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하루

밥 /최승원

길가다/언젠가는 2006. 7. 5. 14:58

 


 양수리 부근에서 마당극 “밥”을 보고 나와 시퍼런 물빛이 방안까지 따라 들어온 식당에서 밥을 먹던 목구멍에 밥이 걸려 넘어가지 않는 다 세상만물이 돌고 돌아 서로의 밥이 되고 똥이 된다던 아까 보았던 그 밥이 걸려 자꾸 나를 붙들고 있다 밥값도 제대로 못하고 살아온 내게 화풀이라도 하듯 이 한낮에 억센 힘으로 내 목을 죄여와 도저히 밥을 삼키지 못하고 있다 밥을 먹을 때면 밥 속에 신비한 묘약이 숨어 있는지 자주 마술을 부린 다 밥으로 길들여 놓은 몸뚱어리 구석 어딘가에 잠복해 있다가 언제라도 튀어나와 내 목을 비틀 것 같다 밥 속에 잠시 길 떠났던 전생이 보이고 유효기간이 다된 세상이 보인 다 밥의 힘으로 출세를 하고 밥의 힘으로 사기를 치고 밥의 힘으로 사랑을 하고 밥의 힘으로 이별을 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세상 밖으로 사라진 다 퉤퉤, 침 발라가며 구겨진 돈을 몇 번씩이나 세어보던 새벽시장 아낙네의 거친 손 같은 세상에서 밥은 더 이상 꿈도 아니고 분노도 아니다 그저 부실한 몸 하나 지탱시켜주고 굳은살처럼 단단한 삶을 챙겨 줄뿐이다 둘러보면 이 세상, 돌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밥이 똥으로 돌아가서 세상 먹거리를 만들고 다시 똥으로 돌아가듯

 

*중앙 승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철학교육학과 졸업

 1978년 시문학으로 등단, 현재 혜진선원 원장, 도서출판 하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