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하루

스미다/위선환

길가다/언젠가는 2009. 2. 21. 05:02

출처/다음 이미지-은혜(恩惠)

 

스미다

밤이었고, 당신의 창 밖에도 비가 내렸다면, 그 밤에 걸어서 들판을 건너온 새를 말해도 되겠다.
새는 이미 젖었고 비는 줄곧 내려서 빗발이 새의 몸속으로 스미던 일을,
깊은 밤에는
새를 따라온 들판이 주춤주춤 골목 어귀로 스미던 일을,
말할 차례겠다. 골목 모퉁이 가등 불빛 아래로 절름거리며 걸어오던 새에 대하여,
새 언저리에다 빛의 발을 치던 빗발과 새 안으로 스미던 불빛에 대하여,
웅크렸고 소름 돋았고 가슴뼈가 가늘게 야윈 새의 목숨에 대하여도,
또는
새 안에 고이던 빗소리며 고여서 새 밖으로 넘치던 빗물과
그때 전신을 떨며 울던 새 울음에 대하여도,
말해야겠다. 그 밤에 새가 자주 넘어지며 어떻게 걸어서 당신의 추녀 밑에 누웠는가를,
불 켜들고 내다봤을 때는
겨우 비 젖지 않은 추녀 밑 맨바닥에 새가 이미 스민 자국만, 축축하게 젖어 있던 일을,

 

 

 

 

 

위선환

 

출생;1941년, 전라남도 장흥 

직업; 시인

데뷔; 2001년 현대시 9월호 시 '교외에서' 발표

수상;1960년 용아문학상

대표작;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 눈덮인 하늘에서 넘어지다, 세떼를 베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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