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느리 바위 전설-
오랜 옛날 마음씨 착하고 효성이 지극한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모시고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아버지는 며느리와는 반대로 마음이 인색하고
고약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며느리가 밥을 지을 때는 쌀을 세어 줄 정도로
인색했습니다.
하루는 어느 가난뱅이가 동냥을 왔습니다. 그러자 시아버지는 동냥을 주기는커녕
무색을 주고 때려서 쫓아 보냈습니다. 다른 거지가 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자 어느 거지가 구두쇠가 했던 일을 관아(관청)에 일러 바쳤습니다.
"네, 이놈! 너는 어찌하여 불쌍한 거지들까지 못살게 했느냐?"
엄한 꾸지람을 듣고도 시아버지는 태연했습니다. "저는 절대 그런 일이 없습니다.."
시아버지가 시치미를 뚝 떼고 말하자 어쩔 수 없이 그냥 풀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고승이 그 집에 나타났습니다.
"불쌍한 사람입니다. 시주 좀 하십시오."
"네, 이놈!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얼씬거리느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시아버지는 시주는커녕 똥 한 바가지를 퍼와 고승에게 뿌렸습니다.
그리고선 한 편에 있는 쌀통에서 쌀을 퍼가라고 했습니다.
고승은 똥을 뒤집어 쓴 채 쌀통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 쌀통은 시아버지가 거지
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 준비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고승이 쌀통에 팔을 깊숙이 넣어 보았자, 쌀 서너 알 정도만 손가락 끝에 닿았습니다. 쌀통을 기우려고 했지만 마루 바닥에 쌀통이 붙어 있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고승은 며느리에게 다가갔습니다.
"배가 고파 그러하니 밥을 조금 주십시오."
"아버님을 용서하시고 받아 주십시오."
마음씨 착한 며느리는 시아버지 몰래 밥과 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부인, 부처님의 뜻에 따라 한 번의 기회를 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군요.
그러나 부인의 착한 마음씨에 보답하는 뜻으로 말씀 드리니
잘 들으십시오. 어느 날 어느 시에 천둥이 치고 장대비가 내릴 것이요.
그 때 부인은 저기 보이는 산으로 피난을 가되 절대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며느리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고승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마침내 고승이 예언한대로 맑은 날씨에 갑자기
구름이 끼면서 천둥이 치고 장대비가 쏟아졌습니다.
며느리는 고승이 일러준 대로 산으로 피신할 것을 마음먹고
시아버지께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나 재산에 욕심이 많은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말을 무시하고 듣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며느리는 아들을 등에 업은 채 산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한참을 올라가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시아버지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얘야, 며늘아! 나 좀 구해다오!"
너무도 애절하게 부르는 시아버지의 울부짖음에 며느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 순간 "과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며느리는 돌로 굳어져버렸습니다.
마음씨 착한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걱정한 나머지 석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때 며느리가 돌로 변할 때 수건이 날아간 곳을 수건 건(巾)자와 뫼 산(山)을
써서 건산리(巾山里)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며느리가 살았던 마을에 박(朴)씨와 임(林)씨의 두 성씨가 살았다
해서 박림소라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이 며느리 바위는 오늘 날도 억불 산에서
장흥 읍을 내려다보며 많은 사람들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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