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중앙대학교 대학원, 1989년 출판저널 기자, 199년 김수영문학상 수상
길위에서 생을 마감하리라/차창룡
승가에 입문하기 직전에 이 글을 마친다. 근기가 강하다면 굳이 승가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련만 너무 부족한 것이 많기에 속세의 인연을 접고 떠나기로 했다. 부처님의 승가에 귀의하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가 불교성지순례에 있었다. 실로 부처님의 성지는 내게 바람으로 법을 속삭여주었고, 그 바람은 풀잎으로 말해주었고, 풀잎은 벌레의 움직임으로 자신의 뜻을 전해주었고, 벌레는 번데기가 되어 선정에 들어갔다가 놀라운 우화등선을 통해 나비가 되어 새로운 인연을 맺을 것을 재촉했다.
실로 꿈 같은 길을 걸어서 나는 여기까지 왔다. 시인으로서 꽤 긴 세월을 살았다. 1989년 문단에 데뷔한 후 운이 좋아 좋은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문학상도 받았다. 그동안 네 권의 시집을 냈으며, 이 책의 전편으로 ?인도신화기행?을 펴내기도 했다. 대학원에서 전공을 문학으로 바꾸어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스스로 열심히 공부했다고 자부한다. 긴 세월 책과 씨름하면서 많은 것을 깨우치고, 문학을 가르치는 것에도 큰 재미를 느꼈다.
10여년 동안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보람도 얻었다. 그 학생들 중 몇 명은 좋은 시인이 되어 문단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학생들과 함께 문학을 탐구하고 문학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고 그들 앞에서 열변을 토하기도 한 세월 참으로 행복했다.
인도를생각하는예술인모임(약칭 ‘인생모’)을 시작한 지도 만 4년이 되었다. 인도를 생각하면서 나는 많이 성숙했고, 그로 인해 새로운 길을 가게 되었다. 인생모의 산파 역할을 해주신 송기원 선생님께서 언젠가 말씀하셨다. 불가에 입문한 승려들이 “내가 왜 속세에서 견디지 못하고 출가했을까?”라는 화두를 가지고 참선한다면 금방 깨우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도 송기원 선생님이 말씀하신 화두를 생각해본다. 나는 왜 속세를 견디지 못하고 출가하는가? 송기원 선생님을 믿어본다.
혼인한 지 10년이 다되어 이혼했다. 이별의 아픔은 내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아픔을 잊지 못하는 한 깨달음도 없을지 모른다. 이혼의 씨앗은 인도여행 때 여물었다. 여행 중 아내가 병이 나지 않았다면 혹시 우리의 이혼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이혼이 나로 하여금 새로운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불행이 아니라 축복이다. 아내에게도 이혼이 결국에는 축복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곳에서의 하루하루는 달콤했다. 문학의 울타리는 내게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었고, 따뜻한 이불이 되어주었다. 학교는 늘 신선한 가르침으로 끊임없이 정진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 달콤한 시간 속에서 나이를 먹은 후 나는 인도에서 만난 부처님을 생각했다. 부처님은 내게 이제는 달콤함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너무 늦었다 싶은 시점이야말로 바로 시작할 시기가 무르익었음을 말한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감사하다. 더 이상 새로운 길을 꿈꾸지 않을 것이다.
다만, 부처님이 그러하셨듯이 나는 앞으로 끊임없이 길을 갈 것이고, 길에서 꿈을 펼칠 것이며, 길위에서 생을 마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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