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하루

[스크랩] 징소리 외 2 /마경덕

길가다/언젠가는 2006. 1. 7. 15:09
징소리/마경덕

 

징소리

 

                                      

 

서울로 식모살이 간 곰보 금순이, 여수 병모가지* 사창가로 빠진 금자언니, 모두 바다의 젖을 빨며 자랐습니다. 개펄의 발자국이 크기도 전에 자매는 객지로 떠났습니다. 폐병쟁이 마누라 수발하며 평생 바다를 파먹던 그의 아비는 제 몸 하나 건사할 땅 한 평 없어 깊은 물 속에 누웠습니다. 눈빛 서늘한 원귀寃鬼가 되었습니다. 방파제에서 시끌벅적 진혼굿 벌어지고 소식 끊긴 딸년 대신 먼 친척 길동이 아지매만 제 설움에 웁니다. 신기神氣 오른 당골네 징소리, 산산이 찢긴 바다의 살점을 한 땀 한 땀 꿰매고 있습니다. 며칠 째 키를 넘던 파도를 잠 재우고 바다 건너 마을로 챙챙 날아갑니다. 머구리배*의 잠수부, 징소리 메고 다시 물 속으로 뛰어들 때 징헌 놈의 징울음, 잔잔한 수면으로 지잉- 지잉- 미끄러집니다.
  
  
   
*병모가지 : 사창가를 나타내는 은어. 한번 빠지면 나오기 힘들다는 병의 목이라는 뜻
*머구리배 : 멍게나 해삼 전복 등을 채취하는 잠수부들이 타는 작은 배. 

                물에 빠진 시신屍身을 인양하기도 한다

 

 

가방, 혹은 여자




그녀는 무엇이든 가방에 넣는 버릇이 있다. 도장 찍힌 이혼서류, 금간 거울, 부릅뜬 남자의 눈알, 뒤축 닳은 신발. 십 년 전에 가출한 아들마저 꼬깃꼬깃 가방에 구겨 넣는다. 언젠가는 시어머니가 가방에서 불쑥 튀어나와 해거름까지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녀의 취미는 접시 던지기. 지난 봄, 던지기에 열중한 나머지 벽을 향해 몸을 날린 적도 있었다. 틈만 나면 잔소리를 향해, 바람난 남자의 뻔뻔한 면상을 향해 신나게 접시를 날린다. 쨍그랑 와장창!

그녀의 일과는 깨진 접시 주워 담기. 뻑뻑한 지퍼를 열고 방금 깨뜨린 접시를 가방에 담는다. 맨손으로 접시조각을 밀어 넣는 그녀는 허술한 쓰레기봉투를 믿지 않는다. 적금통장도 자식도 불안하다. 오직 가방만 믿는다. 오만가지 잡다한 생각으로 터질 듯 빵빵한 가방, 열리지 않는 저 여자.



짐승들 이야기 / 마경덕


그 모피공장엔 짐승들이 우글거렸네 사람인 척 하는 짐승 같은 사람과 짐승처럼 묵묵히

일만 하는 사람들과 죽은 짐승들의 눈이 쌓인 모피창고가 있었네. 숨쉬기조차 힘들게 날

아오르는 짐승의 털도 가난을 밀어내지 못하고 배고픈 짐승들, 배부른 짐승의 하룻밤 술

값 정도에 금세 길들여졌네. 숱한 밤이 뜬 눈으로 들들들, 미싱에 박혀죽고 먼지 쌓인 바

닥에서 죽은 짐승들의 물 먹인 껍데기는 고무줄처럼 팽팽히 당겨졌네. 여우 한 마리 팔딱,

재주 넘어 열 마리 여우로 둔갑했네. 수입산 백여우 뱃가죽을 칼로 찢으며 끈질기게 살아

남은 짐승들, 늘어난 가죽에 빗질을 하며 눈부신 빛을 달고 살았네. 죽어서 더 빛이 나는

껍데기에 밤새 날개를 달았네. 그저 일밖에 모르는 미련한 짐승들, 백여우의 탐스러운 꼬

리에 손 베이는 줄 몰랐네. 수없이 죽어간 짐승들의 슬픈 눈에 그해 여름, 펄펄 눈이 내리


출처 : 진영님의 플래닛입니다.
글쓴이 : 진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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