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하루

못을 박으며 - 송유미

길가다/언젠가는 2008. 10. 16. 01:33

 


못을 박으며

-----------------------송유미
       

 세상은 자꾸 희미해진다. 내가 박아온 진실들이 일제히 튕겨나오고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슬픔들이 반란을 시작한다. 구부러진 못처럼 쓸모없는 정의들이 또다시 하늘 속으로 날아가고 하늘은 시뻘건 녹물을 줄줄 흘리며 울고 있다.

 내가 가진 망치로 정확히 못을 박을 수 없는 삐걱거리는 일이 일어나고 내가 지어논 집들이 한 순간 무너지고 만다. 다시 일으켜 세우기까지 오랜 세월을 요하는 소중한 꿈과 진실들이 흩어지고 바람에 흩어지고 꽝꽝 대못을 박으며 십자가에 대못을 박으며 어쩔 수 없는 겨울비에 울고 있다. 갈증이 난다. 그대 가슴에 아픔도 없이 내리치던 욕설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산동네의 불빛에 못을 박으며 설움의 못을 박으며 어두워지는 밤하늘을 본다. 내가 지켜온 이유 없는 질서와 자유 일제히 녹이 슬어 흘러내린다. 이제 나는 어디서부터 새로이 못을 박으며 나의 자리를 지켜나가야 할 지 알 수가 없다.

 

*중앙대학원 예술대학원, 200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시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