한 가을인데도 가슴이 땀으로 촉촉하게 젖어온다. 개운한 땀이다.고맙다. 시를 외면하지 않고 동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도 열망에 차있는 신인들이 이토록 줄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시의 체질과 그 미래를 미루어 짐작케 하는 혼쾌한 일이다.
진지한 예심, 본심의 과정을 거쳐 결국 마지막 남게 된 작품들은 전형철의「라인댄스의 기원을 찾아서」외 9편, 정운희의 「클릭, 투데이」외 10편, 한인숙의 「마이산」외 9편 등이었으며 유재영시인이 전담한 시조는 김창근의「가을 한낮」외 13편 등이었다. 특히 시조 응모 수가 매회 상승되고 있음은 본지의 기획에 부응하는 경향이어서 보람을 느꼈다.
전형철, 정운희, 한인숙 등의 시편들은 시어들이 담고 있는 의미나 이미지나 그 성률의 보법들이 여간 침착하고 심화된 것들어 아니어서 오히려 신인의 객기가 아쉬워지는완성도 높은 것들이었다. 정운희의 시편들은 의식의 흐름을 짚어가는 시어들의 결이 꽤 깊게 번지고 있기는 하나 그런 만큼 그 硬結性이 질겨서 시의 감성으로는 잘 씹히지 않는 거부감을 주고 있었다. 시어들이 너무 유약해서 의미나 이미지가 와해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서정적 균형을 유지하고 그것이 빚어내는 감동의 투명성을 주는 것은 역시 현대시도 외면 해서는 아니되는 시의 본성이라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인숙의 고전적 소재들이 자아의 내면과 만나고 있는 세계는 매우 유연하고 그 동일성의 이미지 획득에 별 문제가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갈등과 충돌의 과정이 없어 너무 손쉬운 획득의 소산들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결국 전형철의 시편들에 심사위원들의 눈길이 머물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특히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그의 시편들에서 한 편 한 편마다 정성을 다하는 그의 진정성과 흔들림이 없는 저력을 만날 수 있었음은 큰 수확이 아닐 수 없었다. 괜한 戱作 들이 없었다. 요즈음 많은 시인들이 이를 새로운 시의 自律性으로 오해하고 있는 전염의 징후가 전혀 없음을 중요하게 보았다. 「매포역」같은데서 보이는 <가을간이역 언저리로 안개를 토해낸 강물은/목이 좁은 여울에서 긴 여행의 피로로 쿨럭댄다>와 같은 대상들의 청각적 실체화도 질 좋은 서정의 집을 지어내지만, 춤과 음악에서 짚어내는 그의 눈길은 결코 예사스러운 것이 아니다. 흐르는 내면의 실핏줄 위로 걸어가는 그는 자신의 시성의 맨발이 거기 내는 발자국까지 아슬아슬하게 만나고 있다. <밀폐가 먼지의 더께를 키운다>고 그는 말한다. 그 <먼지의 더께> 위에 그가 지나간 맨발의 흔적들이 있다. 시의 진정성과 균형의 질서를 잘 간수하면서 그렇게 감성을 잘 운용해 가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정진규>
<심사평 Ⅱ>
신선한 생명성이 가슴 저리게하다
수많은 응모작 중에서 열 분의 작품을 놓고 정진규 시인, 이재무 시인과 함께 좋은 작품 고르기 위한 순간은 참으로 진지했다. 그 만큼 『현대시학』이 갖고 있는 위상과 앞으로 시의 위의를 지켜갈 좋은 시인을 찾는다는 책임감이 일상의 피로를 씻어내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라인댄스의 기원을 찾아서」외 9편을 응모하신 전형철 님의 신인상으로 추천하는데 서로가 아무런 이의 없이 합의했다.
전형철 님의 작품은 우선 언어를 잘 다루고 있었다. 언어가 곧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시인의 기본은 언어가 갖고 있는 외연과 내포의 속성에 대해 얼마만큼 잘 이해하는가에 달려있다. 우주와 생명의 원형질을 교묘하게 배합시킨 「라인댄스의 기원을 찾아서」는 그 이미지가 매우 신선하다. 라인댄스란 잘 알다시피 많은 무용수들이 한 줄로 죽 늘어서서 추는 춤이다. 이 일렬의 무용수의 춤에서 齒列이나 운동장을 달리는 바람, 그리고 제천의식에 참여한 무당을 연상케 한다. 이 모두가 천체의 운행처럼 살아 숨쉬는 하나의 운동성에 다름 아님을 말하고자 하는 시적 감각은 읽는 이로 하여금 예민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歲旱圖」의 경우, 추사 歲寒圖가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반면 여기서는메마른 사막을 배경으로 함으로써 인간이 갈구하는<몸속의 지류>를 찾아 가는 길이 곧 삶의 길임을 암시하고 있다.
오늘 우리 시단에서 신인들이 추종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번 응모작 중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문제는 적어도 시가 갖고 있어야야 할 기본적인 서정성과 시정신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는데 있다. 이 점에서 전형철 님의 「매포역과」「황홀한 거울」은 새로운 서정시란 무엇인가를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그의 시는 요란스럽지 않다. 과장이나 자폐현상도 없다. <눈이 맑은새>처럼, 물매암이 주검을 감싸려 떨어지는 <감잎>처럼 시인의 길을 나서는 신인으로서의 신선한 생명성에 가슴이 저려온다. 세계를 내면화 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발견의 힘이 시 한 편을 완성하는데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서도 그의 시는 우리에게 암묵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당선을 축하하면서, 앞으로 우리 시단에 좋은 시인으로 기억되기를 바래본다.
당선작 외에도 최종까지 읽힌 작품은 정운희 님의 「클릭 투데이」 외 10편과 한인숙 님의 「마이산」외 9편이었다. 두 분 다 앞으로 좋은 시인으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운희 님의 경우, 전체적으로 이미지들이 번득이면서 신선미를 갖고 있는 반면 너무 말이 많은게 흠이었다. 한 편의 시 속에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쏟아 내느라 힘들었겠지만 그보다 압축하는 일이 얼마나 더 어려운가를 이번 기회에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태풍의 눈>이 왜 무서운 힘을 갖는가를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점은 한인숙 님도 마찬가지였다. 소재 면에서도 새롭다는 인상을 주지 못했다. 특히 투고 작품의 시적 완성도가 고르게 두드러지지 않으면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주길 바란다. 아쉽게 탈락하신 두 분 외에도 함께 하신 모든분들에게 다음 기회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심사위원 허형만>
<심사평 Ⅲ>
뛰어난 시어의 부림
조석으로 서늘한 바람이 이는 계절이다. 절기처럼 정직한 것이 어디 있으랴. 가을이라는 절기는 한 해의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과 함께 깜냥 것 지어온 농사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 준다
시 농사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신인들이 부지런히 지어 올린 시의 농산물들을 대하며 옥석을 가리는 일은 매번 그렇듯이 여간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성과물들은 당락의 유무를 떠나 시 농사를 지어온 주체들에겐 모두가 한결같이 산고의 고통을 다해 분만한 것들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예심을 통과한 분들의 작품들 가운데 정운희 씨의 시편 「클릭 투데이」외 10편과 한인숙 씨의 시편 「마이산」외 9편 그리고 전형철 씨의 시편 「라인댄스의 기원을 찾아서」외 9편을 주의 깊게 읽었다.
정운희 씨의 경우 변화된 우리 문화 현실의 달라진 지형도를 순발력있게 시의 소재로 삼았다는 점을 높이 샀으나 그것이 형상 미학의 체계 속으로 부드럽게 습합되지 못했다는 점이, 한인숙 씨의 경우 무거운 주제의식을 무난하게 소화하고는 있으나 낯익은 고전적 소재가 오늘 이곳의 문제로 수렴되지 않았다는 점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전형철 씨의 시편들은 믿음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제출된 시편들의 질이 편차없이 고루 일정한 수준을 보여주었고, 무엇보다도 언어 장악 능력이 뚜렷하였다는 점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씨의 언어를 부리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일견 평범하고 진부해 보일 수 있는 소재들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는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하였다.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일부 시편들의 경우 그것이 소통의 장애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상상의 진폭을 넓힐 수 있었던 것도 씨 특유의 자재로운 언어 표현 능력에 기인된 바 크다고 사료된다.
모름지기 이름에 책임을 느낄 수 있는 시인이란 언어에 대한 남다른 자의식의 소유자라야 한다. 언어에 생명성을 부여하는 행위야말로 시인으로서의 일차적 책무가 아닐까? 씨의 소재들이 결코 새롭지 않으면서도 우리에게 낯익지 않은 새로움을 전해줄 수 있었던 것은 시인의 일차적 자질인 언어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씨의 시편들을 통해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부디 정진을 거듭하여 우리 시단에 굳건한 기둥이 되길 바란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낙선자에겐 심시만 위로를 보낸다
<심사위원 이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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