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장례식 1 /강정숙
장제지 건너편의
주유소 음악소리 쾅쾅대며 흩어진다
갈색머리 붉은 유니폼의 여자아이는
까딱까딱 발장단 맞춘다
옆구리가 샌드백처럼 흔들린다.
기름 묻은 목장갑을 또르르 말아 쥐고
세차장 물보라 속에 뛰어든다
물방울 터지고
일곱 빛깔 소리가 튀어 오르고
가로수 꽃잎 쏟아져 내리고
버스정류장 철제 의자에 앉아있는
모녀의 목덜미가
희고도 붉다. 그리하여
잠시 한 순간의 풍경에
가벼워져 가는데
대낮 네거리에
전조등을 밝히며 건너오는 영구차,
차창에 내 걸린 슬픔들이
흰 망울처럼 벌어진다
조등(弔燈) 없이도 환한 봄날이다
-----------------------------------------------
네 안에서 죽다 / 강정숙
호랑가시나무 잎은
어긋나 있다
찌르지 않기 위해
잎새들은 옆으로 퍼진다
서로를 피해가는 그 좁은 통로로 내가
들어가던 날은
빗방울 후두둑 드는 날이었다
젖지 않은 길을 찾아 젖은 내가 기어간다
솜털을 바짝 세워
온몸 밀고 가면
캄캄한 내 아래쪽엔 자꾸
핏물이 들고
죽어서라도 가야지, 난
내 남은 생을 거침없이 밀어넣는다
-시집 〈환한 봄날의 장례식〉(시평사)에서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2002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시조부문)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詩가 있는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님/김지하 (0) | 2006.03.27 |
---|---|
내가 천사를 낳았다/이선영 (0) | 2006.03.25 |
[스크랩] 시인별 시모음 가나다 순으로 보기 (0) | 2006.03.23 |
너의 狂氣에 감사하라/이생진 (0) | 2006.03.22 |
가난한 시인/이생진 (0) | 2006.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