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양복 있어요"
강화도 시인 함민복 7년 전 상 타던 날
딴에 신경 써 입고 갔는데 …
주최측 직원 힐끗 보더니 "얼른 옷 갈아입고 오세요"
연말 또 시상대 설 함 시인
딴에 신경 써 입고 갔는데 …
주최측 직원 힐끗 보더니 "얼른 옷 갈아입고 오세요"
연말 또 시상대 설 함 시인
영화배우의 시상식 의상만 화제가 되는 건 아니다. 시인 함민복에게도 시상식 의상은 각별하다.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곡진하고 아릿한, 하여 가장 함민복다운 사건 말이다. 사건은 1998년 12월 어느 날 일어났다. 문화관광부가 주는'오늘의 젊은 예술가 상' 시상식에서였다. 시인 가운데 처음으로 강화도 시인 함민복이 그 자리에 서는 날이었다. 십 년 전 시인은 생면부지의 강화도로 들어갔다. 시적 영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서울에서 살 돈이 없어서였다. 언젠가 잠깐 들렀던 강화도 인상이 나쁘지 않았고 마침 동막 해변에 허름한 농가가 비어있어 월세 10만 원에 들어앉은 것이다. 거기서 시인은 동네 사람들이랑 술 마시고 고깃배 타고, 그러다 시상 떠오르면 종이에 시를 써 빨랫줄에 걸어놓고, 쌀 떨어지면 빨랫줄에서 시 몇 수 후두두 떼어 출판사 갖다주고, 그래서 돈 생기면 다시 술 먹고, 그렇게 살았다. 수상 통보를 받은 건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한데 문제가 생겼다. 마땅한 옷이 없었다. 그때 시인은 외투 두 벌 중에 그나마 나은 흰색 파카를 걸치고 거울 앞에 섰다. 딴에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고민은 그치지 않았다. 지퍼를 어디까지 올려야 예법에 맞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지퍼를 끝까지 올려야 하나, 목 아래서 멈춰야 하나, 갑갑한 듯싶은데 다 내리는 건 어떨까. 식장으로 가는 버스에서도 그는 지퍼만 만지작거렸다. 안내 데스크 앞에 서서 자신을 소개할 때 시인의 파카 지퍼는 목 아래쯤 걸려 있었다. 뿌듯한 표정의 시인을 훑어본 뒤, 주최 측 직원이 말했다. "얼른 옷 갈아입고 오세요." 언젠가 시인이 무용담 마냥 이 얘기를 꺼냈을 때 일순 숙연했던 것 같다. 그때의 숙연함을 잊지 못해 찾아갔던 것이다. 그랬더니, 전혀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나, 양복 있어". 예의 해맑은 웃음과 함께였다. 지난해 성탄절 직전 동네 청년의 주례를 봤단다. 주례 선생님께 양복 한 벌 해드린다는 신랑의 호의를 단호히 뿌리치고 백화점서 거금 30여만 원을 들여 양복을 샀단다. 마침 쓰나미가 닥쳐 신혼여행이 차질을 빚자 동네가 수군댔단다. 총각이 주례 서 하늘이 놀랐다고. 문단에선 그를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사는 마지막 시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정작 그는 "좀 더 단순해지고 싶다"고 말한다. 올 초 펴낸 수상 시집 '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에서도 그는 "뻘은 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준다"고 노래했다. 시인 함민복의 양복 입은 모습이 궁금하다면 시상식 열리는 28일 오후 5시 서울 신사동 민음사로 가시라. 양복 맵시는 자신 있는데 넥타이 맬 줄을 몰라 걱정이란다. 강화도 글.사진=손민호 기자<ploveson@joongang.co.kr> ![]() |
2005.12.07 20:48 입력 / 2005.12.07 21:12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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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진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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