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房(문학외일반)

[스크랩] 빈 하늘에 걸린 빨랫줄 하나 /변영림

길가다/언젠가는 2007. 3. 10. 21:36

쌀 사러간 남편은 만취해 꽃 한다발을…



정진규 시인의 아내 변영림씨 첫 산문집


시인이 몸으로 시를 쓴다면 시인의 아내는 몸으로 시를 살아낸다. 시 전문지 ‘현대시학’ 주간인 정진규 시인의 아내 변영림씨가 첫 산문집 ‘빈 하늘에 걸린 빨랫줄 하나’(북인 출판사)를 냈다. 시와 시인과 더불어 살림을 차려온 여인이 몸으로 겪어낸 날들의 기록이다.

시인의 아내는 고려대학교 국문과 1년 후배인 정진규를 만나 1961년 결혼했다. 10년간 전업주부도 했고, 30년간 교사로도 일했다. 이번 책에는 가난한 시인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로 살아온 세월, 중학교 국어교사 경험 등을 담은 글 50 편이 실렸다.

“훗날 내가 떠난 뒤 아이들이 엄마의 생각을 알고 싶어할 때 읽으면 좋겠다 싶어 이런저런 생각을 글로 남겼습니다.” 원래 올 가을 낼 생각이었으나 “책에 시어머니 글을 한 편 곁들이고 원고료라며 용돈을 드렸더니 시어머니가 책을 빨리 보고 싶다고 하셔서 출간을 서둘렀다”고 말했다.

남편이 고향에 집을 짓겠다며 “어떤 집을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변씨가 보낸 쪽지 글이 책 제목이 됐다. ‘빈 하늘에 걸린 빨랫줄 하나와 원추리, 채송화가 둘러져 피어 있는 장독대가 있는 집 그리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집’이라고 적어 건넸더니 정 시인은 그 글로 ‘빈 하늘에 걸린 빨랫줄’이란 시를 지었다.

이번에 실린 글 가운데 ‘장미 한 다발과 귤 한 봉지’는 가난한 시인의 아내가 이 시리게 살아낸 삶들이 박혀 있다.

40여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 아이가 배고프다고 보채자 정 시인은 “원고료 받을 것이 있으니 쌀 사오겠다”고 나갔다. 새벽 2시. 남편은 술에 취한 채 장미꽃 한 다발과 귤 한 봉지를 들고 돌아왔다. 남편 가방을 열어 보니 쌀은 없고 책만 가득했다.

변씨는 이번 책에서 “혼자 싸워온 늙은 병사 같은 남편”이란 말로 함께 살아온 세월의 무게를 얹어 남편을 위한 응원가를 불렀다.

김태훈기자 scoop87@chosun.com -조선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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