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합시다

[스크랩] 詩가죽어가는 이유

길가다/언젠가는 2006. 1. 14. 21:34
*시(詩)가 죽어가는 이유<<< 문화일보에서 퍼온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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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인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이야기해서 많은 독자계층을 가지고 있는 서민들 의 시를 쓰는것이 아니라 몇 몇 선비와 학자들... 그리고 비평가 들의 비평을 받기 위한 귀족시에 있다.
대충이 외면하는 시... 서점에 가면 시집을 사서보는 이가 거의 없다.
그 어려운 시를 누가 읽겠는가?

사실, 시란... 우리 민중속에 뿌리 깊게 뻗어 온 희노애락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신라시대 향가로 발전한 시가는 고려시대의 경기체가.시조. 조선시대 의 시조와 가사로 발전, 우리 백성들의 마음을 달래거나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근대시의 출현까지만해도 국문학적으로 볼 때만 백성이 흥얼거리는 시였다. 그러나, 현대시의 출현은 정체불명의 난해한 시로 인하여 독자 들은 점 점 외면하고, 그리고 몇 몇 계층만 읽혀지는 장르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또하나...검증받지 못하는 시인들의 출현이다!
과거 일간지를 통한 신춘문예와 그리고, 몇 몇 안되는 전통적 문학 잡지로 일년에 약~30여명 안팍의 시인들이 탄생되었다.
작금의 현실을 보라~!!!
알지못하는 난립하는 문학잡지들은 저마다 책을 떠넘겨 팔아서 어려운 재정을 꾸려나갈려고 일년에도 몇 백명의 신인들을 신인상이니... 추천이니... 하면서 마구 양성해내고 있질 않는가!

그 대표적인 예로...
월간-시문학의 경우 매월 3~5명의 신인시인들을 등단시켜며
특히, 월간-시사문단은 매월10~17명이나 불량시인들을 양성해 오고 있다.
신인상 작품을 보며는 정말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월간-한국시도 위와 다를 바가 없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문학잡지를 마구 양산하여 시인을 꿈꾸고 있는 아줌마 시인의 심리를 이용하는 신생 문학잡지도 문제이다.
이들 문학잡지들은 불량시인을 양성한 후... 책만 팔아 먹고 짧게는 창간호에서 종간되거나 길어야 3년을 못 버티는 경우가 현실이다.
창간된지 일년도 안되는 문학잡지들은 왜 그리도 신인상 또는 추천 등단작가들을 많이 양성해내는지 깊이 반성해 볼 일이다.

*시 전문잡지로는 시사랑, 열린시학, 시로여는세상, 시인, 다층, 시선, 시와사람, 시와사상이 그렇고......

*종합문예지로는 뜨락문학, 사계문학, 문학인, 문학나무, 문학수첩, 문학선, 리토피아 등이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문학의 권력이다.
자기세력을 확보하고자 타 문예지로 등단한 작가들은 전혀 인정하지 않고 울타리를 쳐가며 발표의 장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다.
세칭-일류 잡지라는 문학사상, 문학동네, 작가세계, 세계의문학, 창작과비평, 현대문학. 현대시. 현대시학 등이 그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특히, 현대시의 경우... 현재의 문단 권력화도 모자라 [시를사랑하는사람들]이라는
자매지를 통하여, 그래도 지방에서는 검증되고 중견급으로 활동하고 있는 문인들을 대거 영입하여, 거대한 문단권력을 형성하는 한편, 지방문단을 황폐화 시키고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은...문학잡지로 등단 한 신인들의 신춘문예의 중독이다!
이들은, 국내유수의 문학잡지로 이미, 등단을 하였으면서도 연말에 각 일간지에서 실시하는 신춘문예에 응모하여서 당선된 사례들을 들 수 있다.
*문학동네로 등단한 이 모 시인은 동아일보로...
*작가세계로 등단한 황 모 시인은 조선일보로...
*현대시로 등단했던, 우 모 시인은 한국일보로...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하였던, 김모시인은 중앙일보로 재 등단하는 등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적되는 문제점은...신인상에 대한 상금이다.
그래도, 작가세계.문학사상,문학동네, 현대시, 시를사랑하는사람들. 시안 등은 특별고료라는 명분으로 상금을 주고 있지만, 그외의 문학잡지사들은 상금은 커녕 오히려, 책을 몇십권에서~100여권씩도 넘게 구입하게 하고, 그 것을 마치 의무적 관례형식으로 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비평가님께서 2003,09,17일자에 남기신 글입니다. *** 문화일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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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 90년대까지만 해도 문학을 꿈꾸는 이들 손에는 갖가지의 책들이 손에 들려 있었다.
필자 역시 학창시절 문학 서적들에 의해 꽤 흥분과 설레임을 가졌고 학생들 사이에선
읽던, 읽지 않던 한번쯤은 자신의 옆구리나 손에 책을 매만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국시단의 오늘을 시의 전성기로 보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시인의 수효가 만 명을 헤아리는 데에 이르렀고, 수많은 시집과 시지(詩誌), 그리고
시동인지 들이 매일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그렇게 평가할 만도 할지 모른다.
그러나 얼마전 모 신문사에서 발표한 내용처럼 시집을 사서 읽는 독자들은 거의 없다.

이런 문제점이 원문에 말한 것처럼 시가 어려워서일까?
또 검증받지 못한 시인의 등단과 작금 한국문단의 작태 때문인가?
필자는 이 원문에 반기를 제기 하고 싶다.

다수의 시집을 몇 십만 부 찍을 수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다.
대형 서점에서 매달 시집 베스트셀러 순위를 따로 매기는 나라도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다. 해마다 출간되는 시집의 수도 엄청나지만, 한두 해에 10판 이상을 찍는 시집도
상당수 출간된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홀로 서기}를 필두로 하여 100만 부 이상 팔려나간 시집도 여러 권이니
우리 나라는 시인의 왕국, 시의 나라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상업적 측면에서 성공을 거둔 시집이 많다고 하여 국민의 시에 대한 사랑의 체감온도가
서정윤의 {홀로 서기}와 류시화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의 성공과
더불어 갑자기 뜨거워졌고, 그 뜨거움이 오늘날 21세기에 들어서도 지속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필자는 현재에 들어서 독자가 시집을 외면하는 이유를 크게 두가지로 본다.

첫번째로 상업적 연시집의 등장이다.(이승하의 평론가 베스트셀러의 허와 실)
독자층의 확대와 문학의 문화적 영향력의 측면에서 '문학의 시대'로 간주해도 좋을
1980년대의 우리 시단은 초대형 베스트셀러 시집을 몇 권 갖게 된다.
250만 권이 팔렸다는 {홀로 서기} 외에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김초혜의 {사랑굿},
김대규의 {사랑의 팡세} 등이 그것이다.
1976년에 나온 이해인의 {민들레의 영토}도 1980년대에 수십 판이 나간 시집 중의 하나다.
1990년대의 베스트셀러 시집은 류시화가 여러 권을 점하고 있다.
그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와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같은 시집 외에 번역한 책도 예외가 없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리는 저력을 발휘하였다.
이밖에 이정하의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와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예반의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 용혜원의 {네가 내 가슴에 없는 날은}과
{그대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원태연의 {원태연 알레르기}와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등이다.
이들 시집은 낙양의 지가를 올린 것 외에도 이성(혹은 절대자)에 대한 사랑과 이별, 그리고
그 뒤의 그리움을 노래한 시(이하 줄여 '戀詩'로 표기)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우리 시문학사에 연시의 전통은 1925년에 출간된 소월의 {진달래꽃}과 1926년에 출간된
만해의 {님의 침묵}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분들의 시가 많이 팔린 연시집이라고
하여 '상업적'이라는 수사를 붙여 비판을 가할 수는 없다.
그럼 '상업적 연시'라는, 다분히 비판적인 어조로 언급될 수밖에 없는 시집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필자는 지난 10여 년 동안 출간된 시집 중 베스트셀러 순위의 상위를 한동안 지킨 많은
시집의 이름을, 출판사명·저자명과 함께 일일이 나열하면서 출판사의 속된 상업성에
비난의 화살을 쏘아댈 수도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 한 권의 시집은 하나의 상품임이 분명한데, 많이 팔렸다는 사실
때문에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 있다.
분석이 전제되지 않은 비판은 설득력이 없으므로...- 원문 -

독자가 처음 접하는 상업적 연시의 느낌은 각별하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접해온 어렵고 난해한 시에 비해 읽기 편하고 쉽게 받아드려지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쉽게 받아드려진 시 만큼 그 식상도 빠르다. 더 나아가 '시가 모두 거기서 거기'
라는 느낌을 주게 된다.


지금 나는 누군가 절실히 그립습니다.
혼자란 사실이 너무도 싫습니다.
나이를 들어가면서 더욱더 느껴지는 이 고독.
이제는 혼자 있기를 원치 않건만
세상은 언제나 나를 외톨이로 만들며,
그대로 혼자 있는 시간을 필요하게 하며
진실된 마음을 더욱 그립게 합니다.
―박렬, <만남에서 동반까지 6―사랑을 찾습니다> 1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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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저어도 바람이 일지 않는
이별의 적막함이여

고함을 쳐도 소리가 막힌
이별의 무서움이여

그대여
손을 흔들지 마라.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떠나는 사람은 아무 때나
다시 돌아오면 그만이겠지만
남아 있는 사람은 무언가.
무작정 기다려야만 하는가.

기약도 없이 떠나려면
손을 흔들지 마라.
―이정하, <사랑의 이율배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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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우리가 꿈이 무엇인가를
알았을 때,
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빛나는
이유를 알고 싶었지.

…(중략)…

친구야!
우리들의 꿈이 현실이 되었을 때,
커다랗게 웃었지.
우리들의 꿈이 산산이 깨져버렸을 때,
얼싸안고 울었다.
욕심 없던 날
우리들의 꿈은 하나였지.
―용혜원, <네가 내 가슴에 없는 날―친구야 8> 1, 3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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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적 연시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랑과 이별, 우정과 진실의 노래는 이렇듯 유치하기 짝이 없다.
시적 수련의 흔적은 도무지 느낄 수 없는 대신 편마다 어설픈 감상이 넘쳐나고 있다.
그런데 유치함과 감상성이야말로 독자의 감정에 강력히 호소하는 힘을 발휘함으로써
이들 시집을 장기 베스트셀러가 되게 한다.

90년들어 인터넷의 급속한 발전으로 유치한 상업적 연시로 인해 독자가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즉 독자가 시인이 되는 것이다.
이른바 저렇게 쉽게 쓰는 시 나도 쓸 수 있다는...

시 공부라 하더라도 지식 습득이 아니라 인격의 고양 차원에서 논의하는 수업,
{詩經}의 시와 호머의 시를 일부분이라도 배워 동서양 시의 역사적 변천을 알게 하는 일, 시가 왜 탄생했고 온갖 문예사조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가를 대강이라도 알게 하는 일, 시의 존재 의의를 깨닫게 하는 일 등 시를 어렵게 배움으로써 독자는 시에 대해 동경과 거부의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갖게 되야 한다고 본다.

독자가 시인이 되는 현실인데 과연 누가 있어 시집을 사려 들겠는가?

두 번째로는 분별력 없는 아류들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우리 시단을 이렇게 만든 데 기여한 두 사람의 선배 시인을 지적하라면
서슴없이 김 수영과 김 춘수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공히 전통적인 시법에 반기를 든 분들이다.

김수영의 작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자면 우리시의 폭을 넓혔다고 할 수 있다.
시어와 시의 소재들을 개방하여 시의 영토를 확장했다.
속어와 비어(卑語), 외래어 할 것 없이 끌어다 썼고, 일상 속에서 그가 만난 사소한
체험들도 싯거리로 삼았다.
그는 대상과 표현에 구애받지 않고 제멋대로 썼다.
좋게 말하면 무애(無礙)한 자유인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건방진 안하무인(眼下無人)이었다.
그는 의도적으로 시의 위의(威儀)를 떨어뜨렸다고 할 수 있다.
원래 시는 귀족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시의 위상을 서민문학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김춘수 시의 의의는 소위 `무의미의 시`라는 데에 있다.
무의미 시의 특징은 한마디로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비현실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구상(具象)의 세계를 거부한 비구상화가들의 발상과 궤를 같이 한 것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그는 의도적으로 현실적 정황을 파괴하여 낯설게 만든다.
거기에는 어떠한 지상적 논리와 질서도 배제된다. 말하자면 절대무비의 세계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은 세계를 만들어냈다는 데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김춘수 역시 `무의미의 시`로 한국시의 영역을 넓히는데 기여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김수영과 김춘수의 작품들이 전통적인 시와는 달리 낯설었기 때문에
몇 비평가들과 잡지들의 주목의 대상이 되었던 것인데,
분별력이 흐린 시인들이 이들의
작품을 마치 시의 전범으로 받아들여 그들의 아류가 된 것이다.
그래서 시를 제멋대로 쓰는 것이 마치 멋인 줄 착각하고, 논리를 무시한
괴기스런 표현이 수준 높은 작품인 것처럼 잘못 인식하는 풍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상한 악기를 하나 만들어냈다고 가정하자.
새로운 그 악기는 물론 음악을 다채롭게 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악기가 모든 음악을 연주하는데 최상의 악기라고 잘못 판단하고
이를 고집하는 무리들이 횡행한다면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시의 경우도 이와 같아서 하나의 새로운 유형의 출현은 그 가치가 인정되지만 그
것을 마치 시의 전범인 것처럼 여기고 이를 모방하는 것은 개인이나 문단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효빈(效顰)이라는 말이 있다. 월(越)나라의 미인 서시(西施)가 얼굴 찡그리는 것을
보고 한 추녀(醜女)가 이를 부러워한 나머지 흉내 내다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고사인데 이와 다를 바 없다.

누가 뭐라고 해도 시는 정련된 언어예술이어야 하며, 정결한 시정신을 담고 있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다.
시를 하찮은 말장난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색다른 시를 만들어 주목의 대상이 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감동적인 시를 낳아 긴 생명을 갖게 할 것인가 하는 데로
시단의 관심이 되돌아왔으면 싶다.
출처 : 진영님의 플래닛입니다.
글쓴이 : 진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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