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하루

[스크랩] [詩鄕] 마경덕 詩 모음

길가다/언젠가는 2008. 8. 2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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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공원에서  도르메촬영  07.10.17 *

 

 

 

 

 

 

그 해 겨울 

                             시  마경덕


흉년 든 그 해
탱자처럼 노랗게 황달을 앓던 아버지
눈 오는 아침, 재첩을 사러 간
엄마는 오지 않고

언니와 나는 쪽마루에 걸터앉아
반 됫박 남은 호박씨를 까먹었다

종일 퍼붓는 눈
앞산의 눈썹이 지워지고
봉창 여닫는 소리, 잦은 기침 소리
뒤란 대밭 철퍼덕, 눈똥 누는 소리

눈이 내려
가뭇없는 길

휘청, 발을 헛디딘 대숲은
한 무리 새떼를 날려보냈다

-2003년 현대시 11월호

 

 

 

 

문 

                            시  마경덕


봉창을 밀고 단숨에 들판이 들어섭니다 뒷산에 우거진 상수리, 툭툭
지붕으로 던지며 뒷간 환기창에 따가운 가을볕 쳐들어옵니다 문이
한나절 나를 붙잡고 놓지 않습니다 언젠가 서해(西海)에 가서도 꽁꽁
묶인 적 있습니다 목선 한 척 수평선을 끊어먹고 사라질 때까지
서쪽으로 난 쪽문에 고요히 묶여 있었지요 아득한 지평선이, 너른
바다가 어떻게 그 작은 문으로 들어 왔는지 아직 모릅니다

 

 

 

 

 

 

슬픔을 버리다 

                                      시   마경덕


나는 중독자였다
끊을 수 있으면 끊어봐라, 사랑이 큰소리쳤다
네 이름에 걸려 번번이 넘어졌다
공인된 마약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문 앞을 서성이다 어두운 골목을 걸어나오면
목덜미로 빗물이 흘렀다
전봇대를 껴안고 소리치면
빗소리가 나를 지워버렸다
늘 있었고 어디에도 없는, 너를 만지다가
아득한 슬픔에 털썩, 무릎을 꿇기도 했다
밤새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무데도 닿지 못하고 해를 넘겼다
너에게 감염된 그때, 스무 살이었고
한 묶음의 편지를 찢었고
버릴 데 없는 슬픔을
내 몸에 버리기도 하였다


-시와반시 2004년 겨울호

 

 

 

 

 

우리는 사막을 건너간다 

                                     시  마경덕


일렬로 앉아 집으로 간다 땅굴 지나 다리 건너 붉은 십자가 밑 지나간다. 비석처럼 늘어선 도시의 십자가, 거대한 묘지를 떼 지어 지나간다. 종일 도시의 사막을 떠돌던 무리들, 신문을 덮고 귀마저 닫고 목하 기도 중. 손잡이에 매달렸던 전갈을 닮은 사내는 어느 사막으로 떠났을까. 지팡이 하나로 더듬더듬 세상을 헤매는 저 맹인, 캄캄한 사막에서 수없이 모세의 지팡이를 생각했으리. 뒤따라 온 아이는 때 절은 쪽지와 껌 한 통을 무릎마다 놓고 간다

우린 지금 눈을 감고 회개 중, 전철이라는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가며.

 

 

 

 

 

소나무 

                                시  마경덕


내원사 계곡. 백 년 묵은 소나무 한 그루 쓰러져 있다. 가지를 찢고 뿌리를 뽑아 올린 바람 간 곳 없고 솔이파리 누릇누릇 땡볕에 타고 있다. 소나무는 눈을 뜨고 서서히 죽어가는 제 몸을 바라본다. 물소리는 뿌리를 적시지 못한다. 저놈의 목에 밧줄을 걸고 기증기로 끌면 일어설 수 있을까.

병든 노모에게 속옷을 입힌다. 거웃이 사라져 밋밋한, 여섯번의 열매를 맺은 그 곳, 시든 꽃 잎 한 장 접혀 있다. 졸아든 볼기에 미끈덩 여섯 개의 보름달을 받아 안은 찰진 흔적 남아 있다. 노모가 눈으로 말한다. 내가 베어지면 그 등걸에 앉아 편히 쉬거라. 머리맡에 고요히 틀니가 놓여 있다. 앙상한 다리, 분홍 양말이 곱다. 기울어 가는 소나무 , 반 쯤 뽑힌 소나무에 링거를 꽂는다.

 

 

 

 

 

더미 가족

                                       시  마경덕


차에 태우고 안전밸트를 매어 주네. 낯익은 사내 웃으면서 손수 시
동을 걸어주네. 친절도 해라, 죽음이 이렇게 여유로울 수 있다니!
순간 끔찍한 공포를 잊고 말았네. 다녀올게요. 나들이처럼 손을 흔
들며 마주 웃어 주었네. 옆자리엔 임신 중인 아내와 뒷좌석엔 어린
아들놈이 타고 있었네. 문을 닫으며 사내가 또 웃었네. 별 일 아니
야. 그 인자한 눈이 그렇게 말했네. 나는 널 낳은 아비야. 너에게
팔과 다리를 준 아비야. 자그마치 네 몸값이 얼만지 아니? 그래요.
억대가 넘는 몸값을 알아요. 나와 내 가족을 만드신 위대한 아버지.
내 가족의 갈비뼈는 아버지의 것과 비슷해요.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자동차 한 대를 만들기 위해 서슴없이 가족을 버리는 아버지. 이젠
당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요. 도무지 방어防禦를 모르는 제 이름은
더미*거든요. 아, 아버지 아무 걱정 마세요.... 이제 악셀을 밟고
벽을 향해 달려가면 되나요?


*더미(dummy) : 선세가 달린 실험용 인형. 각종 자동차 충돌
시험에서 운전자 대신 가상의 사고를 당한 뒤 예상 상해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함.

 

 

 

 

 

날아라 풍선 

                                  시  마경덕


끈을 놓치면 푸드득 깃을 치며 날아간다.

배봉초등학교 운동회, 현수막이 걸린 교문 앞에서 깡마른 노인이 헬륨가스를
넣고 있다. 날개 접힌 납작한 풍선들. 들썩들썩, 순식간에 자루만큼 부풀어오른
다. 둥근 자루에 새의 영혼이 들어간다. 노인이 풍선 주둥이를 묶는다. 하나 둘,
공중으로 떠오르는 새털처럼 가벼운 풍선들. 절정에 닿는 순간 팡, 허공에서
한 생애가 타버릴, 무채색의 가벼운 영혼이 끈에 묶여 파닥인다. 평생 바람으로
떠돌던 노인의 영혼도 낡은 가죽부대에 담겨있다.

함성이 왁자한 운동장, 공기주머니 빵빵한 오색풍선들, 첫 비행에 나선 수백
마리 새떼 하늘로 흩어진다. 뼈를 묻으러 공중으로 올라간다.

 

 

 

 

 

덩굴은 고집이 세다 

                                시  마경덕


허공에 쑥, 손가락을 집어넣는 호박덩굴
가늘고 푸른 손가락이 둘둘 허공을 감아쥐고
하늘을 팽팽히 끌어당긴다
스스로 길이 되는 덩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달려든다

기댈 곳을 찾는 여린 호박순
당겨보면 벋지르며 살아온 힘이 있다
줄기가 둑뚝 잘려나가도
거머쥔 손을 풀지 않는다

구부리면 휘어지는 만만한 것들
어깨와 어깨를 엮어 스크럼을 짠다

그 여린 것들이,
담벼락에 올라
벽을 허물기 시작한다
꾸역꾸역 벽을 먹어 치운다


마경덕 시집<신발론>문학의전당. 2005.

 

 

 

 

 

짐승들 이야기 

                                    시 마경덕


그 모피공장엔 짐승들이 우글거렸네 사람인 척 하는 짐승 같은 사람과 짐승처럼 묵묵히 일만 하는 사람들과 죽은 짐승들의 눈이 쌓인 모피창고가 있었네. 숨쉬기조차 힘들게 날아오르는 짐승의 털도 가난을 밀어내지 못하고 배고픈 짐승들, 배부른 짐승의 하룻밤 술값 정도에 금세 길들여졌네. 숱한 밤이 뜬 눈으로 들들들, 미싱에 박혀죽고 먼지 쌓인 바닥에서 죽은 짐승들의 물 먹인 껍데기는 고무줄처럼 팽팽히 당겨졌네. 여우 한 마리 팔딱, 재주 넘어 열 마리 여우로 둔갑했네. 수입산 백여우 뱃가죽을 칼로 찢으며 끈질기게 살아남은 짐승들, 늘어난 가죽에 빗질을 하며 눈부신 빛을 달고 살았네. 죽어서 더 빛이 나는 껍데기에 밤새 날개를 달았네. 그저 일밖에 모르는 미련한 짐승들, 백여우의 탐스러운 꼬리에 손 베이는 줄 몰랐네. 수없이 죽어간 짐승들의 슬픈 눈에 그해 여름, 펄펄 눈이 내리고

 

 

 

 

 

토마토 

                           시   마경덕


마당귀에 심은 토마토 한 그루
눈만 마주쳐도 덜컥 애가 선다

간짓대 같은 몸뚱이
쇠불알만한 새끼를 치렁치렁 달고
다시 입덧을 하는 토마토
누릇누릇 머리가 쇠고
허리가 휘었다
차마 놓을 수 없는 것들
버리지 못할 것들
안고 업고
작대기 하나로 버티는 토마토

또 만삭이다
저 무지렁이 촌부(村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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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문에서 07.08.18 *

 

 

 

 

 

출처 : 도르메세상
글쓴이 : 도르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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