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하루

봄의 금기 사항/신달자

길가다/언젠가는 2006. 3. 9. 16:50

봄의 금기 사항/신달자(1943∼ )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그저 마음 깊은 그 사람과

나란히 봄들을 바라보아라

멀리는 산 벚꽃들 은근히

꿈꾸듯 졸음에서 깨어나고

들녘마다 풀꽃들 소근소근 속삭이며 피어나며

하늘 땅 햇살 바람이

서로서로 손잡고 도는 봄들에 두 발 내리면

어느새 사랑은 고백하지 않아도

꽃 향에 녹아

사랑은 그의 가슴속으로 스며들리라

사랑하면 봄보다 먼저 온몸에 꽃을 피워내면서

서로 끌어안지 않고는 못 배기는

꽃술로 얽히리니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무겁게 말문을 닫고

영혼 깊어지는 그 사람과 나란히 서서

출렁이는 생명의 출항

파도치는 봄의 들판을

고요히 바라보기만 하라




봄바람이 불어 온다. 물가에도 뚝배기 같은 집의 안뜰에도 죽은 무덤에도 봄풀 봄잎이 온다. 걸음마를 막 익히는 돌 무렵 꽃망울 아이처럼 천천히 천천히 우리에게로. 봄풀 봄잎은 수식이 없어도 생기가 돈다. 당신은 봄풀 봄잎의 말을 뒷무릎 접고 앉아 들어보라. 사랑은 그처럼 낮고 여린 빛깔을 빚어 보이는 것. 남녘의 봄들로 손잡고 가 사랑의 고백을 바라보아라.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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