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기도해주시는 어머니 생각하며 어려움 이겨내
<천년학>은 임권택 감독과 배우 오정해에겐 아주 각별한 영화였다. 감정을 짜내는 신파가 없는 사랑 영화, 임권택 감독은 이 영화에서 눈물을 ‘뽑아내는 설정’을 원치 않았다고 한다. <천년학>은 칠순이 넘은 감독의 인생관을 그대로 담고 있다.
넘치지도 치우치지도 않는 사랑과 장렬할 것도 슬플 것도 없는 죽음을 통해 인생의 덧없음을 보여준다. 매화 꽃 흩날리는 봄날, 임종을 앞둔 백사노인 곁에서 소실이 된 송화가 흥타령 ‘꿈이로다’를 부르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영화 속의 송화는 눈물이 없는데 정작 오정해는 이 장면을 촬영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그 노래가 청승맞다고 생각했어요.
무슨 뜻인지 모르니까요. 김소희 선생님께서는 흥타령 육자배기를 안 가르쳐주셨어요. 그런 걸 좋아하다 보면 인생도 그렇게 흐른다고요. 그런데 그 가사를 듣는 순간 우리 영화 주제라고 느껴지는 거예요. 그 장면을 촬영할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감독님 마음을 알 것 같았어요.
마지막을 저렇게 보내고 싶어하시는 마음을. 두 마리의 학이 훨훨 날아가는 마지막 장면은 인생을 훌훌 털고 학처럼 자유롭게 가고 싶은 감독님의 마음이에요.” 철들어 부모 마음을 알게 되는 것처럼, 아버지 같은 존재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는 그녀에게 그런 감회로 다가왔다.
<천년학>을 가장 감명 깊게 본 사람 이 또 한 명 있다. 영화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초대권도 마다하고 늘 시사회장이 아닌 영화관에서 줄 서서 표를 사고 관람한다는 그녀의 어머니다. “제가 힘들 땐 늘 친정어머니가 큰 힘이 돼주세요. 어릴 때부터 우리 정해는 잘할 거야, 최고가 될거야,라고 하셨는데 제가 자고 있으면 머리맡에서 정안수 떠놓고 항상 기도하셨던 기억이 나요. 저한테 주신 최고의 재산이 어머니의 기도예요.” 그녀는 어머니의 기대에 벗어나고 싶지 않았고, 어머니한테 칭찬 듣는 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다.
객지에서도 자신을 믿어주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더욱 열심히 소리를 배웠단다. 고되다 느낄 때에도 어머니가 알면 속상하겠지 싶어 스스로 해결해야 하니 강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과의 싸움에 강하다. “엄마 아빠의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부모 마음을 헤아리기 힘들어요. 부모가 알아서 해주니까요. 근데 떨어져 있으면 아, 부모님이 있으면 이렇게 해줬을 텐데, 하다가 부모 마음을 알게 되요.
그러니까 부모 속상하게 하는 게 가장 큰 죄라는 것도 알죠. ” 어린 시절, 가족이 그리웠기 때문일까. 그녀는 가족을 소중함을 너무나 잘 안다. 연기자 아내를 소리 없이 외조해주는 남편,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아들, 영화를 보고는 눈물을 펑펑 흘리셨다는 시부모님, 홀로 기도해주시는 친정어머니…. “집에 와서 가족들이 모두 건강하게 자고 있는 걸 볼 때가 가장 행복하다” 는 그녀는 그렇게 소중한 작은 행복들을 잘 키워가고 있었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걸 항상 체크해 보세요. 그럼 많아요. 아주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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