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다흘린흰소리

[스크랩] 은행나무 아래서-장진영

길가다/언젠가는 2008. 1. 3. 02:13


은행나무 아래서 -장진영 온 종일 퍼부었던 햇살을 바닥에 구겼다가 얼굴 없는 열꽃으로 토해내는 한여름 밤, 새벽이 올 때까지 한길에서 아빠, 하며 부르는 환청이라도 애끓게 기다리다 땡볕 아래 몸집 부풀렸던 은행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노란 망토 휘감아 고운 고깔 맵시로 새들도 부르며 손짓하며 행인의 발길도 멈추게 했던 수년 동안 바람 앞에 사위 걸다 찢기면서 발가락 키웠던 무용담을 아비 없는 새끼라며 이리저리 채이고 구르다 저희끼리 살을 내려 제비 알 만큼 여문 황금빛 알몸으로 툭, 몸을 떨쳐 비탈길 아래로 굴러가고 있었다. 순간, 아니야, 너에게도 아빠가 있어, 줄 것이 조금은 남았는데, 욕심 고인 끝소리를 들키고야 말았다. <합동시집 '실바람에도 귀가 선다' 에서>
출처 : e 시인회의
글쓴이 : 미소 원글보기
메모 :

'길가다흘린흰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벽 술 한 잔으로  (0) 2008.01.30
어른이 되면 이렇게 살거야,  (0) 2008.01.14
한 해를 보내면서  (0) 2007.12.30
새벽 술 한 잔으로  (0) 2007.12.29
숭늉 한 사발의 찬가  (0) 2007.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