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시간

[스크랩] 김재규는 살아있다!~?

길가다/언젠가는 2007. 10. 14. 12:32

  발행인 (2007-06-25 20:32:22, Hit : 944, Vote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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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긴급 속보> 박 정희 대통령 시해범 <김 재규> 살아있다 !

 

 




   



*   1979년 10월 26일 박 정희 대통령을 시해했던 김 재규가 사형집행 당한 것으로 가장 후 해외로 출국
*  1982년 미국 LA서 친북활동을 하던 노 길남 언론인도 김 재규의 생존 의혹을 미주통일신문 기자에게 탐문
*  당시 사형집행은 법무부장관의 사형집행서도 없었다고....  보안과장과 군 부대에서 급파된 현역 군인 입회 하에 유언 예식도 생략 속결 교수형 집행했다고.....




1980년 5월 24일 서울 구치소에서 사형집행 당한 것으로 알려졌던 김 재규가 당시 사형집행이 되지 않고 군용 특별기 편으로 해외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형집행관이었던 LA거주인 H 00 (남자. 음악 목사 활동 중. 1979년 당시  사형집행관. 현재 나이 68세. 전화 번호 등 신분은 추후 공개 예정)씨가 조금 전 25일(LA 시간) 오후5시 미주통일신문 기자와 인터뷰 과정에서 1차 밝혀졌다.


기자를 만난 제보자 H 음악 목사는 {나는 당시 상부의 지시에 따라 서울 구치소에서 일시 사형집행관으로 파견되었고, 당시 구치소 보안과장 '조 찬극'(현재 나이 70세)과 단 둘이서 김 재규 이하 김 태규, 이 기주, 유 성옥, 박 선호의 사형집행을 했다. 사형수 목에 밧줄을 걸면 뒤에서 포인트만 눌렸을 때  그들은 지하로 떨어졌고 잠시 요동을 쳤으나 밧줄은 멈췄다....  그들은 아침 7시 부터 30분 간격으로 각각 교수대에 끌려나왔다. 그들 중에는 잠에서 덜 깬 채 정신없이 끌려 나오기도 했다.... 이 때 사형집행장에는 서울 구치소 소장, 관련 검사, 목사 혹은 스님들이 입회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사형집행이 불법으로 진행된 것으로 알 수 있다. 당시 조 찬극 보안국장과 나하고 단 둘이서 5명을 집행했다. 사형집행 1번이 김 재규, 2번이 김 태규, 3번이 이 기주, 4번이 유 성옥, 5번 째가 박 선호 였다.... 그러나, 김 재규는 일반 잡범이 김 재규로 가장하여 끌려 들어와 위장 교수형에 처해 졌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사형 집행은 3시간 후  오전 10시 경 끝났다. 5구의 사형수 시신들은 곧바로 앰블런스에 실렸다. 그 때 다섯 개의 관이 앰블런스에 실렸으나 김 재규는 수의 복장을 한 채 살아서 앰블런스에 들어왔다. 나는 깜짝 놀랐다.... 당시 시신을 관에 넣고 못질을 할 때(입관 봉인 ?) 19개의 못을 박았으나 위장 된 김 재규의 관에는 33개 정도의 못을 박았다. 못을 33개를 박은 것은 타인이 관을 열수 없도록 한 것이었다..... 나는 당시 군 전투 복장을 한 채 사형집행관으로서 그들의 유언을 받아 적었다. 나는 그 때 "세상에 왔다가 가는데.... 유언이라도 남기는 것이 좋지 않느냐"라고 말하자 그들은 모두 유언을 남겼다. 그들이 유언을 남길 때 나는 군용 무전기 위에 종이를 놓고 그들의 유언을 하나 하나 씩 받아 적었다..... 그들의 유언 내용은 "자유 민주주의 만세 ! .... 아들 딸을 잘 키워 달라.... 처가 집에 연락 하여 나의 시신을 찾아가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다시 그는 {김 재규 등 시신을 담아 싣은 앰블런스는 하얀 색깔의 앰블런스 였다. 김 재규는 그 후 특별기 편으로 해외로 나갔다(더 구체적인 내용은 미주통일신문이 현재 상황에서 공개할 수 없다. 양해 바랍니다).... 나는 그 때 그 일로 괴로워 미국으로 왔으며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어지러움증을 일으킨다... 그들의 유언, 사형집행 시간 등을 기록한 자료가 집에 있다. 다음에 다시 만나서 보여 주겠다...김 재규는 그 때 모 군 부대로 이동한 후 특별기 편으로 해외로 나갔으며 성형수술을 했다. 지금 나이로 70세 인가... 지금 살아 있을까... 참, 방송인 문 성근씨가 [추적] 프로에서 당시 사형집행 상황 등을 방송했는데 다 틀렸다. 내가 그 방송을 보고 문 성근 씨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나는 작가가 써 준 대로 방송을 했다.."라고 말해 웃었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당시 보안과장 등의 제보에 의하면 {서대문 형무소(현재 공원) 교수대 부근 지하를 파면 3천 여개의 유골이 나온다.... 일제 시대 부터 그 당시 까지 행방불명 된 사람들의 유골이 아직도 땅 속에 묻혀있다..... 또 청와대는 창경궁으로 연결된 지하 통로가 있다... }라고 알려 주기고 했다. 당시 사형집행을 단독 담당했던 보안과장 조 찬극은 그 직후 대구 교정청장으로 일약 승진했다고.

미주통일신문은 다시 구체적인 사실을 인터뷰 하여 보도한다. < 계 속 >














  

*출처-미주통일 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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