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하루

성에꽃 /최두석

길가다/언젠가는 2008. 12. 16. 20:48

 출처ㅣ다음-정태춘음악을사랑하는사람들

 

 

성에꽃

----------------------최두석
                 

새벽 시내 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 낸
자리를 옮겨 다니며 보고
다시 꽃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 낸 정열의 숨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니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      

                      

                           

 

*최두석
1955년 전남 담양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사대 국어과와 동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0년 『심상』에 「김통정」 등을 발표함으로써 시단에 등장한 그는 1984년 첫 시집 『대꽃』

과 1986년 서사 시집 『임진강』, 그리고 1990년 『성에꽃』, 1997년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를 펴냈으며, 현재 한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