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하루

2011년 신춘문예 시 총망라

길가다/언젠가는 2011. 1. 21. 16:05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새장 / 강정애

 

 

나무 밑 떨어진 이파리들은 모두

누군가 한 번쯤 신었던 흔적이 있다

낡은 그늘과 구겨진 울음소리가 들어있는 이파리들

나무 한 그루를 데우기 위해

붉은 온도를 가졌던 모습이다

 

저녁의 노을이 모여드는 한 그루 단풍나무 새장

 

새들이 단풍나무에 가득 들어 있는 저녁 무렵

공중의 거처가 소란스럽다.

후렴은 땅에 버리는 불안한 노래가 빵빵하게 들어 있는

한 그루 새장이 걸려 있다

먼 곳을 날아와 제 무게를 버리는 새들

촘촘한 나뭇가지가 잡고 있는 직선의 평수 안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후드득, 떨어지는 새들의 발자국들

 

모든 소리를 다 비운 새들이 날아가는

 

열려 있으면서 또한 무성하게 닫혀 있는 새장

허공의 바람자물통이 달려 있는 저 집의

왁자한 방들

잎의 계절이 다 지고 먼 곳에서 도착한 바람이

그늘마저 둘둘 말아 가면

새들이 앉았던 자리마다 새의 혀들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늘이 사라진 자리에는 새의 혓바닥들만 부스럭거릴 것이다

 

모두 그늘을 접는 계절

간혹, 지붕 없는 새의 빈 집과

느슨한 바람들만 붙어 흔들리다 간다

한 그루 단풍나무가 제 가슴팍에 부리를 묻고 있는 저녁

후드득, 바닥에 떨어지는 나무의 귀

누군가 새들의 신발을 주워 책갈피에 넣는다.

 

 

 

심사평

 

살아있는 생각과 언어의 결

 

 

 

응모작들이 기성 시단의 어떤 흐름에 깊이 감염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말과 말 사이의 공간이 너무 커서 완전한 독해가 어려운 시들이 적지 않았고, 유행하는 소재를 검증 없이 끌어다 쓰는 안이한 시도 여럿 있었다. 감동을 생산하려는 의지보다 시를 잘 만들려는 욕망이 비대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시의 리얼리티에 대한 배려가 전반적으로 부족해 보였다

 

당선작을 결정하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신성희씨의 ‘신발들이 날아간다’는 가장 읽을 만한 시였다. ‘벌판에 버려진 신발이 하나 있다/그 외발을 벌판의 창문이라고 혼자서 불러보았다’는 첫머리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다. 현란하고 강렬한 이미지들이 시 읽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다만 지나치게 궤도를 이탈한 몇몇 불안한 표현에 꼬투리를 잡지 않을 수 없었다. 참 아깝다. 머지않아 좋은 시인으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강정애씨는 시적 대상을 객관화하면서도 충분히 자기 말을 할 줄 아는 시인이다. 당선작 ‘새장’은 생각과 언어의 결이 살아 있는 시다. 자칫하면 상투성의 늪으로 빠질 수 있는 나무나 새와 같은 소재를 붙잡고 묘한 긴장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무엇보다 감정을 자제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대상을 자기 안으로 바짝 잡아당겨 시를 쓰는 사람이라는 방증이다. 앞으로 서정의 지평을 크게 넓히는 시인으로 성장하리라 믿는다.

시 부문 본심 심사위원 (백무산·안도현)

 

 

 

2011 영남일보 당선작

 

 

아주 흔한 꽃 / 변희수

 

 

 

갈 데까지 갔다는 말을

안녕이란 말 대신 쓰고 싶어질 때

쓰레기통 옆 구두 한 켤레

말랑한 기억의 밑창을 덧대고 있다

달릴수록 뒷걸음 치는 배경 박음질 해나가듯

나란히 하나의 길을 꿰고 갔을 텐데

서로 다른 기울기를 가진 한 짝

축을 둥글게 깎고 고르는 순간

길은 저마다 제 발에 꼭 맞는 문수로

열려 있었을 것이지만 떠날 때는

모두, 안개를 배경으로 걸었을 것이다

가파른 직선 혹은 곡선의 에움길을

밀어 넣을 때마다 팽팽하게 긴장하던 구둣볼

끈을 고쳐 매고도 매듭 없이

결의만 다지던 저녁이 온 것처럼

코끝을 돌려놓고 자도

늘 잘 못 든 길처럼 헛갈리는 아침

이정표 없는 허방에도 덜컹, 꽃피는 길 있었는지

밑창에 찍힌 발가락 모양이 꾹꾹 눌러놓은

압화처럼 선명하게 피어 있다

어느 고대국가의 지층에 새겨진 족적처럼

누구나, 뒤축이 닿는 순간 스스로의 삶을

탁본하게 되는 것이므로

몫의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어놓고

서늘하게 빠져나간 맨발

얼룩도 꽃의 흔적을 닮을 수 있는지

헐렁한 구두 속의 여백이 꽉 찬다

 

 

 

심사평

 

"사물과 세계 적절히 통제, 시적긴장 부여"

 

 

 

예년에 비추어 특별히 뛰어나다 할 수 없는 올해의 응모작품들을 두고, 심사위원들이 숙고 끝에 마지막으로 간추려보았던 시편은 변희수, 황제윤, 권명호 제씨의 것이었다. 위의 세 분은 균제미가 고루 돋보이는 시적 성취들을 함께 선보이고 있었다.

 

권명호씨의 시는 생활의 이면들을 어느 정도 생생한 시화로 구체화시킬 줄 아는 응모자의 절제된 구상력을 엿보게 했다.

 

혈육의 애틋한 정을 일깨운 '아버지의 발등'과 같은 시가 일례일 것이다. 그러나 일상성을 뚫고 솟아오르는 이런 감동이 역설적으로 신인다운 상상력과 개성을 희석시키는 것이 아닐까 판단되었다.

 

황제윤씨의 시편에는 풍경을 해석하고 감싸 안는 시선의 깊이가 느껴졌다.

 

웅장하게 세워지는 대불보다 환하게 꽃피운 해당화의 생명력에 주목한 '꽃불'이나,눈발들의 시각화로 차창 밖의 풍경을 문면 가득 흘러넘치게 한 '운주사, 덜컹거리는' 등은 응모자의 패기와 시적 자질을 충분히 읽어내게 하였다.

 

 

변희수씨는 전체적으로 사물과 세계를 적절히 통제해 시적 긴장을 부여할 줄 아는 응모자로 여겨졌다.

 

범상한 소재들로 삶의 미묘한 국면들을 저울질하고, 그만한 짜임새의 시로 격상시킨 것은 그의 수련이 어느 정도의 성취를 아우를 만한 수준에 이르지 않았을까 기대하게 하였다. 그런 기시감이 황제윤씨의 앞자리에 그를 내세우게 한 까닭이다.

 

심사위원들은 변희수씨의 응모작 중에서 '아주 흔한 꽃'이 고단하게 걸어온 삶의 내력을 행간과 행간 사이로 더욱 섬세하고 선명하게 부조(浮彫)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 심사위원 이하석·김명인

 

 

 

'

무등문예' 시 당선작

 

 

 

외출을 벗다 / 장요원

 

 

 

한낮의 외출에서 돌아가는 나무들의 모습이 어둑하다

탄력에서 벋어난 하반신이 의자에 걸쳐 있고

허공 한쪽을 돌리면

촘촘했던 어둠들, 제 몸쪽으로 달라붙는다

의자의 각을 입고 있는 외출

올올이 角의 면을 베꼈을 것이다

이 헐렁한 停留의 한 때와 푹신함이 나는 좋다

실수를 엎질렀던 재킷과

몇 방울 얼룩이 튄 블라우스의 시간을 벗을 수 있는 헐렁한 집

 

여전히 외출들은 걸려 있거나 접혀져 있다

그러고 보면 문 밖의 세상은

모든 외출로 건축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빛도 식욕도 변기의 물 내리는 소리도 모두 외출에서 돌아와 있는,

텅 빈 건너편이 조용히 앉아있는 의자

침묵의 소요들이 모두 돌아간

세간들에 달라붙는 귀가한 소음들

왜 집안엔 깨어지기 쉬운 소리들만 있는 것인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저녁

오늘의 바깥은 다행히도 한 올의 올도 나가지 않았다

눅눅한 각을 입고 있는 스타킹과

긴 팔을 뻗어 아카시아 이파리를 헹구는 바람의 시간

잠든 몸을 조용히 돌아다니는 숨소리

괄호를 열고 몸을 구부리는 잠이 깊다.

 

 

 

 

심사평

 

시의 새벽을 여는 신생의 목소리가 그리웠다

 

 

20년 역사의 신춘무등문예는 가히 전국적인 위상을 구가하는 듯 보였다. 풋풋함의 기척들이 채 가시지 않은 십대들의 투고작에서부터 멀리 해외 이민자에 이르기까지 원고들이 걸어온 주소지는 경향각지에 고루 분포되어 있었다. 천 여편에 이르는 투고작들에게서 아직은 기척같은 시의 유용성을 감지하는 일만으로 선자는 잠시 기꺼워지기로 하였다. 그리고 곧 '한 편의 시'를 찾아나서는 고통의 축제는 시작된다.

 

순간마다의 갸우뚱거림과 안타까움과 아쉬움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최종적으로 6명의 작품이 남았다. 어쩌면 그렇게 줄여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민달팽이'외 4편을 투고한 정순의 작품에서는 타자들에 비해 튼실한 시적 문장의 안정감이 짚혀졌다. 그러나 문제는 5작품 모두가 동어반복으로 읽힌다는 점이다. 좀처럼 표정을 바꾸지 않은 시안(詩眼)과 보폭으로 그의 시는 앞을 향해 나아가는 모험을 주저하고 있었다.

 

'화장터 가는 길'외 3편을 낸 박다영은 표제시의 수준을 다른 작품들이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사막의 오후 세 시는 당신이 가루가 되기 적당한 온도" 등에서 보이는 고투의 언어를 통해 미지의 그의 시의 기미가 짐작됐다.

 

 

'거울을 마주한 이상'외 2편의 서경에게서도 지난한 습작기를 거쳐온 노회한 문장들이 읽힌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에게서도 "시의 새벽을 여는 신생의 목소리가 그리웠다"

 

'발자국에 빠지다'외 3편을 낸 유시은의 시는 한편으로 기성에 가까웠다. 여기 '풀밭'인 경연장에서 그의 시는 자연히 불리했다.

 

'전어'외 3편을 응모한 김정애와 '바람의 고삐'외 2편을 낸 장요원의 작품이 남겨졌다.

 

김정애의, '전어'가 올려진 아버지의 밥상은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는 '양철밥상'이다. "젓가락 끝을 맞추려는지" "탕 탕" 양철북 소리를 낸다는 바라봄만으로, 실상(實想)이 시가 되는 지점을 간파한 듯 여겨졌다.

 

그러나 그의 시 역시 '그늘'을 거느린 완성된 시력에는 다소 미치지 못했음이 아쉬웠다.

 

세 편의 투고작이 고른 수준에 올라 있는 장요원의 시 '외출을 벗다'를 당선작으로 결정한다. "오늘의 바깥은 다행히도 한 올의 올도 나가지 않았다" 는 '스타킹'의 환치는 비교적 젊고 튼튼하게 읽혔다. 한 편으로 어딘지 수사와 외피에 조율하는 듯 여겨지는 그의 시업의 미래는, 현재의 바탕 위에서 '깊이'의 모서리를 체득하는 일에 한동안 복무해야할 것으로 비쳐졌다.

당선자의 장도가 보다 원대하고도 높이 있는 영토에 거뜬히 안착하기를 바란다

 

 

 

 

 

 

2011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 / 김지혜

 

 

 

들판의 지표면이 자라는 철

 

유목의 봄, 민들레가 피었다

민들레의 다른 말은 유목

들판을 옮겨 다니다 툭, 터진 꽃씨는

허공을 떠돌다 바람 잠잠한 곳에 천막을 친다

아주 가벼운 것들의 이름이 뭉쳐있는 어느 代

날아오르는 초록을 단단히 잡고 있는 한 채의 게르

꿈이 잠을 다독거린다.

 

 

떠도는 혈통들은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 어느 종족의 소통 방식 같은 천막과 작은 구릉의 여우소리를 데려와 아이를 달래는 밤

끓는 수태차의 온기는 어느 후각을 대접하고 있다.

 

들판의 화로(火爐)다.

노란 한 철을 천천히 태워 흰 꽃대를 만들고 한 몸에서 몇 개의

계절을 섞을 수 있는 경지

지난 가을 날아간 불씨들이

들판 여기저기에서 살아나고 있다.

 

천막의 종족들은 가끔 빗줄기를 말려 국수를 말아 먹기도 한다.

바닥에 귀 기울이면 땅 속 깊숙이 모래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초원의 목마름이란 자기 소리를 감추는 속성이 있어 깊은 말굽 소리를 받아 낸 자리마다 바람이 귀를 접고 쉰다.

 

이른 가을 천막을 걷어 어느 허공의 들판으로 날아갈 봄.

 

 

 

심사평

 

 

삶을 응시하는 깊이와 고단한 삶 밝게보는 능력 탁월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의 심사는 예심 없이 271명이 보낸 전체 응모작을 심사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 중에서 1차 심사를 통과한 작품은 총 27편이었다. 논의에 논의를 거쳐 최종심까지 오른 작품은 '벗어놓은 외출' '둥근 강' '폐기물집하장 가는 길' '비밀의 화원'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 등 5편이었다. 이 중에서 '비밀의 화원'과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를 놓고 심사위원들의 최종논의가 있었다.

 

'비밀의 화원'은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를 다룬 시로서 작가의 현실인식이 돋보이는 시였다. 이주노동자를 형상화하는 데에 있어서 그들의 수난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정형적인 틀에서 벗어나, 거리를 두고 조심스럽게 그들의 아픔에 다가가는 솜씨가 뛰어난 시였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가 오히려 이주노동자의 삶을 자기 아픔으로 여기는 데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화자가 관찰자의 태도로 물러서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2011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나무의 문 / 김후인

 

 

몇 층의 구름이 바람을 몰고 간다

그 몇 층 사이 긴 장마와

연기가 접혀 있을 것 같다

바람이 층 사이에 머무르는 種들이 많다

發芽라는 말 옆에 온갖 씨앗을 묻어 둔다

여름, 후드득 소리 나는 것들을 씨앗이라고 말해본다

 

나는 조용히 입 열고

씨앗을 뱉어낸 최초의 울음이었다

 

오래된 떡갈나무 창고 옆에

나뭇가지 같은 방 하나 들였다

나무에 걸린 바람을 들여놓고 싶었다

지붕이 비었을 때엔 빗소리가 크다

빈 아궁이에 솔가지 불을 밀어 넣으면

물이 날아올랐다

물기를 머금고 사는 것들이

방안을 채울 줄 알았다

아궁이 옆에서 뜨거운 울음의 족보를 본다

 

실어 온 씨앗으로 바람은 키 작은 뽕나무를 키웠다

초여름, 초록이 타고 푸른 연기가 날아오르고

까만 오디가 달렸다

 

문을 세웠더니 바깥이 들어와

빈 방이 되었다

바람의 어느 층이 키운 나무들은 흰 연기를 품고 있다

어제는 나무의 안쪽이 자라고 오늘

나무의 바깥이 자랐다

 

나무는 어디가 문일까

문을 열어 놓은 나무들 마다

초록의 연기가

다 빠져나가고 있다

 

 

 

 

심사평

 

치밀한 문맥·팽팽한 거리 믿음직

 

 

세상은 갈수록 미궁이지만 시를 읽는 일은 여전히 즐겁다. 우리 앞에 놓인 한 아름의 희망들이 온 세상을 새롭게 밝힐 것이란 기대를 갖게 했다. 응모 편수는 예년과 비슷했으나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향상된 수준이었다. 고만고만하게 다듬어진 시들이 주류를 이루던 예년과는 달리 수작과 태작의 경계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는 강습 등을 통해 만들어진 시가 아닌 자생적인 시 쓰기가 회복되고 있는 조짐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우리의 손에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박길숙의 '적도에서 온 남자' 외 2편과 김후인의 '나무의 문' 외 4편이었다. 박길숙의 시들은 발랄한 감각과 자유분방한 보폭이 흥미로웠다. 시의 큰 덕목인 새로움의 추구에는 부합하지만 완성도가 다소 떨어지는 편이었다. 반면 김후인의 시들은 단단하고 치밀한 문맥, 팽팽한 거리두기가 믿음직스러웠다. 그동안 연마한 내공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보내온 다섯 편 중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아도 좋을 만큼 수준도 골랐다. 빈틈을 보이지 않는 견고한 윤곽이 불만이라면 불만이었다. 시의 힘은 숨 쉴 여백을 만들며 출렁거릴 때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오랜 숙의 끝에 우리는 박길숙의 시들이 좀 더 숙성되는 과정을 거치기를 바라며 김후인의 '나무의 문'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가장 작고 낮게 발언하면서도 가장 높고 멀리 퍼져가는 시의 위대한 과업을 성실히 수행하리라 믿는다. -정진규 시인

 

 

 

201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

 

 

 

새는 없다 / 박송이

 

 

 

우리의 책장에는 한 번도 펼치지 않은 책이 빽빽이 꽂혀 있다

 

15층 베란다 창을 뚫고 온 겨울 햇살

이 창 안과 저 창 밖을 통과하는 새들의 발자국

우리는 모든 얼굴에게 부끄러웠다

 

난간에 기대지 말 것

애당초 낭떠러지에 오르지 말 것

 

바람이 불었고

낙엽이 이리저리 굴러 다녔다

우리는 우리의 가면을 갖지 못한 채

알몸으로 동동 떨었다

 

지구가 돌고

 

어쩐지 우리는 우리의

눈을 마주보지 않으면서

체위를 어지럽게 바꿀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멀미를 조금씩 앓을 뿐

 

지구본에 당장 한 점으로

우리는 우리를 콕 찍는다

이 점은 유일한 우리의 점

 

우리가 읽은 구절에 누군가 똑같은 색깔로 밑줄을 그었다

 

새들은

위로 위로

날아

우리는 결코 가질 수 없는

새들의 발자국에게 미안했다

 

미끄럼틀을 타는 동안

우리의 컬러링을 끝까지 듣는 동안

알몸이

둥글게 둥글게

아침을 입는 동안

 

우리의 놀이터에

정작 우리만 있다

 

 

 

심사평

 

새의 존재에 대한 통찰 돋보여 앞으로의 가능성에 낙점

 

 

예심 없이 모든 투고 작품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숙독과 합평으로 심사가 진행됐다. 시국 탓인지 꽤 많은 작품에서 유행처럼 죽음을 서슴없이 다루는 것이 우려스러웠다. 또한 빈번한 외래어의 사용과 심지어 영어를 그대로 시에 사용하는 것은 21세기 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심사위원들은 죽음보다는 희망을 가진 작품에 기대를 걸며 '가족의 탄생'(팽샛별), '감독의자'(지석현), '새는 없다'(박송이)를 최종심에 올렸다. '가족의 탄생'은 영화를 보듯 선명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 눈에 시를 들어오게 하는 힘이 좋았다. 하지만 당선작이 되기에는 시가 가지고 있는 강한 산문성이 문제였다. 그런 산문성이 시가 가지는 독특한 맛을 잃게 해 아쉬웠다. 앞으로 가벼워지는 것에 대해 노력해주길 부탁한다.

 

'감독의자'는 신선한 소재의 참신한 작품이었다. 산문시였으나 시의 흐름도 부드러웠다. 하지만 투고한 다른 작품이 그와 같은 무게를 보여주지 못했다. 앞에서 밝혔듯이 모국어로 쓰는 시에 영어를 그대로 쓰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당부한다.

 

'새는 없다'는 새의 존재와 상징성에 대한 통찰이 돋보였다. 다른 시들에 비해 긴 길이의 시인데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감에 좋은 점수를 얻었다. 투고자들이 흔히 가진 애매모호함을 극복하는 선명성도 좋았다. 하지만 감동으로 가기에는 힘의 결락이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새는 없다'는 좋은 작품이라는 것보다는 가장 가능성이 높다는 것에 만장일치로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로 대성을 바란다. 최종심까지 올라온 투고자들에게는 다음에도 기회가 있다는 격려의 말을 전한다.

 

● 심사위원= 신경림(시인) 정호승(시인) 정일근(시인ㆍ경남대 교수)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할머니의 눈썹 문신 / 강은진

 

 

문득, 썩지 않는 것이 있다

74세 이만호 할머니의 짓무른 등이

늦여름 바람에 꾸덕꾸덕 말라가는 중에도

푸르스름한 눈썹은 가지런히 웃는다

그녀가 맹렬했을 때 유행했던 딥블루씨 컬러

변색 없이 이상적으로 꺾인 저 각도는 견고하다

 

스스로 돌아눕지 못하는 날

더 모호해질 내 눈썹

눈으로 말하는 법을 배울까

목에 박힌 관으로 바람의 리듬을 연습할까

아니면 당장 도마뱀 꼬리같은 문신을 새길까

 

누구에게나 꽃의 시절은 오고, 왔다가 가고

저렇게 맨얼굴로 누워 눈만 움직이는 동안

내 등은 무화과 속처럼 익어가겠지만

그 때도 살짝 웃는 눈썹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얼굴이 검어질수록 더 발랄해지는 눈썹이었으면 좋겠다

 

나 지금 당신의 바다에

군무로 펄떡이는 멸치의 눈썹을 가져야 하리

눈물나도록 푸른 염료에 상큼하게 물들어야 하리

 

 

 

심사평

 

삶의 건강한 구체 다뤄… 한국 시단 큰 재목되길

 

 

 

예년에 비해 투고된 작품량은 늘었으나 수준은 비슷했다. 윤지문의 ‘새와 흙’, 강은진의 ‘이만호 할머니의 눈썹 문신’, 석상준의 ‘뚜껑’, 김후인의 ‘결치(缺齒)’ 등 네 편의 작품이 최종심에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먼저 ‘뚜껑’은 ‘그냥 썩게 놔두는 것보단 나중에 상하더라도 누군가 퍼먹을 수/ 있도록 열어두는 게 인생이란 걸 알기 때문에’에서 알 수 있듯이 산문성이 지나치다는 점 때문에 제외되었다. ‘결치(缺齒)’ 또한 빈 집이 늘어나는 시골 풍경을 결치의 이미지와 결부시킨 점은 높이 살 만 하지만 조금 낡은 감이 있다는 점에서 제외되었다.

 

나머지 남은 두 편 중에서 ‘새와 흙’은 기성시인의 시를 인용한 점이(인용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신인으로서는 바람직한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과, 또 다른 투고작 ‘새와 구름’에서 구체성이 부족하고 한껏 멋을 부린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결국 당선작은 ‘이만호 할머니의 눈썹 문신’으로 결정되었다. 이 시는 ‘눈썹 문신’을 하는 우리 삶의 독특한 한 현상을 발견한 시적 눈의 신선함에 일단 호감이 갔다. 특히 눈썹 문신을 ‘군무로 펄떡이는 멸치’에 빗된 점이 해학적이고 애절하다. 그러나 이 시에 존재하고 있는 ‘이만호 할머니’가 시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지 않음으로써 대표성을 잃고 있다는 점이 단점이었다. 이만호 할머니가 누구인지 암시가 있었으면 오히려 더 감동적이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자폐적 상상력이 판치는 한국시단에서 삶의 건강한 구체에서 꽃핀 이만한 작품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 이 시를 당선작으로 밀 수 있는 이유였다. 당선자가 앞으로 한국시단의 큰 재목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크다.

심사위원 황동규·정호승

 

 

 

 

2011 매일신문 신춘문예 詩 당선작

 

 

 

1770호 소녀* / 우광훈

 

 

 

꿈꾸듯, 한 편의 오래된 우화(寓話)가 소녀의 동공 깊숙이 스며든다. 소녀는 과묵하고 비밀스런 눈빛으로 책장만을 넘겨댄다. 별이 뜨고, 소녀는 마을 어귀 파피루스 숲 사이를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광활하고 황량한 사막이 있는, 때론 우아하고 권위적인 무덤이 있는 이곳 오시리스 동물원으로 흘러든다. 바다표범도, 펭귄도, 사막여우도, 치타도, 판다도 없는 이곳에는 햇볕에 잘 그을린 허허로운 얼굴에 키 큰 금발의 코끼리가 있다.

 

소녀는 향수어린 얼굴로 코끼리를 바라보다 석관 속에 놓인 접시저울을 조심스레 끄집어낸다. 타조깃털만큼이나 가벼운 그녀의 심장. 사육사의 경쾌한 신호음에 맞춰 코끼리가 저울 위로 올라선다. 똬리를 튼 비단뱀처럼 매끄럽게 내려앉는 그녀의 영혼. 순간 불꽃이 흩날리고, 파도가 울부짖고, 사자(死者)가 춤을 춘다. 기괴하고, 음울하며, 극도로 염세적인 그들만의 연극. 불멸을 향한 오래된 문명의 허망한 몸짓.

 

나일강에 물그림자 드리우고, 피안(彼岸)에 다다른 소녀는 희미한 달빛 아래에서 목욕을 한다. 늙은 고양이처럼, 별과 달이 질 때까지

 

그녀의 푸른 목덜미 아래로

 

모래 이빨 자국만이 선명하다.

 

 

 

 

*1770호 소녀= 1976년 맨체스터대에서 로잘리 데이비드 박사가 집도한 이집트 미라.

학자들은 방사능 분석을 통해 서기 105~405년 사이에 미라로 제작된 갈색 눈의 소녀로 추정하고 있다.

 

 

 

심사평

 

언어의 구체성과 상상력의 탁월함

 

 

 

마지막까지 남은 손상호의 ‘시미즈 터널’ 외 3편, 박윤근의 ‘말티즈와 아내’ 외 2편, 박승일의 ‘비 내리는 법’ 외 2편, 우광훈의 ‘1770호 소녀’ 외 2편 등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작품들이었다. 네 사람 모두 언어의 체계적인 훈련을 거친 만만치 않은 수준과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손상호의 ‘시미즈 터널’은 긴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동안 다양한 감각으로 그려낸 상상력이 돋보였다. 이 한 작품만을 두고 이야기한다면 나무랄 데가 없다. 하지만 다른 작품이 너무 처져 있었다. 박윤근의 ‘말티즈와 아내’는 시를 형성할 줄 아는 능력과 선명한 환기력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구체성이 시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말티즈가 죽어도 그 딸랑거림을 그리워할 것이다.”라든가, “아내는 土耳犬으로 남고 싶어 하는/저 바다 빛 그늘 진 눈동자를 보았을 것이다.”와 같은 이미지들을 높게 보았다. ‘당선작’으로도 무난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역시 ‘외 2편’이 ‘말티즈…’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다른 작품들의 경우 무리한 설정과 그에 따른 언어의 ‘과부하’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박승일의 ‘비 내리는 법’은 재기발랄한 말솜씨와 상상력, 거침없는 전개에도 불구하고 억지가 없는 세련미를 보여주고 있었다. “지붕에 걸린 구름의 뼈를 다 발라”내고, “샛강의 입이 건너편 뚝방까지 죽 찢어져”가는 이 작품 또한 충분히 당선의 영예를 안겨줄 만 했으나, 어쩌랴, 이 응모자에게도 작품 간의 심한 편차가 걸림돌이 되었다. 작품 공모에 여러 편을 응모할 경우 그 수준이 고르지 못하면 뽑는 이에게 불안감을 주게 마련이다.

 

네 사람의 시 가운데, 우광훈의 ‘1770호 소녀’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함께 보내온 나머지 두 작품도 똑같이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었다. 당선작에서 보듯이 이 작품은 스케일이 참 크다. 시인의 상상력은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깊은 사유를 거느린 채, 그것도 아주 느리게, 우주와 역사, 문명세계를 거닐며 현실과 삶의 진실에 다가가고 있다. 시인은 문장부호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닦아 쓰는 말의 절차탁마가 보였고, 행간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오랜 내공이 느껴졌다. 신뢰가 가는 시인이다. 묵묵히 ‘장인’의 길을 걷기 바란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201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

 

 

파밭 / 홍문숙

 

 

비가 내리는 파밭은 침침하다

제 한 몸 가려줄 잎들이 없으니 오후 내내 어둡다

다만

제 줄기 어딘가에 접혀있던 손톱자국 같은 권태가

힘껏 부풀어 오르며 꼿꼿하게 서는 기척만이 있을 뿐,

비가 내리는 파밭은 어리석다

세상의 어떤 호들갑이 파밭에 들러

오후의 비를 밝히겠는가

그러나 나는 파밭이 좋다

봄이 갈 때까지 못 다 미행한 나비의 길을 묻는 일은

파밭에서 용서받기에 편한 때문이다

어머니도 젊어 한 시절

그곳에서 당신의 시집살이를 용서해주곤 했단다

그러므로 발톱 속부터 생긴 서러움들도 이곳으로 와야 한다

방구석의 우울일랑은 양말처럼 벗어놓고서

하얗고 미지근한 체온만 옮기며 나비처럼 걸어와도 좋을,

나는 텃밭에서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러했듯

한줌의 파를 오래도록 다듬고는

천천히 밭고랑을 빠져나온다

 

 

 

심사평

 

예년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눈에 확 띄는 작품은 없었다. 오늘의 한국시가 갇혀 있는 프레임을 과감하게 깨트리는 작품을 찾을 수 없어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저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소리를 중언부언하는 시는 눈에 띄게 줄었다. 아주 뛰어난 작품은 많지 않으면서도 당선작이 되어도 손색이 없을 작품은 적지 않아 선자들은 마음을 놓았다.

 

특히 다음 네 분의 시가 처음부터 주목을 받았다. 홍문숙의 ‘파밭’ 등은 시를 쓴다는 경직된 포즈가 안 보이면서, 자연스럽고 신선하게 읽혔다. 속도감도 있는 데다 요즘의 유행과도 한 발 떨어져 있는 것도 미덕이었다. 그러나 투고한 작품들의 편차가 심해 쉽게 신뢰감이 가지 않았다.

 

종정순의 ‘개나리는 왜’ 등은 기지도 있어 보이고, 밝고 환한 분위기의 시여서 심사자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우리 시가 가진 청승과 궁상이 없는 것도 호감을 주었다. 하지만 그의 ‘화문석’ ‘현대방앗간’ 같은 산문투의 시들은 시의 맛을 반감시킨다.

 

유명순의 시 중에서는 ‘내통’이 가장 뛰어났다. 부부 간의 관계, 나아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보는 시각이 자못 설득력이 있다. 한데 시들이 전체적으로 숨통을 조일 듯 답답한 것이 흠이다. 게다가 ‘뫼비우스의 띠’ 같은 흔해빠진 이미지가 일부 그의 시를 상투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최인숙의 시들은 모두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표도 큰 무리가 없고 자연스러웠다. 한데 어쩐지 시창작교실의 냄새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시는 쓰는 것이지 쓰여지는 것은 아니지만, 시를 위한 시가 가지는 감동은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이상 네 사람의 시를 놓고 많이 얘기한 끝에 결국 홍문숙의 ‘파밭’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심사위원은 합의했다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오늘의 운세 / 권민경

 

 

 

나는 어제까지 살아 있는 사람

오늘부터 삶이 시작되었다

 

할머니들의 두 개의 무덤을 넘어

마지막 날이 예고된 마야 달력처럼

뚝 끊어진 길을 건너

돌아오지 않을 숲 속엔

정수리에서 솟아난 나무가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고 수많은 손바닥이 흔들린다

오늘의 얼굴이 좋아 어제의 꼬리가 그리워

하나하나 떼어내며 잎사귀 점치면

잎맥을 타고 소용돌이치는 예언, 폭포 너머로 이어지는 운명선

너의 처음이 몇 번째인지 까먹었다

 

톡톡 터지는 투명한 가재 알들에서

갓난 내가 기어 나오고

각자의 태몽을 안고서 흘러간다

물방울 되어 튀어 오르는 몽에 대한 예지

한날한시에 태어난 다른 운명의 손가락

눈물 흘리는 솜털들

나이테에서 태어난 다리에 주름 많은 새들이

 

내일이 말린 두루마리를 물고 올 때

 

오늘부터 삶이 시작되었다

점괘엔

나는 어제까지 죽어 있는 사람

 

 

 

 

심사평

 

이시영 시인· 이광호 문학평론가

 

 

예심을 통해 올라온 작품들 중에서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작품은 네 사람의 것이었다. 임춘자 씨의 ‘주유소의 형식’ 등 6편은 안정된 표현력과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한연우 씨의 ‘그늘의 위대한 고집’ 등 6편은 언어에 대한 수사적 능력에서 장점을 보여주었다. 류성훈 씨의 ‘저녁의 진화’ 등 5편은 어법의 상대적인 참신함이 인정되었다. 권민경 씨의 ‘대출된 책들의 세계’ 등 5편은 시적 언어의 능력과 상투성을 비껴가는 감각이 돋보였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것은, 작품들 사이의 편차가 적었던 임춘자 씨와 권민경 씨의 시들이었다. 임춘자 씨의 작품들이 가진 안정감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들은 평가할 만한 것이었으나, 설명적인 부분들이 감상적인 의미 안으로 시를 가두었다. 권민경 씨의 시는 묘사와 표현의 감각이 청신했다. 당선작이 된 ‘오늘의 운세’라는 작품의 경우, 개인적 운명과 삶의 시작을 둘러싼 시적 해석이 세밀하고 다채로운 이미지들을 통해 펼쳐지고 있었으며, 생의 아이러니를 포착하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심사위원들은 시간의 아이러니에 살아있는 이미지를 부여하는 능력을 중요한 가능성으로 인정할 수 있었다.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유빙(流氷) / 신철규

 

입김으로 뜨거운 음식을 식힐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언 손을 녹일 수도 있다

 

눈물 속에 한 사람을 수몰시킬 수도 있고

눈물 한 방울이 그를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

 

당신은 시계 방향으로,

나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커피 잔을 젓는다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우리는 마지막까지 서로를 포기하지 못했다

점점,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갔다

입김과 눈물로 만든

 

유리창 너머에서 한 쌍의 연인이 서로에게 눈가루를 뿌리고 눈을 뭉쳐 던진다

양팔을 펴고 눈밭을 달린다

 

꽃다발 같은 회오리바람이 불어오고 백사장에 눈이 내린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하얀 모래알

우리는 나선을 그리며 비상한다

 

공중에 펄럭이는 돛

새하얀 커튼

해변의 물거품

 

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시계를 구두 뒤축으로 으깨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시계 방향으로

당신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우리는 천천히 각자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른 속도로 떠내려가는 유빙처럼,

 

 

 

심사평

 

인간의 비극적 관계를 미세하게 통찰하는 눈 돋보여

 

신춘문예 투고 시는 한국 현대시의 미래를 밝히는 작품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작품을 찾긴 힘들었다. 최종심에 남은 작품은 임여기의 ‘면접관’, 정승기의 ‘실종’, 이재흔의 ‘스파이더맨의 후예’, 이도은의 ‘아주 식물적인 꿈’, 신철규의 ‘유빙’ 등 5편이었다. ‘면접관’은 면접관과 면접인 간의 관계 대립을 긴장되고 설득력 있게 고조시켜나갔으나 결구 부분이 너무 안이했다. ‘스파이더맨의 후예’는 고층빌딩 유리창을 닦는 삶의 현장을 선명하게 나타냈으나 ‘제각기 다른 일상의 벼랑 끝에서 한 번씩은 실족했던 사연들이’ 같은 표현이 산문적이고 진부했다. ‘실종’ 또한 현대인의 실종의식을 진지하게 추구한 작품이었으나 전체적으로 산문의 옷을 입고 있다는 점이, ‘아주 식물적인 꿈’은 식물적인 꿈과 연결된 우리 삶의 구체적 양상이 불명확하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돼 결국 당선작은 ‘유빙’으로 결정되었다. ‘유빙’에는 인간의 비극적 관계를 미세하게 통찰하는 개성적인 눈이 있다. 현대사회의 개체적 삶을 ‘각자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른 속도로 떠내려가는 유빙’에 은유한 점은 높이 살만하다. 시 본래의 내재적 리듬감을 살려 유연한 속도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신인다운 내면적 사고의 흐름도 알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도 과장된 이미지나 허장성세가 없고 기성의 어떤 억지스러운 틀에 갇혀 있지 않아 자유분방하다. 한국시단의 대들보가 되길 바란다. / 문정희· 정호승 시인

 

 

 

 

 

2011 경인신춘문예 시 당선작

 

 

 

중세국어연습 혹은 그림 / 오다정

 

 

 

 

달력 뒷장을 읽는다

무심한 세월이 쓰고 간

투명한 글씨 위 아버지

長江 한 줄기 그리셨다

마킹펜이 지난 자리

푸른 물결 굽이굽이

 

배를 띄우랴

가보지 못한 세월 너머로

進進, 언덕으로 포구로

그 어디 너머로 進進

화면 가득 띄우고도 모자라

반 토막만 남겨진 배

 

돛대도 물결도 반 토막이

된 자리, 아버지 또 그리신다

정직한 삼각형

한· 두· 세· 네

넘어보자 했으나 넘지 못했던

능선 뾰족뾰족 이어진다

 

빨갛고 검은 日歷의 뒷면

연습 없어 미리 살지 못한 세월로

열 두 척 반, 배 떠간다

아버지, 그려내신 한 장 그림

소실의 문자 빼곡히 박힌

발음되지 않는 국어책 같다

 

 

 

심사평

 

은유·상징 적절히 조율된 수작… 앞으로 좋은 시인 되리라 확신

 

 

'중세국어연습 혹은 그림'은 당선작으로 손색없는 시다.

 

 

이 분의 시에는 우선 어려운 말이 없다. 시에 어려운 말을 쓰면 정말 어려워진다. 그런데 본심에 올라온 시가 대개 그러한 시였다. 시는 간결하고 핵심적으로 삶을 노래하자는 것이므로 문장이 헛갈리거나 하면 그냥 놓아버리게 된다. 누가 끙끙거려가면서까지 시를 읽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있을 건 다 있다. 행과 행 사이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으며 사유의 도약은 읽는 사람을 화들짝 깨어나게 한다. 시와 산문의 구별점이 그것 아니겠는가.

 

당선작은 은유와 상징, 환상, 그리고 우리네 생활이 적절히 조율된 수작이라 할 만하다. 가령 '마킹펜이 지난 자리/ 푸른 물결 굽이굽이// 배를 띄우랴'에서 연과 연 사이의 바다를 보라! 게다가 '반 토막만 남겨진 배'는 우리를 금세 이 세상 저편으로 싣고 가지 않는가. 더불어 '굽이굽이' , '進進', '뾰족뾰족' 등등 적절히 배치한 리듬은 시의 맛을 크게 살려준다. 이만한 '언어'와 '사유'라면 당선작으로 충분했다. 최근 회자되는 장광설의 시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상쾌한 작품이다. 앞으로 좋은 시인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마지막까지 논의한 작품은 최인숙씨의 '무지개' 와 허영둘씨의 '고요를 잘 살펴보면' 등이었다. 모두 잘 짜여진 작품들로 읽혔으나 굳이 단점을 들라면 너무 기성품 같다는 것이었다. 조금은 서툴지만 독자의 감각을 자극하는 작품이 더 새롭고 매력적이라는 점에서 아쉽게 내려놓게 됐다. 이 분들 역시 훗날 좋은 시인으로 만나게 되리라고 믿는다. 단지 운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해주시기 바란다.

 

 

 

 

 

2011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은단풍 / 김남이

 

 

사원식당 앞 은단풍나무,

어린아이 징검다리 건너듯 갸웃갸웃

자그마한 풍선이 포르르 날며 구르는 듯

조심스레 입 밖으로 걸어 나오는

그 소리 은은하고 맑아서

나중에 ‘은단풍’이라는 딸을 낳고 싶었던

 

그 나무 밑에서 점심시간마다 우리는 비스킷을 먹었지

기계 소리도 작업반장도 없는 그 나무 밑에서 깔깔거리며

스무 살 부근을 와작와작 부셔 먹었지만

몇몇은 그 나무에 기대어 늙은이처럼 담배를 피워 물었지만

 

사원식당 앞 은단풍

깨끗한 아침 햇살과

강해지려고 자꾸 다짐하는 한낮의 태양과

한쪽 뺨이 그늘진 노을도 골고루 먹고

큰 키로 수천의 반짝이는 잎들 흔들 때

내가 믿는 신처럼 올려다보게 하던

 

은단풍 은단풍 은단풍

그렇게 주문을 외면

 

내 안에서도 나무 한 그루 뚫고 나와 삐죽 솟던

그 나무에 무엇인가 자꾸 매달고 싶던…….

 

 

심사평

 

해맑은 느낌 자신의 체험과 잘 배합

 

 

22명의 작품이 본심을 통과했다. 우리는 응모자의 이름을 가린 원고를 읽었다. 지난해에 비해 좋은 시들이 훨씬 많아 시를 읽는 일이 즐거웠다.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는 뜻이리라. 향상된 작품의 수준도 우리를 흐뭇하게 만들었다.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탄탄한 시가 여럿이었다.

 

당선작 〈은단풍〉은 ‘은단풍’이라는 음성이 내장하고 있는 은은하고 맑은 느낌을 자신의 체험과 잘 배합하여 성공한 작품이다. 시인의 해맑은 세계관이 활달한 어조에 실려 더욱 매력적이다. 정작 알맹이로서의 삶은 들어내고 언어만 난무하는 시가 유행하는 때에 좋은 귀감이 되리라고 본다. 축하를 드린다.

 

이밖에 우리의 주목을 끈 시로 〈하모니카 소리〉가 있었다. 당선작과 마찬가지로 발랄한 문체가 시에 생기를 더했다. 감각을 절제된 언어로 껴안을 줄 아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를 ‘만드는’ 기술이 진정성을 압도하는 느낌을 주면 안된다.

 

또 하나 〈징검다리〉는 삶에 대한 깨달음이 도드라져 보이는 시다. 하지만 시적 깨달음은 남이 건너가지 못한 강을 건너가려는 고집에서 나온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나무의 문〉〈끈〉〈붉은발농게〉〈마늘〉도 유심히 읽었음을 적어 둔다.

 

시라는 양식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것, 그것도 재능이라는 것을 당선자와 모든 응모자에게 말해 주고 싶다. -이문재. 안도현

 

 

 

 

 

2011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분천동 본가입납(本家入納) / 이명

 

 

태어나 최초로 걸었다는 산길을 돌아

푹신한 나뭇잎을 밟으며

청주 한 병 들고 능선을 밟아 내려갔니더

누님이 벌초를 해놓은 20년 묵은 산소는

어둡고 짙은 주변의 빛깔과는 달리 어찌나 밝은지

무덤이 아니었니더

봉긋하게 솟아오른 아담한 봉오리

그랬니더, 그것은 어매의 젖이었니더

진초록 적삼을 살짝 풀어 헤친 자리에 속살이 드러나고

빛이 쏟아져 나왔지요

나는 그만 아기가 되어 한참동안 보듬고 쓰다듬고

얼굴을 파묻었을 때는 맥박소리가 들려오고

숨이 턱 막혔었니더

내가 오는 줄 알고

미리 나뭇잎으로 길을 덮어두고

아삭아삭한 소리까지 그 속에 갈무리해 두었디더

나는 낙엽을 밟으며 산등을 넘고

어매는 그 소리에 옷고름을 풀었겠지요

적삼 속에서 영일만 바다가 아장아장 걸어나오고

해안선이 출렁거리고

옹실몽실한 백사장이 예전과 같았니더

이 젖의 힘으로 여태껏

이름 모를 풀벌레들이 환하게 한 세상 살고 있고

하늘 가득 씨앗들이 날아오르고

파릇파릇 아기 부처들이 자라나고 있었니더

 

 

 

심사평

 

잘 익은 말의 빛깔

 

아침의 언어는 언제나 눈부시다. 신춘문예의 벽을 넘기 위해 오래고 먼 모국어의 장강을 거슬러 올라온 신인조들이 저마다의 빛깔과 소리와 뜻을 절정으로 뽑아낸 시, 시조는 더욱 그렇다. 시조가 우리의 전통시인 터에 굳이 자유시와 나뉘일 까닭이 있을까마는 지금까지의 현상은 분리해서 공모를 했었는데 불교신문의 경우는 시라는 큰 틀 속에 묶은 것이다.

 

총 310인의 응모자에 편수로 1000편이 넘는 작품들을 읽으며 느낀 것은 대체로 시의 수준이 고르게 높아가고 있으며 시 경작을 하는 후보층이 두텁다는 것이었다. 다만 시행지가 주는 종교적 선입견 때문인지 불교적 소재나 주제의 작품들이 두드러지게 많았다는 점이다. 그것이 감점 요인이 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의식적인 필요는 없어야 할 일이다.

 

어렵게 가려낸 결과 ‘분천동본가입납’ ‘순천만의 저녁’ ‘소금꽃’ ‘돌탑을 쌓으며’ ‘대숲이 있는 항아리’를 최종심에 올려놓고 저울의 눈금재기를 해서 ‘분천동본가입납’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시도 예술의 한 양식인 이상 시대적 패러다임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몇 해 특히 신인들이 좇아가는 시의 흐름은 우리 시의 정체성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당선작 ‘분천동본가입납’은 연어가 모천으로 회귀하듯 어머니의 산소에 가서 “어메의 젖”과 만나는 “풀벌레들이 환하게 한 세상을 살고 잇는” 정경들이 크게 꾸미지도 않으면서 깊고 은은한 가락으로 펼쳐진다. 다시 아기가 되는 화자와 어메와의 해후가 “…니더”의 화법으로 전해주는 잘 익은 말의 빛깔이 오래 묵은 향기로 피어난다. 함께 보내온 ‘추사가 보내온 저녁’이 작품을 끌어올리는 밑밭침이 되었음을 덧붙인다. 더욱 큰 성과있으시기를 빈다.

 

 

 

2011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고사목 / 고경숙

 

연대기를 알 수 없는

검은 책이다

먼 시간을 집대성한 페이지를 넘기면

불탄 새의 발자국이 떠도는

바람의 유적지

막다른 길에서 시간은 일어선다

이마에 매지구름 걸쳐놓고

진눈깨비 맞는 산,

박제된 새소리가 나이테를 안고

풍장에 든 까닭 차마 발설할 수 없어

활활 피우는 눈꽃은 은유다

명조체로 흐르는 햇살이 서술하는

몰락한 종교의 잠언서

나무의 필적이 행간을 읽는 동안

다하지 못한 어둠이 전하는 고전이다

꺾인 나뭇가지는

허공을 수식하는 문장이다

숨찬 몇 권의 눈부심이 사리처럼 반짝인다

새떼들 젖은 울음이 밑줄을 긋고

구전하는 말씀들

일편단심이다

생은 뼈를 삭이는 절명시다

 

맨몸으로 그루잠을 건너온

울창한 기억들

작자미상의 목판본 한 질을 집필하고

 

 

 

▷1958년 경남 통영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과 졸업

 

 

 

 

 

 

심사평

 

선명한 묘사, 참신한 비유 돋보여

 

1300여편에 이르는 많은 작품들 중에서 한 편의 뛰어난 시를 고르는 일은 무척이나 지난했다. 오랜 수련과 고뇌를 거쳐 생산되었을 다기한 사연의 시들은 그 부피와 다양성만큼이나 압도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자의 눈을 확 트이게 하는 작품은 쉬 찾아지질 않았다. 여러 번 읽고 또 읽어서. 수준급의 기량과 언어의 진정성을 확보하는데 있어 다른 응모작들과 차별성을 보이고 있는 시편들로 우종태씨의 '대패질'외 2편, 김화섭씨의 '빈집에 서다'외 2편, 고경숙씨의 '고사목'외 3편을 최종적으로 선별해놓고 고심을 했다.

 

우종태씨의 경우 오랜 습작을 거친 분답게 시를 끌어가는 저력과 안정된 짜임이 돋보였지만 뒷심이 조금 딸리는 듯했다. 김화섭씨의 '빈집에 서다'는 묘사와 진술능력이 뛰어나고 이야기의 전달도 뚜렷했지만, 다른 작품들이 그에 상응하는 경지를 보여주고 있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고경숙씨는 언어를 다루는 재치가 상당해보였다. 묘사의 선명성이나 비유의 참신함에 위트까지 두루 갖췄고 리듬에 대한 고려도 엿보인다. 그러나 재치가 승해서일까, 가끔씩 어휘가 시적 맥락 안에서의 조화를 잃고 튀는 흠결이 있었다. 나름대로 각각의 장점과 단점을 공유하고 있었으나, 무엇보다도 시가 언어의 예술이라는 근본 명제를 들어 우리는 최종적으로 고경숙씨의 '고사목'을 당선작으로 밀기로 했다. 이 외에도 한교만, 안은주, 백명희, 이경옥 제씨의 작품들도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었음을 밝혀둔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아쉽게 탈락한 분들에게는 격려와 함께 지속적인 정진을 부탁드린다. 시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 있으라!

 

<김승립·시인>

 

 

 

2011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팔거천 연가 / 윤순희

 

 

 

여름밤 내내 팔거천*변 돌고 또 돌았습니다 아직 물고기 펄떡이는 물 속 물새알 낳기도 하는 풀숲 달맞이꽃 지천으로 피어 십 수년째 오르지 않는 집값 펴지기를 깨금발로 기다리지만 대학병원 들어서면 3호선 개통되면 국우터널 무료화 되면 하는 황소개구리 울음 텅텅 울리는 탁상행정 뿐입니다

 

풀숲에서 주운 새들의 알 희고 딱딱한 것들 날마다 수성구를 향하여 샷을 날려 보내지만 죽은 알들은 금호강을 건너지 못하고 팔달교 교각 맞고 튕겨져 나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강을 건너지 못하면 저 물새들 살얼음 낀 물속에서 언 발 교대로 들어 올렸다 내릴 텐데

 

환하게 타오르던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의 불빛 온기는 어디까지 번져 갈 것인지요

 

물새들의 울음소리 팔거천 가득 울려 퍼지는 날 낮달 같은 새댁들 강변 가득 붉은 나팔 불며 여덟 갈래 꿈꾸며 비상 하겠지요.

 

*팔거천 : 팔공산 자락에서 흘러든 여덟 갈래 물줄기가 합쳐져 대구의 강북인 칠곡 신도시를 거쳐 금호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달집태우기 행사를 한다.

 

 

 

심사평

 

삶의 연륜 묻어나는 감수성에 호감

 

이름이 가려진 채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30명의 작품 126편을 읽고 나서 ‘치즈의 눈물’ ‘벌침’ ‘거울 속의 나’ ‘팔거천 연가’ 네 작품을 가려내었다. ‘치즈의 눈물’은 말을 다루는 솜씨가 있고 잘 읽히나, 툭 차고 일어나 비상할 시점을 놓치고 시가 제자리에 맴돌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벌침’은 혼신의 힘을 다해 쓴 ‘톡 쏘는 시’ 한 편이 마치 죽음을 무릅쓰고 쏜 ‘벌침’과 같다는 생각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치열한 시정신을 읽을 수 있으나 함께 제출된 그의 다른 작품들이 그걸 받쳐줄만한 뒷심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

 

‘거울 속의 나’는 시상이 명징하고 통일성이 있어 깔끔하게 읽힌다. 그러나 ‘거울’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은 너무도 흔한 주제라서 신인다운 신선함을 느끼게 하지는 못했다.

 

‘팔거천 연가’는 다른 작가의 작품들에 비해 삶의 무게나 연륜이 느껴지는 구체적인 표현들이 안정감이 있고 감수성도 예민하여 호감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함께 제출된 다른 작품들에서 보여주는 이웃에 대한 따듯한 마음의 질량도 듬직했다. 숙고 끝에 <팔거천 연가>를 당선작으로 내기로 마음을 굳혔다. 새로운 시인의 탄생을 축하 드린다. 정진이 있기 바란다.

 

▲ 정희성

 

 

 

 

제6회 경제신춘문예 우수상

 

 

반가운 까치집 외 1편 / 박혜란

 

 

아침마다 삼촌은 머리에 까치집을 짓습니다

밤새 헝클어진 머리로 찾아온 까치 부리가 쿡쿡

노총각 정수리를 쪼고 갔던 것이지요

목과 팔이 늘어난 러닝셔츠를 주워 입고

연거푸 머리를 긁으며 수돗가로 가는 삼촌의 뒷모습은

어수룩하고 궁핍합니다

 

툇마루에 할머니는 속병이 난지 오래

보내 놓은 입사원서 소식이 궁금해지는 대낮까지

푹, 잠을 자다가 허연 배를 긁고 나오던 삼촌은

실업보다 실없게 웃는 걸 잘 한답니다

할머니 타박하는 소리가 딱. 딱. 정수리를 때리고

구르르릉, 구르르릉 전기 펌프에 물 차오르는 소리가

아무도 모르게 삼촌 가슴 속까지 뻗어갑니다

 

베트남 처자라도 좋으니 젯밥 좀 얻어먹자고

일품 팔아 누추한 가계 좀 일으키라고

까치집의 까치가 바람을 모아 먹이를 물어 줍니다

순식간, 펌프로 차오르는 오래 고인 물처럼

한 가계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

삼촌 식도에서는 역류하는 쓴기침이 한참이지요

 

삼촌은 머리에 까치 한 마리 틀고 마당으로 걸어갑니다

할머니 걱정을 쓰락쓰락 밟고 뒷모습을 새겨갑니다

미워서 자꾸만 깊게 들리는 삼촌 발자국 소리가

까치 울음보다 더 손님 같은 대낮이 오고 있습니다

부스스한 정수리에서 까치도 까치처럼 잘도 웁니다

 

 

오징어의 生 / 박혜란

 

바다를 향해 수 만개의 발들이 말라가고 있다.

한 때 저 흡판들은 바다를 물어뜯던 폭력이었을 것이다.

새벽 출항, 집어등에 속아서 배를 가르고

꼬챙이에 꿰어져 내장도 제 속내도 다 내어주었던 것.

오징어는 온몸으로 햇빛을 투과시키며 온순해졌을 것이다.

바다에서 빠져나온 질량만큼, 다시

바다를 향해 몸에 깃든 물을 풀어주면서

늘 젖어 살았던 몸들이 있는 힘껏 가벼워지고 있다

어부들의 이른 잠과 밤바다를 낮에 엮어 가는 여인들의 노고까지

내일의 파도를 염려하며 축 늘어진 발은 다 알고 있는 듯

축 바닥을 향해 떨어진다

적당한 염분들은 투명한 몸에서 갈변되고

바람에 쉬이- 하고 사라지는 영혼들은 천천히 몸을 잊고 있다

아무리 바다를 캐내도 통장의 잔고는 뱃고동을 울리지 않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 몸들은 부력보다는 중력이 먼저다

이제 바다를 향해 뻗어갈 듯 저 수 만개의 발들을 보라!

오징어는 바다를 끝까지 놓아주지 않으려고 눈에

가시 같은 뼈를 품고 있었다

 

 

 

17회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시 당선작 

/ 정영희 

 

쇠죽 쑤는 저녁이었다

집집마다 장작불이 타오르고

쌀 앉히는 소리로 마을이 저물면

밤이 이슥하도록 두런두런 눈이 내렸다

국화송이 같은 눈송이를 툭툭 털어내며

혈족들 하나 둘 모여 들고

풀 먹인 밤을 와시락와시락 눈이 내려

창호지 밖은 불을 켜지 않아도 환했다

시릉 위에 얹혀 있던 해묵은 이야기로

할머니 장죽에 담뱃불을 붙이시면

오촌 당숙은 18대조 할아버지 이야기로

눈내리는 장백산맥을 한 달음에 뛰어 넘고

엄마와 숙모는 치맛자락도 펄럭이지 않고

광으로 부엌으로 걸음이 분주했다

작은아버지는 밤을 치시고

흰두루마기 입으신 아버지

먹을 갈아 지방을 쓰셨는데

타닥타닥 발간 화롯불 온기 속으로

한 번도 보지 못한 고조할배 다녀가시고

슬하에 자식 없던 증조 할매

눈물바람으로 다녀가시고

나이 열 여섯에 절손 된 집안에 양자로 오신 할아버지

그 저녁에 떨어진 벌건 불화로에

다리 절룩이며 다녀가시고

눈이 까만 아이들이 잠을 설치는 밤

뒤란 대숲에는 정적이 한 자나 쌓였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눈을 맞으며

오늘도 눈 푸른 열 여섯 살의 아들,

그 아들의 아들들이

쿵쿵 계단을 밟으며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심사평

자기 성찰에 충실한 일깨움 돋보여    올해의 응모작품(426편) 대부분이 그 어느 해보다 현란하고 무분별한 어휘들이 난무하는 작품들이 많고 자기 목소리를 가진 작품이 적었다. 공허와 두려움마저 느끼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작품들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던 것 같다.

 

  선자의 손에 마지막까지 우열을 겨루었던 작품으로는 정영희의 ‘끈’, 황명희의 ‘나방과 조각상’, 김은실의 ‘겨울 오동나무에게 민원을 냈다’, 김상경의 ‘트럭위의 소 한 마리’ 등의 작품이었다.

 

  황명희의 ‘나방과 조각상’은 나방과 조각상이 대화를 통해 발가벗겨진 부동의 몸인 조각상과 나비 아닌 존재로써의 날 수 있는 생명체로의 회복을 꾀하고 있는 발상이 흥미롭다. 김은실의 ‘겨울 오동나무에게 민원을 냈다’란 작품에서 ‘세상사가 그대가 피고 지는 사이에 먹어치운 빵과 우유 같다’는 표현 등이 이채롭다. 그리고 김상경의 ‘트럭위의 소 한 마리’란 작품은 있는 힘 다해 주인 눈치 보지 않고 젊음을 불사르고 태연히 정해진 길을 가고 있는 의연함에서 한 생명의 존엄함을 읽을 수 있었다.

 

  정영희의 시 ‘끈’에서는 이 시대 삶은 얻는 것도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잃거나 잊혀가는 것들이 많다. 뿌리근원에 대한 의식을 통해 자아의 성찰과 인식을 찾아가고 있는 작품이다. 그대로 풀어 놓으면 한편의 동화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정통적 서정의 힘, 자아발견의 성찰이란 일깨움이 돋보여 당선작으로 밀었다.

 

  앞으로 역동적이고 절제된 시어 찾기와, 더욱더 관념을 탈피하고 사물시를 쓰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정연덕(시인)

 

 

2011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마드리드 호텔 602호 / 이재성

 

독한 럼주병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하급선원들이 돌아온 바다와

떠나갈 바다를 위해서 건배를 하는 사이

호텔 602호는 마스트를 세우고 바다 위에 떠있다.

아니 이미 항진 중인지도 모른다. 바다에서

허무, 낡은 시집의 행간, 해무는 같은 색이다.

점점 깊어지는 밤의 해무

수시로 무적이 길게 혹은 짧게 울리고

J는 아직 조타륜을 잡고 자신의 바다를 항해 중일 것이다. 조타실의 문을 열자

바다 속에서는 해독할 수 없는 안개가 타전되고

나는 이미 길을 잃은 한 척의 운명

해도를 펼쳐 북극성의 좌표를 찾는다.

J도 이 바다를 떠나 희망봉을 찾아 갔을 것이다.

스무 살, 바다를 잡을 때마다

늘 빈 손바닥이었다.

지금도 바다는 나에게 오리무중이다.

늙은 고양이가 친숙한 비린내를 풍기며

안개 속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안녕, 이 하룻밤도 안개처럼 사라질 것이다.

안녕, 나도 사라질 것이다.

J가 누워 있던 침대엔

낡은 바다가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이번 항해가 길어질지 모른다.

어쩌면 무사히 귀항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마드리드 항에서 이 호텔은

항해사들로 이미 만원이다.

하지만 이 호텔에는 602호는 없다.

 

 

심사평

 

 몰입·반전의 시적 매력 뛰어나

   신춘문예 시 부문 투고자가 지난해에 비해 많았다. 전국에서 많은 작품이 투고됐다. 엄격한 예심을 통해 본심에 올라온 작품도 14편이나 되었다. 소재도 다양하고 시의 맛들도 독특했지만 최종심에 4편 ‘어떤 습격’, ‘장미와 칸나 사이’, ‘록클라이밍’, ‘마드리드호텔 602호’가 남았다.

  ‘어떤 습격’은 노모와 아들이 은행나무를 털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은행나무에서 새를 발견하고 ‘내가 해마다 가을이면 털어낸 것들 모두가/새들의 노란 울음이었나’까지 이끌어 내는 힘이 돋보였다. 하지만 그 힘을 만들기 위해 시가 가진 산문성이 강한 것이 흠이었다.

 

  ‘장미와 칸나 사이’는 잘 쓰인 시다. 시를 만들어 내는 기술도 남달랐다. 같이 응모한 시들도 잘 다듬어진 시였다. 단지 기존의 문예지에서 읽을 수 있는 익숙함에 심사위원들의 우려가 있었다. 신인의 시에서 볼 수 있는 패기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록클라이밍’과 ‘마드리드호텔 602호’는 같은 수준의 시였다. 어느 것을 당선작을 뽑아도 좋았다. 당선작을 뽑는 것이 ‘진검승부’였다.

 

  ‘록클라이밍’은 힘과 절제가 뛰어났다. 그러면서도 빠르게 읽히는 속도가 있었다. 암벽타기를 인생에 비유해 독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날카로웠다. ‘추락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벽을 오른다’는 명제는 누구에게나 쉽게 감동으로 이어지는 시였다.

 

  ‘마드리드호텔 602호’는 오랜만에 만나는 신춘문예 풍의 시다. 28행의 비교적 긴 시인 데도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만만찮았다. 한 번 읽으면 끝까지 읽게 하는 환상적인 시적 매력에, 바다에 대한 이해력도 뛰어났다. 마드리드호텔 602호에서 시작되는 바다 이야기가 마지막에 가서 ‘하지만 이 호텔에는 602호가 없다’는 반전이 시의 맛을 진하게 느끼게 했다.

 

  심사위원들은 숙독과 합평을 통해 ‘마드리드호텔 602호’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진검승부를 겨룬 ‘록클라이밍’의 투고자에게는 내년에도 좋은 시로 만날 수 있길 바란다는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 이광석·정일근>

 

 

 2011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모래내시장 / 하미경  

 

야채 썩는 냄새가 고소해지면

장터는 복숭아처럼 익는다

중고 가게 앞 내장을 비운 냉장고가

과일의 단내며 생선냄새며 땀내 들을

가리지 않고 거두어들일 무렵

은혜수선집은 벌써 불을 켜고 저녁의 한 모퉁이를 깁는다

박미자머리사랑을 지나면 몽땅 떨이라느니

거저 가져가라느니 농약을 치지 않은 다급한 말들이

등을 타고 내려 고무줄 늘어난 추리닝처럼

낭창낭창 소쿠리 속으로 들어간다

남들 보기 거시기 하다고 자식들이 말려도

팔 것들을 꾸역꾸역 보자기에 챙겨 나온 할머니는

돌아갈 시간이 아직 남아 있는지

빠진 이 사이로 질질질 과즙을 흘리며

복숭아 짓무른 데를 떼어 물고 오물거린다

문 닫는 속옷 가게에는 땡땡이무늬 잠옷이

잠들지 않고 하늘거린다 잠옷을 입고

늘어지게 자고 싶은 허리 대신

빈 바구니마다 어느새 어둠이 드러누웠다 

 심사평/ 정양시인     올해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는 오백 십여 편의 많은 작품들이 응모되었다.  응모하신 분들의 주소가 일부러 안배라도 한 것처럼 전북뿐만 아니라 서울을 비롯해서 8도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예년에 비하여 많은 편인지 적은 편인지 전북도민일보의 신춘문예 심사를 올해 처음 맡게 된 선자로서는 잘 모를 일이지만 510 : 1이라는 그 경쟁률이 참으로 아찔했다.

  대개는 한 분이 3편 내지 10 편씩 보내셨다는데 어떤 분은 48편이나 되는 시를 한꺼번에 응모하시기도 했다고 한다. 48편은 너무 많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달랑 3 편만 보내신 경우는 그걸로 그 문학적 역량을 가늠하기에는 너무 섭섭하지 않겠나 싶었다. 그런데도 3편씩 응모하신 분들이 의외로 많았다는데. 그건 아마도 여기저기 중복투고를 피하려고 작품들을 분산시킨 결과일 것이다.

 

  예심을 거쳐 결선에 오른 작품은 여섯 분이 응모하신 23 편이었다.  결선에 오른 작품들은 우열을 가리기가 몹시 어려웠다.  그런 걸 행복한 고민이라고들 한다는데, 막상 닥치고 보면 그건 결코 행복한 일이 못 된다.  행복하기는커녕 작품을 하나씩 제외시킬 때마다 여러 차례나 망설여야 하는 게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그 중에서 한 편만 가려 뽑을 게 아니라 한 사람당 한 편씩 여섯 편만 당선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그렇게 뽑아 본 여섯 편은 다음과 같다.  성함을 밝히는 일이 낙선된 분들께는 결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작품명만 밝힌다.

 

「분천동 본가입납」 , 「인절미」, 「개성삼계탕」, 「엄마의 인주」, 「장항선」,「모래내시장」.

「인절미」,「개성삼계탕」,「장항선」,「모래내시장」은 공교롭게도 응모작 묶음의 두 번째에 있는 작품들이었다.  신춘문예 심사를 하다보면 번번이 맨 앞에 내세운 작품보다 그 다음 작품이 선자의 맘에 드는 일이 많은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꼭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맨 앞에 내세운 작품들은 흔히 말하는 ‘신춘문예적 경향’을 의식하느라 온몸에 힘이 들어간 것 같고 , 그런 경향으로부터   조금 비껴 선 두 번째 작품들이 비교적 안정감을 유지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었다. 

 「분천동 본가입납」과「모래내시장」두 작품을 마지막까지 저울질하다가 작품의 안정감과 말맛과 그 정감들이 다소 돋보이는 하미경의「모래내시장」을 당선작으로 뽑으면서 동짓달 긴긴 밤, 뽑지 못한 작품들 때문에 못내 마음이 무겁다.

 

2011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오래된 골목 / 장정희

 

작은 아버지 바지가 걸린 바지랑대 사이로 푸석한 골목이 보였다.

구암댁 할아버지 이끼 낀 돌담을 짚으며 모퉁이를 돌아가고

양철대문이 덜컹, 삽살개가 기다림의 목덜미를 물었다.

입대한 큰아들 주검으로 돌아오던 그날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작은 아버지는 좀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발가락이 오그라든 대문은 문패를 버리고 밤새

신작로 쪽으로 귀를 던져 놓고 있었다.

낮은 지붕을 내려온 거미가 먼저 발을 내딛는 골목,

목줄을 잡아 맬 수 없는 굴뚝으로 연기는 담쟁이넝쿨같이 기어 나왔다.

뼈마디 드러난 상처를 덮듯 배추는 또 자라나고

햇살은 어두운 골목에 도둑고양이의 눈빛을 씨앗처럼 심어주었다.

다섯 살박이 손자가 작은 아버지 팔을 잡아당기며 대문을 나서고.

나는 빨랫줄 문 집게처럼 뻣뻣한 골목의 시간을 만지고.

바람이 골목에 발을 담글 때마다, 나는

한 남자의 내면을 수없이 들여다보았다.

 

 

참신한 묘사적 표현, 시에 생기 불어 넣어

  좋은 시는 남들과 다른 언어를 건지려는 노력에서 나온다. 그렇게 태어난 시는 이기적이면서 품이 넓다. 그런데 비유가 생경한 시, 비문이 노출된 시, 인위적으로 제작하는 데 급급한 시들이 적지 않았다. 다들 조바심을 내는 듯했다.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친 시들이 그만큼 아쉬웠다는 말이다.

 

  네 분의 시가 마지막까지 남았다. 정지웅 씨의 '매미'는 매미 울음이 공중에 구멍을 뚫는다는 재치 있는 발상의 시다. 발상이 그저 발상으로 끝난 아쉬움이 크다. 소재를 끝까지 밀고 가는 힘을 키워야 할 것이다. 이명옥 씨의 '사과 연대기'는 어투가 매우 발랄하고 상상의 진폭이 크다. 시에서 감각을 어떻게 끌어올려야 하는지 아는 사람 같다. 하지만 시를 만지는 손끝이 너무 쉽게 드러나 보이는 게 흠이다. 최병국 씨의 '구름을 걷는 달팽이' 외 몇 편은 상당히 현란한 상상력과 언어 구사 능력을 보여준다. 문장과 문장 사이 의미의 연결이 불투명한 약점을 시급히 보완하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는 장정희 씨의 '오래된 골목'을 당선작으로 뽑는데 합의했다. 언뜻 보면 평이해 보이지만 자신의 사유를 잘 간추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있는 시다. 군데군데 참신한 묘사적 표현이 시에 생기를 더하면서 '오래된 골목'의 전경을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앞으로 더 좋은 시를 보여주는 시인으로 성장하시기를 바란다. 축하를 드린다.

  황동규. 안도현 시인

 

 

 

2011 전남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손톱 안 남자 / 송해영

 

매니큐어 칠을 한 손톱 안엔

내 손톱을 장악한 한 남자가 살고 있다.

자꾸 자기 말 좀 들어보라며 나를 불러들인다.

무시를 할수록 자꾸 성가시게 군다.

귓가에 쟁쟁하게 맴도는 그 말은

달콤한 사탕을 물려주는 유혹과 같다.

더욱 들여다보라고 보채는 남자,

이 남자가 주는 카타르시스라니!

칠을 벗길수록 더욱 강해지는 스릴정도는

그도 잘 알고 있어 나를 정도껏 조종한다.

받아들이기 힘든 컬러를 자꾸 재촉한다.

바르라는 속삭임이 귓바퀴를 타고 들려오면

어쩔 수 없이 들여다보고 한참 얘기를 해주어야 한다.

이것으로 나는 어디에서나 돋보일 것을 예상한다.

그냥 이 남자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이렇게 말을 잘 들으면 일주일은 잠잠할 테지.

손톱 속 남자는 변덕이 심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내가 원하는 것, 어느새 이 유혹에 빠져 있다.

손톱 안에 살고 있는 남자,

칠을 지우면 죽어버리는 가혹한 운명의 남자,

내 손톱 안엔 한 남자가 징그럽게 살고 있다.

 

  심사평

 

"마음 속 갈등 절묘한 표현 돋보여" /고재종 시인     이번 본심에 올라온 23명의 시들의 경향은 전반적으로 사회역사적 상상력의 퇴조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이라고 치부하기엔 문학의 사회적 기능의 약화가 염려스러울 정도였다. 이를 대체한 얄팍한 생태주의, 깊은 사유에 도달하지 못한 채 감상주의에 머무른 많은 내면의 시, 그리고 판타지들을 보면서 괴로움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다행히 주명숙의 '즐거운 제국', 강혜원의 '카나리아', 송해영의 '손톱 안 남자' 라는 시편들을 만난 것은 다행이었다.

 

  주명숙의 시에서는 주방을 '즐거운 제국'으로 보고 거기서 '장기집권'을 누리는 주부 입장에서 "잘 버무려진 식단은 제국을 견인해 나갈 크레인이니까요"라고 말하는 그 발성법이 발랄하여 오래 눈길이 갔다. 강혜원의 시는 새장에 갇힌 아이새와 엄마새의 논전을 통해 아이새의 위험한 자유에 대한 갈망과 이에 대응하는 엄마새의 안일한 통찰을 대조적으로 드러내 세대간의 갈등과 소통을 말하고자 한 상상력이 빛나는 시였다.

 

  송해영의 <손톱 안 남자>엔 반전이 있다. 일찍이 서정주의 시 이래 여자의 '손톱'은 성적코드였다. 이 손톱에 "받아들이기 힘든 컬러를 자꾸 재촉"하는 남자의 요구에 부응한 메니큐어칠 행위는 남자의 변덕스런 욕망에 노예가 되어가는 여자의 안쓰러운 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의 반전은 남자가 원하는 것이 곧 "내가 원하는 것"이라는 진술로, 이는 우리 마음속의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갈등을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다. 하나의 마음은 남자의 '조종'을 거부하면서도 또 다른 마음은 어느새 나도 그를 조종하고 싶은 성적욕망 말이다.

 

  위 시들 중에 한 편을 골라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예심자를 불러 상의했으나 결국 나의 결정은 가능성 쪽에 무게를 둔 송해영이었다. 송해영은 다른 시편들도 일정한 수준을 유지해서 믿음이 갔지만 표현의 평이함이 자꾸 눈에 거슬렸다. 이를 보완하면 좋은 시인이 될 걸로 믿어 당선으로 민다. <광주ㆍ전남작가회의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