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명주 / 김명인
고치 짓느라 하루 종일 주름 접고 앉았던
어머님이 말씀하신다. 애비야, 시골집 내 장롱에
명주 한필 있으니 풀 뽑으러 내려가거든
그걸 가져다 다오
망초를 솎다 말고 문득 어머니 평생을 가둔 장롱 속에서
몇십 년 보자기에 싸여 누렇게 빛바랜 비단 한필
끌러낸다, 중국 어디라던가
황하가 범람할 때 물에 잠긴 뽕나무밭 우듬지 위로
허벅지 적시며 처녀애들 뛰어다닌다. 뽕잎
갉고 아직도 애벌잠인 어머니가 기어오르고
퉁퉁 분 젖어미들 쥐어짜면 거기 물안개인 주검들!
피륙에 내려앉은 뽀얀 누에들은 어디서 캄캄한
실꾸러밀 자아오는 것일까
펼쳐보니 물레를 돌리던 메마른 손금들이
갈피마다 헝클려 있다, 삭은 명주필로
활옷을 지어입고서
어머니는 또 어디론가 날아가시겠지, 이곳은 뽕밭 둘레라서
나는 아직 몇잠은 더 자야 한다
...........현대문학 2006년 8월호 발표
*김명인 시인 약력; 1946년 경북 울진 출생,
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동두천>, <머나먼 곳 스와니>, <물 건너는 사람>, <바닷가의 장례>,
<파문>등 다수
김달진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
문학상, 이형기 문학상, 지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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