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품격 ․ 고품질 ․ 삶의 휴식
착각의시학
-제21회정기詩낭송회-
시인의 사랑을 말하리라-
일 시 : 2008년04월19일(토)오후4시
장 소 : 웅진프레나문화센타9층(방배동)
주 최 : 한국착각의詩學硏究會
후 원 : 웅진프레나 방배동센타
http://cafe.daum.net/illusionpoetry
▣ 서시
착각의 시학을 위하여
글 : 하 제
오늘 여기
서로간의 인사와 만남은 없었지만
따뜻한 가슴과 지순한 사랑
마음 깊이 새겨진 풀 같은 시(詩)내음 속에
떨림의 시간 기다림에 모습들
첫선 보듯 설레는 심정으로
오늘을 기다렸습니다.
문학의 열정과 향기 가슴에 흐르듯
우리네 고품격 고품질 만남이여!
그 고독과 고뇌와 사랑이
영혼을 울리는 뜨거운 심장으로
타들어 가라!
그리하여
우리들 가는 길에 빛이 없어
어둠이 유혹 할지라도
세상의 바람으로 깨우며
풀꽃 같은 인연들 주렁주렁 엮어 갈 때
우리들의 모습은
먼 훗날 착각의 시학에 들렸다가
그 우물에 빠져 수없는 인연을 엮어
다시 영혼으로 함께하는
착각에 빠졌노라고
말 하고 싶습니다.
【 제 21 회 】
2008년 3주년 기념 정기 시 낭송회
■ 제 1 부
진행 : 김도혜(간사)
★ 국민의례
★ 축 사 / 권 숙 이 (상임고문)
★ 인사말 / 김 경 수 (회장)
★ 착각의 시학 서시낭송/
★ 축시노래
■ 제 2 부
시 낭송회
진행 : 성백원(기획위원)
■ 제 3 부
만찬과 친교의 시간
-1-
▣ 차 례 ▣
진행 : 성백원(기획위원)
▶ 권숙이/항아리/4
▶ 권영목/내 고향 /6
▶ 김경수/시인의 광야/7
▶ 김도혜/향일암 가는 길/8
▶ 김석림/아, 4월이여/9
▶ 김자길/그리움의 빛줄기/11
▶ 김지원/기다리는 마음/12
▶ 김효순/새싹 /13
▶ 도경원/고속도로 휴게소/14
▶ 박옥경/나무야/15
▶ 배경희/봄빛의 노래/16
▶ 성덕용/따뜻한 눈물/17
▶ 성백원/벚꽃나라 /18
▶ 안재진/오늘밤엔/19
▶ 양회올/가고 오는 세월/20
▶ 유나릿/길/21
▶ 이늦닢/허공/22
▶ 이삭빛/당신곁에있고싶습니다/23
▶ 임솔내/절창/23
▶ 장수현/상실의 계절/26
▶ 장진영/여명을 여는 꿈속에서/27
▶ 정이랑/벚꽃놀이/28
▶ 최연숙/참 용서/23
▶ 이정미/시 해설/20
◆ 착각의 시학 서시
◆ 시창작을 배우시렵니까?
◆ 후원금 안내
항아리
권 숙 이(suwang92@hanmail.net)
금간 항아리에 풀칠을 한다
수백 살은 먹었으리
풍상에
쓸모없는 신세
한 집안의 흥망이
담겨진
그에게 새 생명을
넣으려 화선지를 바른다
밑동에 금간 것과
주둥이가 잘려나간 그 것을
버릴까 말까
몇 날을 망설였다
아니야, 얘들을 살려야해
지나온 세월이 있잖아
이른 아침 까치가 날아 왔다
새롭게 태어난
-4-
그들에게 무엇을 담을까
상수리 가루를 담아 놓고
연잎차도 넣었다
그래
보이차도 넣어주렴?
입이 벌어진다
콧구멍이 벌름 거린다.
내 고향
권 영 목
고향이 따로 있나
머무는 곳 고향이지
그리운 것이 고향이라면
반겨줄 이 있을 것을
반겨줄 사람 없는 그곳
찾아가면 무엇 하나
차라리 구름 따라
정처 없이 가고지고
고향이 따로 있나
가다가 머무는 곳
그곳이 내 고향이지.
시인의 광야
김 경 수(poets12@hanmail.net)
가난한 거리에서
절규로 포효하며 방황하는
언어들의 은밀한 유혹
일출에서 일몰까지
다시 밤에서 낮으로
나날들에 계약 없는
처절한 숙명의 순례자
물빛과 불빛으로
내 안의 색깔을
원고지 위에 거침없이 찍어 대는
생리대를 내 팽개친 마법.
향일암 가는 길
깎아진 바위 틈
길 아닌 숲지나
대웅전이 숨어 있다
그것도
하늘과 바다에 대교를 놓은 절벽 아래
갓 피어난 물봉선화처럼 피어 있다
부처님 향기에 몸 씻어
제일 먼저 아침을 바라기하는
동백꽃이 숨어 있다
풍경소리에 귀 열고 햇살에 수줍음
하루하루 키워 올리다
세상과 뚝 떨어져
하늘가에 그렁그렁 피어나는
저 붉은 등불을
동박새가 사람들 사이로 물고 다니던
어떤 색으로도 익어 갈 수 없는
이별이란 단어 한 송이
뚝! 떨어진 날이 있다.
-8-
아, 4월이여
동구 밖 등 굽은 감나무
걸린 초승달
회한으로 눈시울 붉히고
봄볕 한 아름 안고
천성으로 길 떠난 아버지
그 아물지 않는 생채기 보듬는
소쩍새 울음
그래서 잠 들 수 없는
아, 4월이여
4월의 영령들 안장된
수유리 골짜기
살아도 죽은 것 같은 세월
내려앉은 묘비 위로
돋아나는 이름
"내 아들 주열아!"
어머닌 억장이 무너져 내리고
그래서 잠 못 드는
아, 4월이여
통일전망대에 올라
-9-
고난의 잔 홀로 비운다
울컥울컥 쏟아내는
통일의 염원
형제를 겨눈 총부리 거두고
어느 누가
이 분단의 장벽을 허물 것인가
그래서 잠 못 이루는
아, 4월이여.
그리움의 빛줄기
김 자 길
그 때
거머리에게 입술을
허락한 친구
대학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봄비 오던 그날
우리는 우산을 버리고
바닷가를 걸었지
세월 흐르면
다시 만나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눈물을 비에 섞었지
하지만 그 약속
멀어져가고
누런 책장에 침 발라넘기던
그 옛 일들이 아득한 노년이 되어
그리움의 빛줄기 한 가닥
그녀에게로 날려 보낸다.
-11-
기다리는 마음
김 지 원(jiwonk-7@hanmail.net)
그대
하얗게 피어나는
목련꽃 향기가
싱그럽게 느껴지는
4월의 아침
그대가
옷깃 한 올
스치지 않아도
마음속엔
늘 당신 향기 채우며
살아갑니다
그대는
봄 하늘 고운 햇살처럼
내 맘 속에 온기로 피어나는
항상 따뜻한 사람
그대는
나의 가슴 속에
화사한 봄꽃처럼,
빛깔 고운 이슬처럼
맑고 투명한 달빛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도
보이지 않은
당신을 생각하며
봄 들판에
곱게 피어난 야생화처럼
환한 미소로 그대를
기다립니다.
-12-
새싹
김 효 순(hspoet01@hanmail.net)
오우!
살아었구나- 네가
지난해
떨어지는 널 그리며
온 겨우내
가슴앓이에
겹겹이
옷을 걸쳐야만
했단다
눈곱 떼거라
예쁜 것 !
고속도로 휴게소
도 경 원(dokw51@hanmail.net)
우리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무대 위의 배우 일뿐.
왔다가 금방 떠나거나
놀다가, 먹다가, 잠자며
쉬어가기도 하는 곳
어떤 이는 아예 들리지도 않는,
소복차림의 슬픔 옆에
더욱 신나는 흥청망청
온 삶이 생계에 매달렸거나
여러 삶을 혼자 사는 듯
거들먹대기도 하는 곳.
언제나 한없이 밀려오지만
그만큼 떠나고 마는
빈 가슴, 가슴들
너도 나도 길가 휴게소 같은
무대 위의 배우들...
-14-
나무야
박옥경 (okkpark21c@hanmail.net)
한번 만져보아도 되니?
어떻게 자라고 싶니?
해마다 잊어버리지도 않고
지도도 없이 공중으로
길 내는 거 어렵지 않니?
갑옷처럼 단단한 수피를 열고
작은 새도 벌레도 모두 품어 키우며
어떤 일에도 아랑곳없이
꽃과 열매를 잉태하고는
다시금 숲으로 돌려보내는
네 가슴속의 보드란 젖 줄기
생명 속의 생명을
한번 만져보아도 되니?
-15-
봄빛의 노래
배경희(scoutbkh@hanmail.net)
봄빛의 노래가
투명한 미소처럼
가지 끝에 걸려
속삭인다
섬진강변 굽이돌아
매화 잎 봄바람에 흩날려
봄이 깊어 가노라고
아지랑이 벗 삼아
가지에 걸린
벚꽃망울 속삭인다
눈부신 햇살
싱그런 공기
봄빛의 노래들으며
벚꽃 잎을 피우노라고.
-16-
따뜻한 눈물
하얀 꽃잎이 날아와 앉았다
눈물이 되었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지금은 밖에 비가 내리고
따뜻하게 쌓이던 온기들 튀어 오르고
흐르며..., 스미어들며..., 사라지던
허다한 삶의 껍데기들
서서히, 빠르게 죽어가고 있다
아! 저 무거운 실체
꿈 또는 희망이란 날개를 달기엔
몸뚱이가 너무 커
모세혈관에 꼿꼿이 일어선 그리움
돌아 서서 되돌아가는 빈자리
아주 따뜻한 눈물이 흐른다.
-17-
벚꽃 나라
부푼 가슴마다
연분홍 치맛자락
봄바람에 휘적시는 날
낡은 기억 속의
수선거리는 꽃잎 마당
어지러운 길머리에 선다
그대가 살려 낸
피꽃 참꽃 피고 지는 골목길
무수한 발길질에 신음한다
상상 속의 동물들
뒤틀린 웃음으로
나의 풀밭이 짓밟힐 때
이제사
떠난 그대 생각하며
흩어진 옛 노래를 부른다
그대가 지켜 온
제비꽃 애기똥풀 피는 언덕
외꽃 주먹세례 지키기 위해
-18-
오늘밤엔
안 재 진
오랜만에 만난 그를 전송하고 돌아서니
동쪽 먼 산자락이 먹물을 풀어놓은 듯 어둠에 젖는다
발자국마저 쓸어가는 그의 뒤를 따라
나도 따라 간다
사랑하면서도 사랑을 모르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눈물을 모르는
눈 먼 길바닥에도 차츰 어둠이 젖어든다
골목길 으슥한 어느 대문 앞
뜨겁게 입술을 빨던 두 사람이
이젠 시들하다는 듯 손을 흔들며 돌아선다
아니, 돌아서는 게 아니라
한 곳으로 걸어가는 어둠의 길이다
밝은 날 저마다 가슴을 풀었던 모든 것
육신과 영혼, 사랑과 미움, 만남과 헤어지는 것들이
한자리에 모여 숨을 고르려는 것이다
물론, 죽음과 삶도 그 속에 석여
기다리는 것들을 만지며
아침을 엮을 것이다
나는 그를 떠나보낸 게 아니라
어둠의 집을 찾아가는 그를 따라
오늘 밤엔 간절한 사랑을 말하리라.
-19-
가고 오는 세월을
양 회 올(ys9346@hanmail.net)
꽃바람 향기로 다지며
오는 듯 거기오고 있는 봄인데
너무 재촉 말아라 세월의 바람아
이젠 달려가는 세월
밀려오는 세월 앞에
조금만 천천히 가자꾸나
바닷가 새하얀 갈대도
묶은 잎 털어 내느라 바쁘고
화사한 매실 꽃 떨어질까 걱정인데
푸른 빛이 그리운 너는 어쩌니
빛고을 아침 하얗게 밝아오는 발길
가벼운 바람아
조금 조금만 멈추어 다오
가고 오는 세월을...
-20-
길
유 나 릿(4156277@hanmail.net)
또아리 틀고
한곳만 주시하는 배암같이
꿈틀 거리는 욕망을
빈터로 버려두고
끈질기게 걸어온 길은
모성이란 위대한 터널
반쯤 잘려나간 빈터엔
실루엣 같았던 어린 날들이
아지랑이로 피어
헤진 가슴을 덮고 일어선다.
-21-
허공
무한무욕의
거대한 생명 주머니
무지개를 띄우고
태풍을 키우고
갈증 나는 여름 한낮을 염려해
아침 이슬 한 방울을 준비하는 섬세함
타국으로 향하는 아득한 행로가 있고
미루나무 꼭대기 맞추피추
쾌청한 날을 택해
아기 새의 걸음마를 연습 시키는 새들의 대지
나 머리 둘 곳 있어 편안하고
두 손 뻗어 기지개 켤 수 있어 행복한 저 곳.
-22-
당신 곁에 있고 싶습니다
이 삭 빛(leeccc1020@hanmail.net)
당신의 눈동자 속에
나를 들이고
눈물로 고요히 다가서는
이유는
당신 곁에 있고 싶기 때문입니다.
당신 곁에 있고 싶습니다.
이러한 나를 돌밭에 떨어뜨리지 마시고
오직
당신 곁에 있게 하옵소서.
당신 곁에 있고 싶습니다.
이러한 나를
당신의 푸른 초장에 누이사
당신으로 하여금
빛나는 별처럼 꽃피우게 하소서.
당신의 눈동자 속에
나를 던지고
뜨거운 그리움 태우는 이유는
당신을 사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사모합니다.
이러한 나를
길가에 버리지 마옵시고
-23-
오직
당신 곁에 있게 하옵소서.
당신 곁에 있고 싶습니다.
이러한 나를
당신의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사
당신으로 하여금
향기 나는 꽃처럼 미소 짓게 하소서.
-24-
절 창
임 솔 내(poetim@hanmail.net)
무당이 못돼 시인 된 년이
열정적 해후를 나눈 뒤
그렇게 먼 삶으로 세상을 뛰어 내렸나
버려도 버려도 줄지 않는
애증의 무게로 목이 부러진 동백이여
익어가던 꽃이여
태워도 태워도 산더미로 남는
얼마나 사랑했기에
저리도 붉은 色색의 볼륨이었나
하루만
하루만 살아온다면
그 누구도 나누지 못할 죽음을
죽어 하나 되리라.
-25-
상실의 계절
장 수 현(jsh9389@hanmail.net)
구두 한 켤레의 무게가
천근만근으로 다가온다
한 잔 술에
어둔 세상 돌려놓고
허허, 웃어보는 사내
헛웃음 흘리며
두 잔 술에
마음을 닦는다
눈을 감아도 보이고
다가서지 않아도 가슴에 들어와 있는
높고 넓은 하늘 한 조각
그 속에 들어가 머물러본다
홀로 선 나무의 노래 소리
속 옷 뒤집어 입은
사내의 귀에는 익숙하지 못하여
껌벅이는 목어의 눈만 바라본다.
-26-
꿈속에서
장 진 영(길가다)young3552@hanmail.net
뒤척임에 발광하다 떠나버린 여인의 애모에 주책없이 몽정을 할 뻔했다
얼마나 아쉬웠는지 식은땀은 흥건한 채
식지 않은 열기에 견딜 수 없어 밖을 나선다
허공에 갇힌 안개 속에서 그녀의 흔적을 굽다 만 열꽃은 이제야 시들어
별빛에 걸린 이슬과 이슬 잇는 길목에서
몽정의 미로를 이어내는 실낱같은 거미의 사정(射精)을 본다
끈질기게도, 끈끈한 존재를 얽혀 또 다른 관계의 문턱에서의 몸부림,
햇빛 아래 흩어질 그 흔적을 아직 몰랐던가
열어 뒀던 창틀은 찢기고 헐어져 바람 길에 잠긴 채 대답은 없다
품었던, 꼭 품고 살았던 하나의 길은 희미해져 가고
누구의 영혼으로 덫 씌우고자 몸부림이었던가, 안개꽃 피는 새벽길에
-27-
벚꽃 놀이
초롱초롱
가지 끝마다
핑크빛 봄이 톡톡 튀네요
허리엔
축제의 꽃잎 연서 두르고
님을 초대 했어요
거리엔 청사초롱
황홀한 날을 위해
아린 바람을 침묵으로 견디었지요
아찔한 순간순간들
환호하는 관객위해
향 좋은 꽃비로 답례 할래요.
-28-
참 용서
푸른 자식들 숨통이 막혀 비명횡사하던 날
울부짖음이 지축을 흔들었다
억장이 무너져
지구 밖 착한 별들의 성으로 달아나고 싶었어
검은 재앙에게 휘휘 손사래를 쳐보다가
뭉개진 가슴 수습하지 못해 눈을 감아버린 사람들
서둘러 흰 눈이 와서 검은 몸을 가렸지만
빈 가슴 벽 달라붙어 옥죄는 찰거머리로
눈 속에선 또 얼마나 울었을까
엄동에 사랑의 띠가 된 사람들은
끈적이는 몸과
하양 검정의 중간지대 마음까지 박박 닦으며 사죄하였다
스스로 어둠상자가 되어
검은 양심을 유출한 비정한 사람 탈을 용서하고
다시 생명을 잉태해 준 바다,
바다에게 참 용서를 배운다.
-29-
◆ 시 감상과 해설
공중변소 속에서 / 김신용
공중변소 속에서 만났지. 그녀
구겨버린 휴지조각으로 쪼그려 앉아 떨고 있었어.
가는 눈발 들릴 듯 말 듯 흐느낌 흩날리는 겨울밤
무작정 고향 떠나온 소녀는 아니었네.
통금시간을 지나온 바람은 가슴속 경적소리로 파고들고
나 또한 고향에서 고향을 잃어버린 미아,
배고픔의 손에 휴지처럼 구겨져, 역 앞
그 작은 네모꼴 공간 속에 웅크려 있었지.
사방 벽으로 차단된 변소 속,
이 잿빛 풍경이 내 고향
내 밀폐된 가슴속에 그 눈발 흩날려와, 어지러워
그 흐느낌 찾아갔네.
그녀는 왜 마약중독자가 되었는지 알 수 없었어도
새벽털이를 위해 숨어 있는 게 분명했어. 난 눈 부릅떴지.
그리고 등불을 켜듯, 그녀의 몸에
내 몸을 심었네. 사방 막힌 벽에 기대서서, 추위 때문일까
살은 콘크리트처럼 굳어 있었지만
솜털 한 오라기 철조망처럼 아팠지만
내 뻥 뚫린 가슴에 얼굴을 묻은 그녀의 머리 위
작은 창에는, 거미줄에 죽은 날벌레가 흔들리고 있었어. 그 밤.
내 몸에서 풍기던, 그녀의 몸에서 피어나던 악취는
-30-
그 밀폐의 공간 속에 고인 악취는 얼마나 포근했던지
지금도 지워지지 않고 있네. 마약처럼
하얀 백색가루로 녹아서 내 핏줄 속으로 사라져간
그녀,
독한 시멘트 바람에 중독된 그녀.
지금도 내 돌아가야 할 고향, 그 악취 꽃핀 곳
그녀의 품속밖에 없네.
*출처: <개 같은 날들의 기록>, 세계사, 1990.
“연민 속의 감추어진 매너리즘”
시에서는 그 어떤 소재, 그 어떤 추악한 인물의 사연일지라도 인간 본연의 순수한 심성을 담고 있는 한에서는 미추의 구분이 없기에, 반드시 사회주의 리얼리즘 논리만 담을 수는 없다. 시인의 독자적인 연민의 시선, 그 안타까움, 애틋함, 처절함, 그리움, 슬픔 등의 정서에 독자가 공감하는 것에서 문학의 실용적 역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문학작품에서는 자본주의 생존방식에서 밀려난 하층민을 대표하는 주인공으로 노숙자, 백수, 일용직 노동자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 시에서도 공중변소라는 밑바닥 삶의 현장과 공존하는 과거 도시 빈민의 그 처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신용 시인은 최근 '도장골시편'에서 서정적 분위기를 구사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는데, 그와는 달리 이 시는 시인의 과거 암울했던 자전적 체험을 담고 있다. ‘나 또한 고향에서 고향을 잃어버린 미아,’라는 구절이 말해주듯 시인의 프로필을 염두에 두고서 해석하기를 요구한다.
-31-
겨울철에 ‘사방 벽으로 차단된 변소 속’에서 악취와 함께 ‘구겨버린 휴지조각으로 쪼그려 앉아 떨고 있’는 마약중독자인 그녀를 시적화자가 공중변소에서 만나는 풍경은 '어둠의 자식들'의 생존모습이다. ‘작은 창에는, 거미줄에 죽은 날벌레’라는 물리적 배경은 그녀의 모습에 대한 객관적 상관물이다.
시적 화자는 ‘등불을 켜듯, 그녀의 몸에/내 몸을 심었네.’라며 그녀와 동정의 차원을 넘어선 육체적 사랑을 나누지만 아이러니컬하게 플라토닉 사랑으로 수용하며, ‘지금도 내 돌아가야 할 고향, 그 악취 꽃핀 곳/그녀의 품속밖에 없네.’라며 찬양하고 있다.
여기서 처절하고 궁핍한 모습 속에서 시인이 발견한 내면의 아름다움을 지향하느라고 무작정 미적 감정에 호소하는 어조로 일관하는 것은 곤란하다. 물론 시인의 독자적인 발견은 일단 존중받아야 하고, 시의 주제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그 시 안에서 이미 설정된 시인만의 이야기와 사연은 절대적이다. 그렇지만 아름다움의 동기가 결여되어 있는 상태에서 아름다움을 강요한다는 것은 독자에게 또 다른 매너리즘을 강요할 수 있다. 특별한 세상의 특별한 인간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선정적이고 일시적인 자극을 주는 반면에 그것이 단순한 흥미 거리에 그친다면 시공을 초월한 영원성을 안겨주기가 힘들다.
시인은 ‘내 뻥 뚫린 가슴에 얼굴을 묻은 그녀의 머리 위’라는 구절대로 공중변소 속의 그녀와 동질감을 느끼기에 연민의 시선으로 처리하였다. 시인은 공중변소 속의 그녀를 화자 우월주의 시점에서 단순한 2인칭 대상으로만 바라보기 보다는 시인 자신의 개인 문제와 연관을 지었던 것이다. 자신의 발언은 결국 자신의 개인 문제에서 연유한다는 논리가 담겨져 있다.
-32-
◆ 시 창작을 배우시렵니까? ◆
착각의 시학에서는 시 창작의 이론과 실기를 함께 지도하 는 시창작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 쓰기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거나, 시 공부를 좀 더 체계적으로 하고 싶으신 분은 절대 망설이지 마시고 용기를 한번 내 보시지요.
☞연락처 : 011-354-3705(회장)
* 시간, 장소는 날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 카페 : 착각의 시학 <소모임>방에 들어오시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아무런 제한 없이 누구나 회원이면 성심껏 지도해 드립니다.
착각의시학연구회/시창작아카데미
-33-
제21회 정기 시낭송회(격월간)
통권21호(통4권2호)-2008.4.19.발행
상임고문 - 권 숙 이
회 장 - 김 경 수
선임연구원-임 솔 내
사무국장 -
사무차장 - 이 늦 닢
간 사 - 정 인 목, 김 도 혜
감 사 - 도 경 원, 김 석 림
기획위원 -
홍보위원 - 양 회 올, 김 지 원
편집위원 -
따듯한 가슴으로 착각의 시학을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착각의 시학은 연구원님들과 문학을 사랑하고 만남을 소중히 여기시는 독자님들의 관심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금액에 관계없이 십시일반
많은 성원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후원금 ◆
하나은행 289-910003-61105
이영섭(착각의시학)
-34-
'詩가 있는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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