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하루

더 딱딱한 희망/김지녀

길가다/언젠가는 2012. 5. 16. 00:10

 

 

 

 

더 딱딱한 희망

 

 

김지녀

 

 

땅속에 감자를 심고 꾹꾹 밟는다
밟히면 밟힐수록 싹이 올라오고
하얀 꽃이 피고
다정하게 못 박혀 빠져나올 수가 없다
각자의 구멍 속에서 썩어가거나
독이 오르거나
땅속에서는 너무 많은 감자들이 자라고 있다
무엇이든 꼭 쥐고 놓지 않는 감자

손가락이 잘린 감자 파업 중인 감자

떠도는 감자 침묵하는 감자 감자들은 똘똘 뭉쳐
형제애로 가득 차오르고 있다
더 크고 딱딱하게 부풀어 오른다
이것을 각오라고 부르자
감자의 각오는 남다르다
땅속에서 따뜻하고 온순한 주먹들이
주렁주렁 열리고 있을 테니까, 그러나
빠져나올 수가 없다 땅 속의 평화와 안전은
보장받을 수 없다
거대한 손아귀가 줄기를 잡아당기는 순간
크고 작은 주먹들이 열없이 쏟아져 나온다
올해도 흉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