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房(문학외일반)

햇살 뜨거우면 튀어 달아나는 녹두를 보아라.정진규 시인 인터뷰 안성신문

길가다/언젠가는 2009. 3. 13. 02:29

 

"햇살 뜨거우면 튀어 달아나는 녹두를 보아라. 때 놓치면 망치는 게 농사란다”

정진규 시인
금은돌

▲시인 정진규 : 미양면 보체리. 1939년 안성 출생. 안성농업고등학교 졸업 후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껍질』(세계사), 『본색』(천년의 시작) 외 다수의 시집 출간. 한국시인협회상, 현대시학 작품상, 월탄 문학상, 공초 문학상, 문화훈장 수훈, 불교문학상 등 수상. 한국시인협회 회장 역임(1998~2000). 2008년, 고희 기념 활판 시선집 『우리나라엔 풀밭이 많다』(十月) 출간. 현재 시 전문 월간지 『현대시학』주간.      © 금은돌

화요일 오후 1시 45분, 전화벨이 울렸다. 정진규 시인이었다. “왜 연락이 없나 해서요. 오늘 2시에 인터뷰하기로 하지 않았나요?” 아차, 싶었다. “예? 목요일 2시인 줄 알고 있었는데…….” 후다닥 집에 들어가 카메라 가방을 챙겨들고 운전대를 잡는다. 가슴이 쿵쾅거린다. 처음 있는 일이다. 인터뷰의 생명은 약속인데, 착각을 하다니. 3주 전에 분명히 전화통화를 해놓고 정작, 약속 날짜를 잘못 기입해놓은 것이다.

시험지에 답을 밀려 적은 수험생처럼 날짜를 미끄러져 적은 기억이 떠올랐다. 자동차 페달이 두근거린다. 1시간이나 늦었다. 입술이 마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진규 선생님 댁에는 이장님과 노인회 회장님이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거실 책상 위에 A4용지가 가지런히 펼쳐져 있다. 전화를 받거나 말씀을 하실 때마다 끼적거리며 메모하는 습관이 그대로 보였다. 얼마나 정확하신지, 대번에 알아챈다. 차분하게 무릎을 꿇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정진규 시인     ©금은돌
“어떻게 시를 쓰게 되셨나요?” 시력(詩歷) 50년이 되어가는 시인에게 첫 단추를 여쭈어본다.

“내가 안성농업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고등학교 1학년 국어 선생님이 계셨어요. 이름도 잊지 않았어요. 이의협 선생님. 시를 쓰는 분이셨어요. 선생님 하숙집에서 책을 가져오라고 심부름을 보내셨는데, 책장에 정지용, 김소월, 김영랑 시집과 청록집이 있는 거예요. 다른 곳에서도 보기 힘든 시집이었죠. 저는 선생님께 책을 갖다드릴 생각은 잊고 그 시집들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아예 베껴버렸지요.

심부름 갈 때마다 선생님한테 늦게 온다고 혼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시의 길을 열어주신 것 같아요. 그때부터 쓰기 시작했죠. 대학에 진학할 때 돼서는 조지훈 선생님 문하에 들어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아마 시험성적만 가지고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못 들어갔을 거예요. 내신은 좀 좋았지만요. 그때 면접에서 눈도장을 찍었어요. 당시 <living>이라는 영어책을 달달 외우고 있었는데 영어 면접시험에 그게 나온 거예요. 교수님들 앞에서 배짱 좋게 지문을 보지 않고 외워보겠다고 했지요. 참, 운이 좋았어요. 그후로 조지훈 선생님 문하에 들어갔고 곧바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나팔 서정(抒情)」으로 등단했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가려다 보니, 시인이 처음으로 본 첫 시집 이야기가 나온다. 어머니 이야기에서 풀려나온 실마리다.

“어머니께서는 서울에 있는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신 분이에요. 아주 미인이셨죠. 어머니에게는 노천명 시집이 있었어요. 노천명 시인이 어머니와 고등학교 동문이거든요. 그래서 제일 처음으로 노천명 시인의 시집을 보게 됐지요. 그 시집을 아직도 가지고 있을 거예요. 아버지는 외아들이에요. ‘하얀 손의 선비 옥양목 고의적삼 차림으로 봄의 논두렁이나 거니’는(「정직한 녹두」) 분이지요. 어머니는 생전 농삿일을 안 해보신 분인데 시집온 이후로 평생 손에서 호미를 놓지 않으셨어요. 거친 농삿일 하면서도 학교 파할 때 즈음,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마을 어귀에서 우리를 기다리셨어요.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해질 무렵, 마을 입구에서 자식들을 기다리는 어머니 모습을.”


▲시인이 출간한 시집들.     © 안성신문

정진규 시인은 시가 한 번도 자신을 떠난 적이 없다고 말한다. 1960년도에 등단한 이래, 4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시집을 내었다. 어쩌면 시인은 시를 써야 할 운명을 타고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시인에게는 샘물과 같은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정진규 시인은 짧은 일화를 소개한다.

청소년 시기, 바깥으로 떠돌 무렵, 어머니의 대처 방식이다. 어머니는 아들의 잘못을 두고 곧바로 나무라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녹두밭으로 데리고 나가 툭, 말을 흘리신다. ‘저 녹두 좀 봐라. 때를 놓치면 농사를 망친다.’ 초가을 햇살이 뜨거워지면 튀어 달아나는 녹두를 두고 배움에도 때가 있음을 말씀하신 거였다. 적절한 상황에서 빚어지는 탁월한 비유는 감동과 깨달음을 준다. 어머니는 시를 쓰는 방식, ‘상징과 비유’로 아들을 깨우치신 거였다. 시인은 나락 주워 모으듯 어머니의 말씀을 가슴에 받아 적는다. 그리고 어머니의 말씀처럼 시를 쓴다. ‘튀어 달아나는 녹두처럼 시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질문과 과녁』, 동학사).


어머니는 가셨다. 이월 열나흗날 지금으로부터 열이태 전 어머니는 가셨다. 초가을 햇살 뜨거워지면 모두 튀어 달아나는 녹두, 녹두처럼 때 놓치면 망치는 게 농사라고 마지막 말씀을 남기시고 그것이 인생이라고 눈짓으로 말하시고 어머니는 가셨다. 눈물이란 말씀을 나는 비로소 알았다. 가장 정직한 녹두 튀어 흩어져 땅으로 돌아가는 녹두 나는 열 번도 더 넘게 녹두를 제때에 거두지 못했다  -「정직한 녹두」에서.


▲     © 금은돌
시인에게 어머니는 정직한 녹두이고, 소리 없는 눈물이다. 시인에게 어머니는 고향의 들녘이고, 수북한 고봉밥이고, 제삿날 놋수저이다. 어머니는 말씀의 별빛이고, 새봄마다 싹 틔우는 오롯한 씨앗이다. 어머니는 하이얀 쌀 두어 됫박이고, 부엌의 항아리이고, 빠져버린 어금니이다. 어머니는 속을 비워낸 집 한 채이고, 배고픔 가운데 배고픔이다. 어머니는 벼랑 끝 직전의 힘이고, 때때로 시치미이다. 어머니는 물꽃 속의 두근거림이고 별빛 떨어진 우물물이다. 어머니는 박하사탕 한 봉지이고 깊은 감탄사이다. 어머니는 상처를 안으로 빨아들이고 있는 꽃의 ‘ㅗ모음’이고 빛의 마침표이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관음보살이다. 정진규 시인에게 어머니는 몸의 껍질이고 구멍이다. 언제나 새로 태어나는 둥그런 알, 이윽고 따뜻한 상징이자 시의 원형이 된다.

시인은 5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의 회귀는 필연적인 귀결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어머니에게로 돌아오는 과정이다. 그를 품어준 자락은 저녁이 아름다운 집, 따뜻한 등불 켜지는 집, 석가헌(夕佳軒)이다. 정진규 시인이 다시 지은 당호(堂號)처럼 시인은 스스로 아름다운 저녁을 준비한다.  

“다행히도 고향이 나를 받아주었어요. 조금 아까 왔던 노인회장도 어렸을 적 친구예요. 옛날을 회상하면서 ‘거 누구 있잖아, 그래, 맞아, 맞아’, 이런 말할 때가 참 좋아요. 서로 기억을 맞춰보는 게 즐겁잖아요. 50년 만에 내려왔는데도 잠깐 어디 갔다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시작과 끝은 하나로 만난다. 안성에서 출발했던 시는 다시 고향으로 회귀하여 맺음을 준비한다. 시작과 끝의 맥박을 연결하는 것은 동심(動心)이다. 화가 운보가 말년에 동심으로 돌아가 그림을 그렸듯이, 추사 김정희가 동체(童體)를 완성했듯이, 나이를 먹을수록 시인은 ‘나’ 안에 있는 어린 ‘나’를 만난다. 시인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산책을 하고, 오후가 되면 이웃에 있는 보체초등학교 아이들과 만난다. 아이들과 시인은 보자마자,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시작했다. 동네 아이들은 시인의 집에 놀러와 시인의 서재에서 이 책 저 책 가리지 않고 구경을 한다. “요즘 아이들은 대단해요. 컴퓨터도 잘하고 말도 잘해요. 요즘은 아이들과 잘 놀고 있어요.”

정진규 시인은 거침없이 ‘논다’라는 표현을 쓴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잘 놀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네 아이들에게 컴퓨터로 뭘 쳐 오라고 숙제를 내 주면 한자도 알아서 척척 찾아와요. 그런데 아이들이 그러더라고요. 왜 아이들에 관한 시가 없어요?라고. 안성에 내려온 이후로 시집 4권을 더 내려고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동시였거든요. 아이들 덕분에 더 빨리 동시집을 내게 됐어요. 얼마 전에 『할아버지, 제목은 뭐야?』(문학동네)라는 원고를 넘겼어요. 동네 아이들이 나한테 한 말을 그대로 제목으로 삼았지요. 아이들이 그러더라고요. 할아버지, 제목은 뭐야?라고.”

▲     © 금은돌

‘동심’은 세대와 시대를 뛰어넘는 소통의 지름길이다. 처음 글자를 배우며 튀어나오는 앳된 언어들을, 이제 노년의 시인이 찾아가고 있다. 그리하여 예술은 하나의 동그라미로 완성된다.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21년째 맡아오던 <현대시학> 주간 일도 현재진행형이다. (시인은 일주일에 3일, 1시간 50분에 걸려 서울에 가는 일도 멈추지 않는다.) 앞으로도 4권의 시집을 더 내겠다는 시인은 요즘,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린다. 말을 던진 대로 ‘그대로’ 이루어진다. 삶의 절정으로 가는 시인의 집 마당을 나서며 소나무를 바라본다. 마무리 인사하고 나오는 길에 시인은 당신의 어머니처럼 한마디, 툭 흘리신다. “저 마당에 있는 소나무, 그 자체가 바로 상징 아니겠어요?”라고.  

금은돌(문학평론가)




 
기사입력: 2009/03/12 [14:20]  최종편집: ⓒ 안성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