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본께 알겠더라... 쫄딱 망해본께 물맛이고 술맛이고 글맛이고 사람 냄새 조금 더 알겠더라 바닥 냄새가 징하게도 좋더라
햇밤을 거두다
6월의 산중에는 비릿한 밤꽃 향기 한창이다 산새들도 욕정의 끈을 풀고 울어대는 밤이다 달빛에도 화끈 달아오른 그녀 공기보다 가볍게 풀밭에 눕는다 식어가는 별빛이라도 삼켜야 했다 꽃이 진다 꽃 진 자리마다 열녀문은 열리고 꽃잎 사이 떨치고 간 머리칼은 몸을 엮었다 바람에도 다칠세라 두꺼운 가시 덫도 세웠다 산고의 여름 가고 9월이 몸을 푼다 신음소리에 숲도 새들도 잔뜩 긴장한다 가늘게 벌어진 자궁 문을 젖히고 툭, 툭 바람난 장끼도 깃을 접는다 바람도 숨 고르며 양수의 골을 쓰다듬는다 순산이다 동자승 머리통처럼 잘 여문 자식들이다 살갗 비비며 간난 했던 한여름 얘기 망태기에 가든한데 잴 걸음도 없이 잿밥 아래 제물로 보내야 할 자식인데
이렇게 살았으면
포수의 눈총 받아 추락하는 새의 가슴으로 같은 아픔으로 울어주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죽은 벌레의 깃털을 나르는 개미의 길을 막고 한줌의 유언을 얘기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어젯밤, 꿈자리 좋아 구겨진 지폐를 입에 물고 복권의 뒷장을 어루만지며 며칠의 들뜬 시간으로 서로를 사랑했으면
길가에 헛웃음치며 밤을 잃은 소녀와 밤새 불러본 노래에 한을 실어도 좋으련만
한 뼘도 안 된 애환의 땅은 억새 한창인데 그 아래 빛바랜 기억 걸고 살아도 좋겠다
노을과 마주하다
시는 유언이고 싶다 길가다 흘린 흰소리가 하루라는 길목 끝의 노을과 마주한다 저 붉은 비단 위에 낙서라도 하고 싶다 주홍 글씨 한 자 쓰기의 망설임은 지평선 넘어 바다에 스며들고 있다 손가락 굳어질까 두려워 움쩍거려 본다
슬퍼할 일 아니야
꽃이 지는 것은 바람 때문이 아니야 시절 때문도 아니야 향기 가득하고 더 하얗게 노랗게 제 색깔 찾았기에 시들었을 뿐이야
지는 꽃처럼 제 색깔 찾을라치면 터벅터벅 왔던 길 가야할 곳 있기에 마지막 꽃잎 진다해도 슬퍼할 일 아니야
'길가다 흘린 흰소리'를 남은 인생의 배낭 속으로 아물딱지게 간직했을, 진영이 형의 저 꿈꾸는 일탈의 길목 위에도 산소리 물소리 새소리들은 여여 하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그의 시업과 문운 위에도 붉은 치마 향은 꽃잎 같이 피어오르기를 다시 한 번 빌기로 한다 더하여 시집의 상재를 마음껏 축하드린다 -정윤천 시인
산 사나이답게 구름의 무게와 바람의 속도와 별의 눈물까지도 읽어내는 예리한 눈매에서 자주 놀랬던 나였다 아우가 숨긴 보석 같은 문장을 가슴 설레며 기대한다 -박동남 시인
비탈 오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시인, 산다는 것이 비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아는 시인, 그래서 비탈에 등을 기대어 품을 넉넉히 내주는 시인, 무주 산 밑, 오라버니가 서 있는 그곳이 열반이며 연화장 세계였고 우리 거렁패들의 무애가無碍歌장소이다 -황영애 시인
울음을 배경으로 깔고 장돌뱅이 노래와 반야심경을 구슬프게 불러제끼던 빡빡머리 장진영 시인의 시에는 짖꿎은 잡것 아닌 잡것의 슬픔이 홀연히 나타난 옛 연인처럼 곡진한 재미를 안겨준다 깜깜한 정적만이 바람 소리, 새 울음소리 드나드는 깊은 산속에서 어찌 사람이 보고프지 않겠는가 어찌 문학이 그립지 않겠는가 -김도연
흔들리는 흰소리라는 시만 읽어봐도 느껴지는 시인의 길고도 긴 호흡 아래 깊숙한 곳에 가라앉힌 그리움을 슬며시 끄집어내며 하루에도 수없이 들여다보고 한숨을 돌리고, 다시 살아가는 힘을 얻는 종교와도 같은 인생관을 느끼기도 한다 -최설란 시인
장진영 형님께서 시집을 출간하신다 거렁패는 어깨에 힘 빼고 가슴의 뽕도 빼고 신발 속 깔창도 빼고 척 빼고 빼고 나머지도 빼고 불알 두 쪽 맨 얼굴로 서로 몬났다고 웃는 거 아입니꺼! -남철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