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하루

벌레/고형렬

길가다/언젠가는 2007. 4. 21. 01:17

 

'벌레' - 고형렬(1954~ )


풀잠을 자고 싶은 게지.

나 지금 하고 싶은데.

지금 할까?

참았다가 모레 합시다.

싫은데……

저 높은 산에나 올라갔다

오세요!

꽃 벌레는 휭하니

눈이 멀 것 같은

불볕 속으로 나가버린다.

지금 하고 싶으면 말을 줄이세요. 말없이 말하는 법을 배우려면 한참 가야 하겠네요. 꽃잎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육체의 빛. 그것은 육체의 볕. 체온을 가진 침묵을 만나지 못하면 빛은 볕이 되지 못하죠. 모레가 언제일까. 그날을 향해 하루해가 돌아오네요. 햇무리 가득한 아쉬운 스침을 붙들어 둘까 말까. 붙들어 두어도 아니어도 찰나의 아쉬움 남아 꽃벌레 지나간 자리 따뜻한 소름처럼 오소소 떨리리. 그러니 저 깊은 계곡에나 내려갔다, 오세요!

김선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