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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비즈니스/박범신- 어미는 몸을 판다, 자식의 과외비를 벌려고

길가다/언젠가는 2010. 12. 11. 00:03

박범신의 한·중 동시 연재소설
부의 세습구조 정면으로 다뤄
“이젠 피튀기는 삶의 현장 쓸것”

 

〈비즈니스〉
박범신 지음/자음과모음·1만2000원

“자식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오욕이 가득한 화류항(花柳巷)으로 나가는 어미들이 있는 유례없는 나라가 내 조국이고, 그 어미의 가죽 채찍질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며, 세습되는 ‘귀족’들의 앞길을 열어주기 위해 오직 약육강식의 정글 속을 헤쳐나가는 전사로 길러지는 아이들의 나라가 내 조국이었다.”

박범신의 소설 <비즈니스>는 자식의 과외비를 마련하고자 몸을 파는 엄마라는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소재를 다룬다. 주인공 ‘나’는 중3짜리 아들의 학원비와 과외비를 위해 몸을 파는 자신의 행위를 비즈니스로 규정하며 스스로를 ‘비즈니스우먼’이라 칭한다. 잇따른 사업 실패로 삶의 의욕을 잃은 남편은 “당신 뜻대로 해”라는 말을 방패 삼아 자신의 무능과 무책임을 방치할 따름이다.

‘나’가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사내 역시 ‘비즈니스맨’을 자임한다. 그러나 그의 비즈니스인즉 소설 무대인 ㅁ시 부자들의 금고를 터는 일. 신출귀몰한 솜씨를 지닌데다 좀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타잔’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ㅁ시를 불안에 떨게 한다. 권력과 재력을 지닌 이들이 투기와 뇌물로 쌓아 올린 부정한 재물만을 노리는 타잔에게서는 홍길동이나 임꺽정 같은 의적의 면모도 보인다.

타잔과 ‘나’가 사는 곳은 ㅁ시의 구시가지. ㅁ시는 하루가 다르게 마천루가 솟아오르는 신시가지와 신층 부촌 ‘강남’, 그리고 낡고 쇠락한데다 거주 환경도 날로 나빠져 가는 구시가지로 크게 나뉜다. 소설 <비즈니스>는 신시가지와 구시가지 사이의 선명한 대립 구도 위에 서 있다.

“그들(=구시가지 사람들)은 신시가지 사람들의 파출부, 청소원, 짐꾼, 배달부, 미장이, 페인트공, 대리운전사, 용역업체 일용직 노동자, 아파트 경비원 등, 온갖 밑바닥 일을 위해 아침이면 해안도로를 타고 신시가지로 떼 지어 출근한다.”

구시가지에서 신시가지로 향하는 이 ‘루저’들의 행렬과는 반대 방향에서, 신시가지 사람들이 배출하고 배설한 온갖 냄새나는 쓰레기를 실은 트럭은 매일 구시가지 쪽으로 달려온다. 신시가지와 구시가지 사이의 이런 차이와 차별이 ㅁ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이며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데에 이 소설의 문제의식이 있다.


“부의 세습적 구조는 날이 갈수록 오히려 깊어졌다. 그리고 그런 구조는 전선조차 뚜렷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세계적이었기 때문에, 뿌리치거나 깨부술 방도가 전무했다. 뿌리치면 실패자로 세상 끝으로 밀려나야 했고, 깨부수려 하면 감옥에 가야 했다.”

나’와 타잔이 각자의 비즈니스를 택한 것은 실패자로 끝나지 않고자 하는 안간힘이요, 혼자 힘으로라도 차별적 구조를 깨부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시장의 선거운동을 도와준 대가로 구시가지 해안에 횟집을 열 수 있었던 타잔은 시장이 구시가지를 버리고 신시가지에 올인하면서 큰 타격을 입은 터였다. 집값이 폭락했을 뿐만 아니라, 해안도로를 달리는 쓰레기차에서 뿜어 나오는 유독가스 때문에 아내는 세상을 뜨고 어린 아들 여름이의 자폐 증세는 깊어졌다.

그런 처지임에도 오염물을 먹고 비틀거리는 어린 게 한마리를 보면서 눈물짓는 여리고 착한 심성에 ‘나’는 매료되고, 제 집과 식구 대신 타잔 부자가 거주하는 문 닫은 횟집을 청소하고 여름이를 보살핀다. 그렇지만 ‘나’의 이런 노력은 횟집 앞 도로를 질주하는 쓰레기차의 굉음과 쓰레기 매립지에서 날아오는 유독가스 앞에 무력하기만 하다. 이것은 견고하고 거대한 체제를 상대로 단신 투쟁에 나선 타잔의 돈키호테적 행보만큼이나 한계가 뚜렷하고 실패가 예견된, 비본질적인 처방일 따름이다. 위험을 수반한 모험이 파국으로 귀결된 뒤 작은 고깃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사라진 타잔, 그리고 이혼한 채 여름이를 거두는 ‘나’의 마지막 이야기는 체제를 상대로 한 두 사람의 싸움이 부닥친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말해 준다 하겠다.

작가는 “자본주의적 폭력이 인간성을 이토록 유린하고 있는데도 우리 문학이 그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며 “이 작품을 기점으로 앞으로 내 소설은 피 튀기는 삶의 현장으로 내려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범신의 <비즈니스>는 중국 작가 장윈의 <길 위의 시대>와 함께 한국의 계간 <자음과모음>과 중국 잡지 <소설계>에 동시 연재된 데 이어 이번에 역시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 출간되었다.

출처-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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