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이 많은 길은 수상하다 외/오규원
간판이 많은 길은 수상하다
서울은 어디를 가도 간판이
많다. 4월의 개나리나 전경(全景)보다
더 많다. 더러는 건물이 마빡이나 심장
한가운데 못으로 꽝꽝 박아 놓고
더러는 문이란 문 모두가 간판이다.
밥 한 그릇 먹기 위해서도 우리는
간판 밑으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 소주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도 우리는
간판 밑으로 또는 간판의 두 다리 사이로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가서는 사전에 배치해 놓은 자리에
앉아야 한다. 마빡에 달린 간판을
보기 위해서는 두 눈을 들어
우러러보아야
한다. 간판이 있는 곳에는
무슨 일이 있다 좌와 우 앞과 뒤
무수한 간판이 그대를 기다리며 버젓이
가로로 누워서 세로로 서서
지켜보고 있다.
간판이 많은 길은 수상하다. 자세히
보라 간판이 많은 집은 수상하다.
장미와 문
오규원
정원의 잔디는 두 마리 흰 나비와
그림자에 붙어 있는 한 여자를
묶어 놓고
집 앞에서 반짝이고 있다
잔디 밖의
뜰에서
장미는 담장 안에서도
가시가 돋아 있다
장미가 열어 놓은 문은 꽃에 있고
빛이 집 안으로 가는 문은
벽에 있고
사람이 여는 문은 시멘트
바닥부터 시작하고 있다
장미 옆에서도 여자의 그림자는
몸을 땅에 콱 박고
집은 햇볕에 자리를 조금 뒤로 물리고
들찔래와 향기
오규원
사내애와 기집애가 돌아 마주보고
쪼그리고 앉아 오줌을 누고 있다
오줌 줄기가 발을 적시는 줄도 모르고
서로 오줌
나오는 구멍을 보며
눈을 껌벅거린다 그래도 바람은 사내애와
기집애 사이 강물소리를 내려놓고 간다
하늘 한 켠에는 낮달이
버려져 있고
들찔레 덩굴이 강아지처럼
땅을 헤집고 있는 강변
플라스틱 트럭으로 흙을 나르며 놀던
꽃과 그림자
앞의 길이 바위에 막힌 붓꽃의 무리가
우우우 번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왼쪽에 핀 둘은
서로 붙들고 보랏빛입니다
그러나
가운데 무더기로 핀 아홉은
서로 엉켜 보랏빛입니다
그러나 오른쪽에 핀 하나와 다른 하나는
서로 거리를 두고
보랏빛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痂?들이 그림자를
바위에 붙입니다
그러나 그림자는 바위에 붙지 않고
바람에 붙습니다
겨울 숲을 바라보며
겨울 숲을 바라보며
완전히 벗어버린
이 스산한 그러나 느닷없이 죄를 얻어
우리를 아름답게 하는 겨울의
한 순간을
들판에서 만난다.
누구나 함부로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누구나 함부로 완전히
벗어버릴 수 없는
이 처참한
선택을
겨울 숲을 바라보며, 벗어버린 나무들을 보며, 나는
이곳에서 인간이기 때문에
한 벌의 죄를 더 겹쳐 입고
겨울의 들판에 선
나는
종일 죄, 죄 하며 내리는
눈보라 속에 놓인다.
冬 夜
오 규 원
용서하라, 아직 덜 얼은 저 뜰의
허리와 저 뜰의 입술
용서하라, 담 너머로
다리를 내밀다가 凍死한 가을의 殘骸.
그리고 다시 용서하라
더 얼은 내 입이 얼 때까지
가지 않고 머무르는 겨울을.
얼지 않은 겨울은 비참하다. 이 비참하고
긴 겨울의 三綱五倫과
冬夜를 사랑하는 밤 불빛과
불빛을 따라가서 자주
外泊하고 오는
나와
비러먹을 시를 쓰는 나를
너는 용서하라
너는 敗北하라
나에게 敗北하라.
-王子가 아닌 한 아이에게, 문학과 지성사중에서-
한 잎의 여자1
나는 한 여자(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女子), 그 한 잎의 여자(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女子)를 사랑했네. 여자(女子)만을 가진 여자(女子), 여자(女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女子), 여자(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女子), 눈물 같은 여자(女子), 슬픔 같은 여자(女子), 병신(病身) 같은 여자(女子), 시집(詩集) 같은 여자(女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女子), 그래서 불행한 여자(女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女子).
<왕자가아닌 한 아이에게, 문학과지성사, 1978>
한 잎의 여자2
나는 사랑했네 한 여자를 사랑했네
난장에서 삼천원 주고 바지를 사입는
여자, 남대문시장에서 자주 스웨터를 사는
여자,보세가게를 찾아가 블라우스를 이천 원에 사는
여자,단이 터진 블라우스를 들고 속았다고 웃는
여자,그 여자를
사랑했네,순대가 가끔 먹고 싶다는
여자,라면이 먹고 싶다는
여자,꿀빵이 먹고 싶다는
여자,한 달에 한두 번은 극장에 가고
싶다는
여자, 손발이 찬
여자,그 여자를 사랑했네,그리고 영혼에도 가끔 브래지어를 하는
여자.
가을에는 스웨터를 자주 걸치는
여자, 추운 날엔 팬티스타킹을 신는
여자, 화가나면 머리칼을 뎅강 자르는
여자,
팬티만은백화점에서 사고 싶다는
여자, 쇼핑을 하면 그냥 행복하다는
여자, 실크스카프가 좋다는
여자, 영화를 보면 자주 우는
여자, 아이는 하나 꼭 낳고 싶다는
여자, 더러 멍청해지는
여자, 그 여자를 사랑했네, 그러나 가끔은 한잎 나뭇잎처럼 위험
한 가지끝에 서서 햇볕을 받는 여자,
한 잎의 女子 3
- 언어는 신의 안방 문고리를 쥐고 흔드는 건방진 나의 폭력이다
내 사랑하는 女子, 지금 창밖에서 태양에 반짝이고 있네.
나는 커피를 마시며 그녀를 보네.
커피 같은 女子, 그레뉼
같은 女子, 모카골드 같은 女子,
창밖의 모든 것은 반짝이며 뒤집히네,
뒤집히며 변하네, 그녀도 뒤집히며 엉덩이가 짝짝이가 되네.
오른쪽 엉덩이가 큰 女子,
내일이면 왼쪽 엉덩이가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 女子,
줄거리가 복잡한 女子, 그녀를 나는
사랑했네.
자주 책 속 그녀가 꽂아놓은 한 잎 클로버 같은 女子,
잎이 세 개이기도 하고 네 개이기도 한 女子.
내 사랑하는 女子, 지금 창밖에 있네.
햇빛에는 반짝이는 女子,
비에는 젖거나 우산을 펴는 女子,
바람에는 눕는
女子, 누우면 돌처럼 깜깜한 女子.
창밖의 모두는 태양 밑에서 서 있거나 앉아 있네.
그녀도 앉아 있네.
앉을 때는 두
다리를 하나처럼 붙이는 女子,
가랑이 사이로는 다른 우주와 우주의 별을 잘 보여주지 않는 女子,
앉으면 앉은, 서면 선 女子인
女子,
밖에 있으면 밖인, 안에 있으면 안인 女子,
그녀를 나는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처럼 쬐그만 女子,
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빈약한 상상력 속에서
1.
어제 나는 술을 마셨고
마신 뒤에는 취해서 유행가
몇 가닥을 뽑았고, 어제
나는 술을 마셨고 그래서
세상이 형편없이 보였고, 또
세상이 형편없었으므로 안심하고
네 다리를 쭉 뻗고 잤다.
어제 나는 다른 때와 다름없이 정오에 출근했고
출근하면서 버스를 타고 옆에 앉은
여자의 얼굴을 한 번 훔쳐 보았고
이
여자 또한 다른 여자와 마찬가지로
한 남자의 사랑을 받으리라는 점을
한 남자의 사랑을 받으면
이 여자의 눈에도 별이
뜨리라는 점을 확신했다.
나는 어제 버스가 쉽게 달리는 것을 느꼈고
쉽게 달리는 버스 때문에 이 시대의 우리들이 얼마나 무능한가를 느꼈고,
쉽게
달리는 버스 속에서 보아도
거리에 선 우리들의 상상력은 빈약해 보였고
그 옆에 선 아이들조차
다시 태어나리라는 상상력을
방해했고,
나는 다시 태어나기 위해
버스가 고장이 나기를 희망했다.
버스가 탈선되기를, 탈선의 장치의
거리가
준비되기를,
허락받은 사람들은 허락받은 냄새와 지랄의 아름다움을 위해
세방이라도 하나 얻기를 희망했다.
이 모든 것을 사랑의 이름으로 나는 갈구했고, 그리고
사랑의 말에는 모두 구린내가 나기를 희망했다.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랑이란
맹물이라는 점을
우리는 너무 완벽하게 잊어버려서
이제는 떠올리기조차 너무나 먼
이제는 그 사실을 떠올리려면
세방을 얻어 주는 그 방법밖에 더 있겠느냐고
나에게 질문하며.
2.
어제 나는 술을 마셨고
술과 함께 오기도 좀, 개뿔도 좀, 흰소리도 좀, 십원짜리도 좀 마셨고
그러나 오늘 새벽
잠이 깨었을 때는
오기도 개뿔도 다 어디로 가고
후줄근히 젖은 시간이 구겨져 있었다.
구겨진 새벽의 창문과 뜰과
이웃집 지붕 위로
그만그만한 어제의 오늘 하루가 내복바람으로 나를 보았고,
나는 일어나 있었고,
찬물을 한 사발
마신 후
오늘 하루 그것의 사랑에 박힌
티눈의 정체에게 안부를 나는 물었다.
카세트에 녹음된 금강경의 독경을
한 번
듣고, 뒤집에서
반야경을 한 번 듣고.
오늘 나는 오늘의 어제처럼 출근했고
출근하자마자 커피를 한 잔 마셨고
전화 두 통화를 받았고
전화 한 통화를 걸었다.
담배를 피워물고 새삼 어제
집에 무사히 도착한 일을 신기해하며
아직도 서정시가 이 땅에 씌어지는 일을 신기해하며
아직도 사랑의 말에 냄새가 나면
사랑이 아니라고 하는
맹물 사랑의 신도들을 신기해하며.
3.
내일 나는 출근을 할 것이고
살 것이고
사는 일이 사랑하는 일이므로
내일 나는 사랑할 것이고,
친구가 오면 술을 마시고
주소도 알려 주지 않는 우리의 희망에게
계속 편지를 쓸 것이다.
손님이 오면 차를 마실 것이고
죄 없는 책을 들었다 놓았다 할 것이고
밥을 먹을 것이고
밥을 먹는 일만큼 배부른 일을
궁리할 것이고,
맥주값이 없으면 소주를 마실 것이고
맥주를 먹으면 자주 화장실에 갈 것이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사랑하며
만질 것이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게 전화도 몇 통 할 것이고,
전화가 불통이면
편지 쓰는 일을 사랑할 것이다.
나무에게
물의 눈인 꽃과
물의 손인 잎사귀와
물의 영혼인 그림자와
나무여
너는 불의 꿈인 꽃과
이 지구의 춤인
바람과
오늘은 어디에서 만나
서로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고 오느냐
작은 별에 독의 잔을 마신다
별을 낳는 것은 밤만이 아니다.
우리의 가슴에도 별이 뜬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슴도 밤이다.
그러나 우리의 가슴에 별이 뜨지 않는 날도 있다.
별이 뜨지 않는 어두운 밤이 있듯
우리가 우리의 가슴에 별을 띄우려면 조그마한 것이라도 꿈꾸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다른 것을 조용히 그리고 되도록 까맣게 지워야
한다.
그래야 별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러므로 별이 뜨는 가슴이란 떠오르는 별을 위하여 다른 것들을 잘 지워버린 세계이다.
떠오르는 별을 별이라 부르면서 잘 반짝이게 닦는 마음 - 이게 사랑이다.
그러므로 사랑이 많은 마음일수록 별을 닦고 또 닦아 그
닦는 일과
검정으로 까맣게 된 가슴이다.
그러므로 그 가슴 앞에서는 조금이라도
광채를 가진 사람이면 별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그러므로 사랑은 남을 반짝이게 하는
가슴이다.
사랑으로 가득찬 곳에서는 언제나 별들이 떠 있다.
낮에는 태양이 떠오르고 밤에는 별들이 가득하다.
그러므로 그곳에서는 누구나
반짝임을 꿈꾸고 또 꿈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가득찬 가슴에 투망을 하면 언제나
별들이 그물 가득 걸린다.
양철지붕과 봄비
오래된 붉은 양철지붕의 반쯤 빠진 못과 반쯤 빠질 작정을 하고 있는 못 사이 이미 벌겋게 녹슨 자리와 벌서 벌겋게 녹슬 준비를 하고 있는 자리 사이 퍼질러진 새똥과 뭉친 새똥 사이 아침부터 지금까지 또닥 또닥 소리를 내고 있는 봄비와 또닥 또닥 소리를 내지 않고 있는 봄비 사이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空想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말 없어 돌아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 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진실로 우리는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모르고 있다.
이웃 연탄집 아저씨의 웃음이
매일 조금씩 검어지는 것도
그리고
연탄들이 연탄집의 방향을
산간지방으로
차츰 바꾸고 있는 것도.
이웃집 아저씨가 연탄이
아저씨를 감화시키는 사실을 모르듯
우리는 우리가 무엇에
물드는지 모르고 있다.
꽃의 패러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왜곡될 순간을 기다리는 기다림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곧 나에게로 와서
내가 부른 이름대로 모습을 바꾸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곧 나에게로 와서
풀, 꽃, 시멘트. 길, 담배꽁초, 아스피린, 아달린이 아닌
금잔화, 작약, 포인세치아, 개밥풀, 인동, 황국 등등의
보통명사가 수명사가 아닌
의미의 틀을 만들었다.
우리들은 모두
명명하고 싶어했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그리고 그는 그대로 의미의 틀이 완성되면
다시
다른 모습이 될 그 순간
그리고 기다림 그것이 되었다.
작은 별에 고독의 잔을 마신다
별을 낳는 것은 밤만이 아니다.
우리의 가슴에도 별이 뜬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슴도 밤이다.
그러나 우리의 가슴에
별이 뜨지 않는 날도 있다.
별이 뜨지 않는 어두운 밤이 있듯
우리가 우리의 가슴에 별을 띄우려면
조그마한 것이라도 꿈꾸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다른 것을 조용히 그리고 되도록 까맣게 지워야 한다.
그래야 별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러므로 별이 뜨는 가슴이란
떠오르는 별을 위하여 다른 것들을 잘 지워버린 세계이다.
떠오르는 별을 별이라 부르면서
잘 반짝이게 닦는 마음-이게 사랑이다.
그러므로 사랑이 많은 마음일수록 별을 닦고 또 닦아
그 닦는 일과 검정으로 까맣게 된 가슴이다.
그러므로 그 가슴 앞에서는
조금이라도 광채를 가진 사람이면 별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그러므로 사랑은 남을 반짝이게 하는 가슴이다.
사랑으로 가득찬 곳에서는 언제나 별들이 떠있다.
낮에는 태양이 떠오르고 밤에는 별들이 가득하다.
그러므로 그곳에서는 누구나
반짝임을 꿈꾸고 또 꿈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가득찬 가슴에 투망을 하면 언제나 별들이 그물 가득 걸린다.
죽고 난 뒤의 팬티
가벼운 교통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시속 80킬로만 가까워져도 앞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굴립니다.
산 자(者)도 아닌 죽은 자(者)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울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만의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 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오규원(1941 ~ )
경남 밀양 출생. 동아대 법학과 졸업. 1968년
『현대문학』에 시가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 시집으로는 <분명한 사건(事件)>, <순례(巡禮)>, <사랑의
기교(技巧)>, <왕자(王子)가 아닌 한 아이에게>,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抒情詩)>, <희망
만들며 살기>, <가끔은 주목받는 생(生)이고 싶다>, <하늘 아래의 생(生)> 등이 있고 수필집으로는
<아름다운 것은 지상에 잠시만 머문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