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사
-----------------------송수권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는 날
이삿짐을 나르며 변두리 전셋방으로 몰리면서도
기죽지 않고 까부는 아이들이 대견스럽다.
오늘은 그들의 뒤통수를 유난히 쓰다듬고 싶은 하루였다.
돌아보매 사십 평생 고통과 비굴 속에 흔적 없고
좋은 시절 다 넘기고 우리는 뒤늦게 이 도시에 쳐들어와
말뚝 하나 박을 곳이 없다.
차 한 잔 값에도 찔리고 수화기를 들어도
멀리서 친구가 오지 않나 몸을 사린다.
어떻게들 살아가는 걸까, 때로는 의문을 제기해도
삶의 공식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한 달에도 몇 번씩 걷히는 무슨 유사다, 회비다,
서투른 몸짓에 뒤늦게 코 깨지는 걸 알고 발을 뺐더니
또 누구는 자폐증 환자라 꾸짖는다.
애경사를 당해봐라. 또 누구는 겁을 준다.
며칠 전은 불우 문우 돕기 만 원을 빼내려고
아내와 치고받다 나도 이 말을 멋지게 써 먹었다.
그것도 정작 가야 할 곳으로 가지 못하고 홀짝
커피값으로 축이 났다.
정말 어떻게들 살아가는 걸까.
내 오늘 친구 말대로 이 바닥 일만 평 적막을 흩뿌릴까보다.
정말 다들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회색빛 하늘 속에 이삿짐을 따라가며
기죽기 않고 까부는 아이들이 대견스럽다.
아내여, 결코 거러지 같은 바닥 이 세기의 문 앞에서
그대 눈물을 보이지 말라.
우리 모두 죽어서는 평등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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