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골 시편 - 민달팽이 / 김신용
냇가의 돌 위를
민달팽이가 기어간다
등에 짊어진 집도 없는 저것
보호색을 띤 갑각의 패각 한 채 없는
저것
타액 같은, 미끌미끌한 분비물로 전신을 감싸고
알몸으로 느릿느릿 기어간다
햇살의 새끼손가락만 닿아도 말라 바스러질 것
같은
부드럽고 연한 피부, 무방비로 열어놓고
산책이라도 즐기고 있는 것인지
냇가의 돌침대 위에서 오수(午睡)라도 즐기고 싶은
것인지
걸으면서도 잠든 것 같은 보폭으로 느릿느릿 걸어간다
꼭 술통 속을 빠져나온 디오게네스처럼
물과 구름의 운행(運行) 따라
걷는 운수납행처럼
등에 짊어진 집, 세상에게 던져주고
입어도 벗은 것 같은 납의(衲衣) 하나로 떠도는
그 우주율의 발걸음으로
느리게 느리게 걸어간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아내가 냇물에 씻고 있는 배추 잎사귀 하나를 알몸 위에 덮어주자
민달팽이는 잠시 멈칫거리다가, 귀찮은 듯 얼른
나뭇잎 덮개를 빠져나가버린다
치워라 그늘!
.......문예중앙 2006년 봄호 발표작
김신용 시인 약력
*1945년 부산 출생
*88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
*시집; <버려진 사람들>(88년), <개
같은 날들의 기록>(90년), <몽유 속을 걷다>(98년),
<환상통>(2005년)
*소설 ; <고백>(94년), <기계 앵무새>(97년)
*천상병
문학상(2005년)
*2006년 미당문학상 후보작 ‘도장골 시편-민달팽이’ 외 3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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