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국문학과 졸업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 마른 수수깡의 平和 (1965)
有限의 빗장(1971)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1977)
매달려있음의 세상(1979)
비어있음의 충만을 위하여(1983)
연필로 쓰기(1984) 뼈에 대하여(1986)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1990)
도둑이 다녀가셨다(2000),
몸詩(1994)
본색(2004)
한국시인협회상· 월탄문학상· 현대시학작품상 수상
시전문지 월간『現代詩學』주간
안개
이른 새벽
내가 아직 잠들어 있는 동안
우리 집에 제일 먼저 당도해 있는 건
한 병의 우유와
조간 한 장
풀밭도
지나왔는지
촉촉이 이슬에 젖어 있었다
이로써 오늘도 안녕이었다.
내 일용할 양식은 언제나 든든했다
한 병의
우유만으로도
내 삼시 세끼는 넉넉하였으며
한 장의 조간만으로도
내 영혼의 가난을 다스릴 수 있었다
허지만 이 가난한
용납이
요즘은 어려워진다
내가 깨어 있는 동안에도 당도해 주지 않았다
하늘나라의 통신에 의하면
이른
새벽길을
정체불명의 안개가 가로막는다는 것이었다
나날이
안개의 숲이 깊어만 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찌하리,
이제는
나도 마중을 나가야만 하겠다
그간 나의 헛간에서
잠들어 있던 단단한 골격의 도끼
그가 가장 완강하게 일어서고
아아,
마침내
한 그루씩 넘어지는 안개의 벌목.
이제는 나도 마중을 나가야만 하겠다
슬픔
- 알 44
몸은 튜브야, 오늘 아침
새 치약의 뚜껑을 열면서 몸은 튜브라는
믿음이 왔어
열심히 짜내자는 생각을 했어 내가,
나를
짜내자는 생각을 했어
이젠 네가 나를 짜낼 생각을 그만두었으니까
그렇게 되었으니까
우리들의 사랑이 이젠
그리움의 경영만으로
족하게 되었으니까
그래야 하니까 伏地不動 그래야 하니까
(웬일일까, 그 많은 소들이 오늘 아침 일시에 그 뽀얀 젖들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기별이 왔다 음악을 틀어줘도 伏地不動,
기
별이 없다고 했다 동무의 목장이 큰 걱정이다)
물론 슬프지, 슬픔은 슬픔으로 밀고 갈 수밖에!
비누
비누가 나를 씻어 준다고 믿었는데
그렇게 믿고서 살아왔는데
나도 비누를 씻어 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몸
다 닳아져야 가서 닿을 수 있는 곳,
그 아름다운 소모(消耗)를 위해
내가 복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누도
그걸 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침내 당도코자 하는 비누의 고향!
그 곳이 어디인지는 알
바 아니며
다만
아무도 혼자서는 씻을 수 없다는
돌아갈 수 없다는
나도 누구를 씻어 주고 있다는
돌아가게
하고 있다는
이 발견이 이
복무가
이렇게 기쁠 따름이다 눈물이 날
따름이다
우리 집 쓰레기통은 네 개
저로서는 과분하게도 우리집 房이 네 개입니다 하나는 우리 內外가 쓰고 하나는 저의 長男이 쓰며 하나는 제 사랑스러운 딸이 또 하나는 제 막내가 외할머니와 함께 쓰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네 개의 쓰레기통을 버리는 것이 저의 소임입니다 무심코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막내와 외할머니의 쓰레기통엔 졸음에 겨운 옛날 이야기의 꼬리가 버려져 있고 나의 딸의 쓰레기통엔 한밤내 만난 꿈의 꽃잎 하나가 실로 부끄럽게 떨어져 있으며 나의 長男의 쓰레기통엔 英雄 몇 명이 무릎 꿇어 깊은 잠에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 內外의 쓰레기통은 언제나 비어 있습니다 버릴 것이 없사오며 없사온 까닭인즉 저들의 쓰레기통을 채워주고 다시 채워주어도 모자라는 탓이오며 용서를 바라옵기는 가득히 비어 있는 충만을 또한 사랑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 세상의 쓰레기통 속엔 무엇이 버려지고 있는지요
플러그
―알 2
이번 여름 전주 덕진공원 연못 가서 햇살들이 해의 살들이 이른 아침, 꼭 다문 연꽃 봉오리들마다에 플러그를 꽂고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 이내 어둠들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좀 지나 연못 하나 가득 등불들 흔들리고 끄집어낸 어둠의 감탕들을 실은 청소차들이 어디론가 바삐 달려갔다 뒷자리가 깨끗했다
나도 플러그 공장을 하나 차리리라 마음먹었다 그대들의 몸에 그걸 꽂기만 하면 원하는 대로 좌르르르 빛의, 욕망의 코인들이 쏟아져나오는 슬롯머신! 햇빛기계! 플러그 공장을 독과점하리라 마음먹었다 플러그를 빼앗기고 모두 정전상태가 되어 있는 어둠들에게 나는 은빛 절정이 되리라 폭력을 쏘는 폭력! 폭력의 대부가 되리라 마음먹었다 뒷자리가 깨끗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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