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사모>님의 블로그에서
연장통 / 마경덕
장례를 치르고 둘러 앉았다. 아버지의 유품을 앞에 놓고 하품을 했다. 사나흘
뜬 눈으로 보낸 독한 슬픔도 졸음을 이기진 못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나무상자는 관처럼 무거웠다. 어서 짐을 챙겨 떠나고
싶었다. 차표를 끊어둔 막내는 자꾸 시계를 들여다봤다. 이걸 어쩐당가. 마누라
는 빌려줘도 연장은 안 빌려 준다고 해쌓더니 ...... 엄니는 낡은 상자를 연신 쓰
다듬었다.
관 뚜껑이 열리듯 연장통이 열리고 톱밥냄새가 코를 찔렀다. 술과 땀에 절은
아버지, 먹통, 끌, 대패, 망치를 둘러메고 늙은 사내가 비치비칠 걸어나왔다. 몽
당연필을 귀에 꽂은 아버지, 대팻밥이 든 고무신에서 고린내가 풍겼다
자식 농사만은 대풍을 거두셨다. 망치는 부산으로, 톱은 서울로, 줄자는 울
산, 말라붙은 먹통은 분당으로, 아버지는 그렇게 아홉 번 찢어지셨다. 가방을 뚫
고 나온 이 빠진 톱날이 악어처럼 사나웠다.
출처 : 굴뚝새 시인
글쓴이 : 심은섭<굴뚝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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