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하루

[스크랩] 겨울 산촌/문 병란

길가다/언젠가는 2006. 1. 7. 14:59

겨울 산촌(山村)/문 병란

 

사방이 막혀버렸다,

깊은 겨울 버스도 들어오지 않았다,

차라리 막혀버려다오.

겨울은 내 고향의 구들목에 미신이 들끓는 달,

지글지글 끓는 사랑방 아랫목에서 머슴들의 사랑이 무르익어가는 달,

화투장 위에도 밤새도록 흰 눈이여 쌓여다오.

겨울 산촌(山村)은 막힌 대로가 좋아 눈은 이틀째 자꾸만 내리고

자꾸만 내리고 신문도 배달부도 안 오는 깊은 겨울.

도시에서 실려오는 편지도 새마을 잡지도 오지 말아다오

차라리 신문이여 오지 말아다오

우리를 슬프게 만드는 유행가여 들리지 말아다오

지불명령을 가지고 오는 우체부 아저씨여 오지 말아다오.

눈 내리는 소리만 들리게 하고,

차라리 호롱불 가에서 심청전을 읽으며 울게 해다오

춘향이와 이도령의 서러운 이별을 함께 울게 해다오.

이틀째 이틀째 내리는 눈, 심란하게 심란하게 내리는 눈,

과부네 집 창가에 바스락거리는 눈, 눈 녹으면 어이할거나,

얼음 풀리면 어이할거나.

읍내로 나가는 고개도 막히고, 학교로 나가는 앞길도 막히고

간이역으로 나가는 윗길도 막히고,

막힌 땅에서 농부가 울어, 막힌 가슴으로 고향이 울어.

차라리 모두 다 막혀버려다오 차라리 모두 다 막혀버려다오.

출처 : 진영님의 플래닛입니다.
글쓴이 : 진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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