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하루

[스크랩] 꽁초 3편/서정춘

길가다/언젠가는 2007. 9. 2. 01:50

꽁초 1

 

담배 한 대 피우고 나니

내일모레 칠십 살

 

꽁초 2

 

나를 꺼버릴 때가 되었나 보다

허공에서 별똥별은 떨어지누나

 

꽁초 3

 

죽은 좇

몽당연필

 

-현대시학 2007 08월 신작특집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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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춘 선생님께서 현대시학 신인상 심사를 마친 뒤에 남기신 말씀입니다.

[현대시학 2004년 10호]

많은 작품들이 아쉬움을 남기고 아슬아슬 떨어져 나갔다.
이들 모두가 시정신으로서의 장인정신에 많이 게을렀던 것으로 보인다.
바늘 끝으로 찍어 벼룩을 잡아버리겠다는 우직하면서 치열한 시정신, 그것이 장인정신이다.
긴장과 절제를 잃으면 시는 멀리 튀어버리는 벼룩의 생리를 닮아 있다.

고려 때, 백운거사 이규보는 『동국 이상국집』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다.

 

"어려운 글자를 쓰기 좋아해서 남을 쉽게 현혹하려 했다면
이것은 함정을 파놓고 장님을 인도하는 체격이다.
사연은 순탄하지 못하면서 끌어다 쓰기를 일삼는다면
이것은 강제로 남을 내게 따르게 하려는 체격이다.
속된 말을 많이 쓴다면
이것은 시골 첨지가 모여 이야기하는 체격이다.
기피해야 할 말을 함부로 쓰기를 좋아한다면
이것은 존귀를 침범하는 체격이다.
사설이 어수선한대로 두고 다듬지 않았다면
이것은 잡초가 밭에 우거진 체격이니,
이런 마땅치 못한 체격을 다 벗어난 뒤에야
정말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다.
남이 내 시의 병을 말해 주는 이가 있으면 기쁜 일이다.
그 말이 옳으면 따를 것이고 옳지 않아도 내 생각대로 하면 그만인데,
하필 듣기 싫어해서 마치 임금이 간함을 거부하여 제 잘못을 모르듯이 하리요.
무릇 시를 지었다면 반복해서 읽어보되,
내가 지은 것으로 보지말고,
다른 사람 또는 평생에 제일 미워하던 사람의 작품처럼 여겨
덜되고 잘못된 것을 찾아 보아서 찾을 수 없을 때 내놓아 발표할 것이다."

 

낙선자들이여,
시 백 편을 쓰고 아흔아홉 편을 버릴 줄도 아시라.
나머지 한 편 한 편으로 주춧돌을 놓겠다는 각성이 있어야 하겠다.
더욱 분발할 일이다.
나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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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테마 도둑(?)맞고도 허허∼ 웃는 까닭… 서정춘·문인수 시인 애틋한 추억담


시인 서정춘(66)과 문인수(62). 두 중견 시인들의 우정어린 추억담과 창작에 얽힌 뒷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실어나르고 있다. 훈훈한 사연의 출처는 포항에서 발간되는 시동인지 ‘푸른시’ 8호(2006년 12월 간행·연간지)에 실린 문인수 시인의 시작(詩) 노트.

“2006년 여름,포항의 ‘푸른시동인 여름 문학캠프’가 열리기 몇 시간 전 어느 식당에서 몇몇 일행과 함께 나는 서정춘형의 출생에 대한 슬픈 일화를 들었다. 그리고 그의 몸에 실제로 새겨진 배냇상처를 보았다. 나는 말했다. ‘형,그 흉터,태중의 기억입니다. 지금 몸을 두고 공전하고 있는 중이네요.’ 형은 ‘맞아,나도 이 놈의 수술자국이 꼭 지네 같아’ 했다. 포항 시인 이종암이 또 뭐라 뭐라 거들었다. 나는 다시 ‘다들 그거,시쓰세요. 한 달 이내로 안 쓰면 내가 다 쓸테니까’ 했다.”

머리가 히끗히끗한 게 같이 늙어가는 처지지만 1985년 나이 마흔에 시 전문지 ‘심상’을 통해 늦깍이로 등단한 문씨에게 1968년 신아일보를 통해 문단에 발을 들여놓은 서씨는 까마득한 선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등단 연도가 벼슬은 아니어서 두 사람 20년 교류의 품이 넉넉할 뿐만 아니라 모두 개성있고 짱짱한 시편으로 요즘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모습은 문단의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문씨가 식당에서 귀동냥한 서씨의 인생사를 슬쩍 도용(?)해 ‘지네-서정춘 전(傳)’이라는 제목의 시로 발표한 것은 지난해 ‘현대시학’ 9월호였다. “어머니는 그 때 만삭에 가까웠다./아버지와 어떤 사내가 드잡이를 하고 있었다./어머니가 한사코 싸움을 말리고 있었는데 그만/누군가의 팔꿈치에 된통 떠받쳐 벌러덩 자빠져 버렸다.//나는 태중에서부터 늑골 아래가 아파 몹시 울었다. 세상에 툭,떨어지자/나는 냅다 더 큰 소리로 울었다./잠시도 그치지 않고 새파랗게,새파랗게 질리며 울었다./1941년 생,나는 아직도 피고름 짜듯 가끔,찔끔,운다.”(‘지네’ 전반부)

시쳇말로 시의 테마 하나를 도둑맞은 입장이지만 ‘현대시학’을 통해 시를 읽은 서정춘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더구나 ‘지네’는 지난해 연말 발표된 현대문학상 시 부문 최종 후보로 오르기까지 했으니 서씨는 자신의 유년기를 시로 쓴 후배 문씨가 대견하기만 하다. “참 재미있어. 재미있고 말고. 과거 선배 문인들끼리는 시를 빌려주거나 꿔오는 품앗이까지 있었다는 농반 진반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어. 그걸 생각하면 내 인생사를 빌려쓴 것 쯤은 아무 것도 아니지.”

문씨의 시작 노트는 이렇게 이어진다. “이 시는 그날 식당에서의 대화내용과 형의 강연내용 전부를 뭉뚱그린 것이다. 말하자면 나 혼자 꿀꺽 먹어치운 셈이다. 나는 캠프가 있던 그날 밤 술도 안마시고 1박도 하지 않고 ‘야반도주’처럼 대구 집으로 달려와 단숨에 이 시를 휘갈겨 썼다. ‘태중에 대한 기억,공전…’ 이 말들을 어찌 남 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서둘러 다음 달 발표까지 마쳐 버렸다. ‘한 달 이내로 안 쓰면…’ 운운했던 내 말은 그야말로 식언이다. 지금껏 물론,그에 대한 아무런 가책도 없다.”

후배가 시를 헌정해 날만 궂으면 옆구리가 쑤시는 선배를 위로하는 풍경. 두 시인의 아름답고 끈끈한 우정이 있기에 한없이 척박해지던 문단이 가끔 작은 위로를 받기도 하는 것이다.

“난 지 삼 칠 일 만에 늑막염 수술을 받았다./난 지 두 돌 만에 어머니가 죽었다./마부 아버지와 형들은 모두 거구였지만 배냇앓이 때문일까,젖배를 곯았기 때문일까,“나는 평생/삼 短이다. 체구가 작고,가방 끈이 짧고,시인 정 아무개의 말처럼/‘극약 같은 짤막한 시’만 쓴다.”//가난이야 본래대로 바짝 조여 웅크린 채 견디면 된다.//당시엔 당연히 가슴 쪽에 나있던 수술 자국이 이 시각,/왼쪽 등 뒤 주걱뼈 저 아래까지 와 있다. 이것은 이미/의학이 잘 알고 있는 현상이긴 하지만 생각컨대/이 징그러운 흉터야말로 몸을 두고 공전하는 기억이지 싶다. 궂은 날,/지금도 수천의 잔발로 간질간질간질간질 세밀하게 기면서/씨부럴,/이 썩을 놈의 슬픔이 또,온다,간다.”(‘지네’ 후반부)

정철훈 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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