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하루

징/박정원

길가다/언젠가는 2010. 9. 18. 17:45

 

 

 

 ------------------------박정원

 

누가 나를 제대로 한방

먹여줬으면 좋겠다

피가 철철 흐르도록

퍼런 멍이 평생 지워지지 않도록

찡하게 맞았으면 좋겠다

상처가 깊을수록

은은한 소리를 낸다는데

멍울진 가슴 한복판에 명중해야

멀리멀리 울려 퍼진다는데

오늘도 나는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서쪽 산 정수리로 망연히

붉은 징 하나를 넘기고야 만다

징채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제대로 한번 울어보지도 못하고

모가지로 매달린 채

녹슨 밥을 먹으면서

 

 

 —『 시와정신』(2010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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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원 / 1954년 충남 금산 출생. 1998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세상은 아름답다』『그리워하는 사람은 외롭다』『꽃은 피다』『내 마음속에 한 사람이』『고드름』『뼈 없는 뼈』. ‘함께하는 시인들’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