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하루

[스크랩] 김신용

길가다/언젠가는 2006. 1. 23. 17:02

 *가시 1

 

 

가시에

얼굴이 비쳐 보일때가 있다

 

핏방울이 묻어날 듯 날카롭게 돋아있는 가시가

거울처럼 얼굴울 비쳐 보여 줄 때가 있다

 

내가 가시가 되었을 때다

내가 가시가 되어 가시를 바라볼 때이다

 

그때 가시는 드므가 된다

가시가 된 내 얼굴을 맑게 떠올려주는 물거울이 된다

 

가시가 가시를 겨루는 그 전율!

 

내가 또 하나의 敵意 앞에 섰을 때의 삶이

덫과 같은 맑은 물거울에 파동치는 순간!

 

-환상통-

 

 

 

 

*눈부처




그대 눈 속에 들어 있는 얼굴 하나
깊은 동굴 같은 얼굴 하나
슬픔이 석순石筍처럼 맺혀 자라나고 있는
그 돌고드름에 매달려 눈물처럼 그렁이고 있는 얼굴 하나
젖은 나뭇잎 같은 그 위조지폐를, 지갑 속의 사진처럼 간직하고 있는
지갑 속의 사진처럼 간직하고 있어 마치 강철로 만든 잎처럼, 아무리 바람 불어도
떨어지지 않는 얼굴 하나
하고 싶은 말들은 그 눈 속에 울타리처럼 두르고 너와집이라도 지어 살게 하고 싶은
것일까?
돌고드름에 맺힌 눈물을 삽처럼 쥐어주며 더 깊은 동굴을 파게 하고 싶은 듯, 눈꺼풀
을 깜박이는 눈 속의 얼굴 하나
그 태초의 빛인 듯, 손에 쥔 삽으로 그대 눈 속에 어두운 동혈洞穴을 경작하고 있는,
그 위조지폐로 사는 건 슬픔이지만 맺힌 돌고드름의 삽질로, 파헤쳐진 그대 가슴 속을
방으로 꾸며주고 있는 눈이여, 그 동그란 눈동자 속의 영어囹圄여.
한 줄기 슬픔에도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 눈사람 같은
땀방울들, 맺히고 맺혀 이제 가시 기둥 같은 돌고드름이 되어 매달려 있어도
그대 눈 속에 담겨 비로소 얼굴이 되는 얼굴 하나
그대 눈 속에 비쳐져 비로소 세계가 되는 얼굴 하나

-시인세계, 2005, 겨울호-

 

 

*도장골 이야기 

 -부레옥잠

아내가 장바닥에서 구해온 부레옥잠 한 그루
마당의 키 낮은 항아리에 담겨 있다가, 어제는 보랏빛 연한 꽃을 피우더니
오늘은 꽃대궁 깊게 숙이고 꽃잎 벌리고 있다
그것을 보며 이웃집 아낙, 꽃이 왜 저래? 하는 낯빛으로 담장에 기대섰을 때
저 부레옥잠은 꽃이 질 때 저렇게 고개 숙여요―, 하고 아내가 대답하자
밭을 매러 가던 그 아낙, 제 꽃 지는 자리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구먼―, 한다

제 꽃 지는 자리,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그 꽃
제 꽃 진 자리,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그 꽃

몸에 부레 같은 구근을 달고 있어, 물 위를 떠다니며 뿌리를 내리는

물 위를 떠다니며 뿌리를 내려, 아무 고통도 없이 꽃을 피우는 것 같은

그 부레옥잠처럼
일생을 밭의 물 위를 떠흐르며 살아온. 그 아낙

오늘은 그녀가 시인이다

몸에 슬픔으로 뭉친 구근을 매달고 있어, 남은 생
아무 고통도 없이 꽃을 피우고 싶은 그 마음이 더 고통인 것을 아는

저 소리 없는 낙화로, 살아온 날 수의 입힐 줄 아는 ……

주희야 오늘은 우리가 주인공이다. 시인이고.
지는 자리도 잘 알고, 쉽게 감출 줄 아는...

 

 

*공중변소 속에서

 

 

  공중변소 속에서 만났지. 그녀

  구겨버린 휴지조각으로 쪼그려 앉아 떨고 있었어.

  가는 눈발 들릴 듯 말 듯 흐느낌 흩날리는 겨울밤

  무작정 고향 떠나온 소녀는 아니었네.

  통금시간을 지나온 바람은 가슴속 경적소리로 파고들고 

 

  나 또한 고향에서 고향을 잃어버린 미아,

  배고픔의 손에 휴지처럼 구겨져, 역 앞

  그 작은 네모꼴 공간 속에 웅크려 있었지.

  사방 벽으로 차단된 변소 속,

  이 잿빛 풍경이 내 고향

  내 밀폐된 가슴속에 그 눈발 흩날려와, 어지러워

  그 흐느낌 찾아갔네.

  그녀는 왜 마약중독자가 되었는지 알 수 없었어도

  새벽털이를 위해 숨어 있는 게 분명했어. 난 눈 부릅떴지.

  그리고 등불을 켜듯, 그녀의 몸에

  내 몸을 심었네. 사방 막힌 벽에 기대서서, 추위 때문일까

  살은 콘크리트처럼 굳어 있었지만

  솜털 한 오라기 철조망처럼 아팠지만

  내 뻥 뚫린 가슴에 얼굴을 묻은 그녀의 머리 위

  작은 창에는, 거미줄에 죽은 날벌레가 흔들리고 있었어. 그 밤.

  내 몸에서 풍기던, 그녀의 몸에서 피어나던 악취는

  그 밀폐의 공간 속에 고인 악취는 얼마나 포근했던지

  지금도 지워지지 않고 있네. 마약처럼

  하얀 백색가루로 녹아서 내 핏줄 속으로 사라져간

  그녀,

  독한 시멘트 바람에 중독된 그녀.


  지금도 내 돌아가야 할 고향, 그 악취 꽃핀 곳

  그녀의 품속밖에 없네.

 

 

 

*깡통을 위하여

 

한 때

우리 모두 가난했을 때

판잣집의 쭈그러진 그릇처럼 헐벗었을 때

깡통은,

우리들의 삶의 일부였다

속은 텅 비우고 껍질만으로 굴러 다녀도

깡통은

초라한 꽁초의 집이 되어 주었고

천정에서 떨어지는 빗물의 그릇,

뚫린 벽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다

스스로 텅 비우지 않아도, 늘 비어있는

버린다는 그 의식마저 비우지 않아도, 알맹이는 주고

흙을 담으면 화분이 되어 주었고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통이 되어 주었다

깡통의 생애가 꽃으로 장식되는 것은 아니지만

깡통 화분이 놓인 山 1번지,

도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쪽마당 가에 갖가지 빛깔로

깡통 꽃밭을 보며

비록 빈혈이었지만, 우리는 꿈의 어질머리를 앓기도 했

그 깡통을

발로 차지 말자

홧김의 구둣말로 시궁창에 처넣지 말자

텅 빈 껍질만으로 굴러다니는 알몸이

잿빛의 미래를 펼쳐 보이는, 이 앙다문 몸짓의 물구나

무서기라 해도

만나는 그 어떤 것과 몸 섞으며

버려져 뼈아픈 것들을 기억하게 한다 해도

 

 

 

*바람의 입

 

  아프리카에서는

   메뚜기 떼를 바람의 입이라고 부른다

   바람을 타고 공중을 가득 뒤덮으며 날아와,  지평선을 지우고

   하늘을 지우고

   들판의 곡식들을 갉아 먹어 버리는 메뚜기,

   메뚜기 떼들.

 

 

   앉은 자리를 폐허로 만들어 버리는

   그 바람의 입들.

 

 

   누가 바람처럼 살고 싶다고 하나?

   바람에게도 입이 있다.   저렇게 바람의 입을 발견한 아프리카人들에게

   나는 무릎을 치며 경탄한다

   숲을 지나 온 바람

   푸른 풀밭을 걸어 온 바람을 <바람>이라고 발음만 해도

   입술이 초록으로 물드는,  내 고정관념의 목덜미에 차가운 물방울처럼 떨어지는

   그들의 언어 감각.

 

 

   그러면

   에메랄드와 철광석 같은 광물들을 먹어치우기 위해, 새카맣게 몰려든 西歐人들을

   그들은 뭐라고 불렀을까?

   엔진을 가진 바람의 입?

   혹은 총?

 

 

   낡은 집

   풍화하고 있는 늙은 고목만이,  바람의 입이 스쳐간 자국이 아니다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날아와, 이윤만 빼먹고 튀어 버려

   먹튀族이라고 불리는, 그 바람의 입도 있다 

 

 

   그 입이 스쳐간 자리는,  정리해고의 빈 쭉정이들만 남는다

 

 

   그리고 저 간판들

   건물의 벽면에 메뚜기의 形象으로 앉아 있는 무수한 돌출 간판들

   저것은 바람의 입이 아닌가?

   기호화된,  보이지 않는 그 낱낱의 입들

   의식이 들판의 곡식인 그 메뚜기 떼들

 

 

   앉은 자리를 아예 無化시켜 버려야 식성이 풀리는

   그 바람의 입들.

 

-시집/환상통-

 

 

 

*이땅의 풀잎

 

 

 

땅 밑을 흐르는 저 뿌리의 몸부림이

곡괭이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부드러운 아주 부드러운 포옹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어느날, 속잎이 눈뜰 때

뼈를 깎는 살을 찢기는 그 아픔으로 뿌리는

땅 밑 가장 어두운 곳에서

땀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윽고 맑은 햇살 속, 떠오른 풀잎의 흔들림

결코 지게질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미풍에 흔들리는 꿈의 요람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바람 부는 날

아주 미친 바람 부는 날

피바람 자욱한 황사의 오월이 왔을 때

가녀린 풀잎 위에 실린 햇살 한 짐 한 짐......

온몸 짓눌려도 생이 마감하는 날까지

그 흔들림으로 져날라서

어둠 속 저 뿌리의 캄캄한 길 위에

등불로 피워놓는 것을 보았다

 

분신처럼, 어두운 이 땅 위에

이름 모를 꽃 한 송이 밝혀 놓는 것을 보았다. 아무도

몰래

 

- 버려진 사람들-

 

 

 

*재봉틀

 

 


풀밭 위에 재봉틀 한 대가 놓여 있다
365일 수의를 짓느라 낡아지고 칠 벗겨진 재봉틀
순한 눈망울의 맹인 안내견처럼 풀밭에 앉아 있다
그 푸른 지팡이에 이끌려온 내 만혼晩婚의 날들
된장독 이불 보따리 같은 가재 도구들의 곁에 부려놓고
신호등 앞에서 앞발을 모으고 있는 것처럼 앉아 있다
저 신호등의 색깔이 푸른 제비꽃으로 바뀌면
또 어디로 가나? 눈 깜박이는 나비 한 마리
재봉틀 위에 날아와 앉아, 낮선 길을 눈새김 하듯 날개를 접는다 풀로 만들어진 수의
풀의 실을 뽑아 지어진 옷을
매일 하루 하루에게 입히며, 그대 위해 옷 한 벌 지어본 적 없는
품삯, 풀에서 뽑아낸 실로 지어
풀처럼 깨끗이 삭아 갈, 또 하루를 꿈꾸는지
나비가 팔랑 나래를 펴고 울타리를 넘어 날아간다
풀의
옷은, 풀잎이듯
태우면 고운 재의 입자粒子만 남는, 눈길 거두고
몸 일으킨 맹인 안내견, 목줄 내밀어 새로 이삿짐을 푼 집의 방으로
다시, 나를 데려갈 것이다
풀밭 위에
놓여있는 재봉틀 한 대,
황혼을 이끌고 온 해거름의 일꾼처럼, 순한 눈망울을 껌벅이며
마당 가에
앉아 있는, 내 만혼晩婚의
텃밭,

 

-현대시 8월호-

 

 

 

*몽유속을 걷다


요즘 나는 <머리에 떨어진 벽돌>을 꿈꾼다
길을 걷다가, 멍청히 빈 공터를 서성이다가 문득
어디선가 떨어져 내린 벽돌이 머리에 꽝 부딪친 순간
(사망은 말고,)
머리통 속만 깜깜히 어두워져 버렸으면......, 하고 상
상한다
또 두개골 속의 물렁한 뇌가 돌처럼 딱딱히 굳어버린
그 순간,
등에 닭털 날개라도 돋아났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 닭털 날개를 달고 날지도 못하면서 날 것처럼 푸
드득이는 모습이
서커스의 우스꽝스런 어릿광대 같다고 해도
나는 <머리에 떨어진 벽돌>을 꿈꾸곤 한다
그리고 박제의 가짜 날개를 달고, 이 도시를 몽유
도원처럼 거닐었으면......, 하고
다시 상상한다. <머리에 떨어진 벽돌>.
뒤로 넘어지다가 코가 깨질 때처럼, 최소한 백만 분의
일의 확률로
재수 없다는 이 불행, 이 생의 돌발성에 실려
머리 속에는 캄캄히 타버린 기억의 재밖에 들어 있지
않은데
기억회로에는 살아온 어떤 생의 무늬도 비쳐지지 않
는데
나는 이 불치(?)의 기억상실증 환자가 되어, 거리를
무릉도원처럼 거닐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두개골에 벽돌이 꽝 부딪힌 그 순간,
텅 빈 머리통 속에 덜컥 <공중정원>이 들어서기를
그 공중정원에서 닭털 날개를 달고, 반가사유상 같은
우주의 주민의 산책을 꿈꾸는 것이다. 마치 베를린 장
벽이 무너진 것 같은
해방된 표정을 낯짝에 달고, 이 도시가 유토피아라도
되는 듯이
그 모습 또한,
불타는 소돔을 못 잊어 문득 뒤돌아본 <소금기둥> 같
다고 해도.

 


- 몽유 속을 걷다 / 실천문학사, 1998

 

 

 

*흉터, 어느 작부로부터의 편지

 

 

 

                    -엉망으로 취해,뱃놈 인생은 말짱 개털이라고 내 남루한

                     치마폭에 오물을 게워놓고,폐선 속의 쥐새끼처럼 하룻밤

                     내 썩은 몸뚱이를 다녀가신 선생님께-

 

 

바다 위에 노을이 타오르면 온몸 석유 끼얹고 분신하던 그이의 모습이 보여요

와락 그 불덩이를 껴안았다가 얻은 왼쪽 얼굴과 귀밑 목덜미에 반져 있는

그 火傷 제 섬이에요 낡은 통발배가 버러진 고무신짝처럼 떠 있는 남해의 작은

落島 밤이면 선창의 붉은 불빛 객혈처럼 흐르는 좁은 술집 골목 술자리에서

빈번이 쫓겨나던 작부---그래요 제 흉터의 섬 견고한 바다의 물결로 첩첩이

쌓은 제 감옥이에요 철조망 번뜩이는 탐조등은 없지만 스스로 벽을 쌓아

유폐된 감옥 절해 고도----

 

 

그이가 살아 있었다면---온몸 멍처럼 시퍼렇게 물들이는 바다의 저 푸른 쪽빛

마치 농익은 오얏을 깨물 때의 그 상큼한 맛으로 내 오관을 저리게 했을지도---

철마다 흐드러지게 피는 저 핏빛 동백 내 목에 화환으로 타올라 세상의 가슴에

내 꽃무늬 화사한 문신으로 새겨졌을지도----

 

 

그러나 저는 알아요 스스로 갇힌 이 감옥 세상을 향한 집념 인간을 위한 모든

욕망을 버렸을 때 다가오는 포근한 고절감 또 이것이 얼마나 금찍스런 감옥

인가를 그 안온암이 얼마나 뼈저린 자기 방어인가를 저는 알아요 자기 위안의

내 견고한 섬 허망 위에 허망을 쌓아 물거품만 허벅지게 피웠다가 덧없이

스러지는 포말의 집이라는 것을.

 

 

흉터---그이가 아니었다면 태어나지 않았을 섬 이제 정분난 남정네가 주고 간

정표 같아요 죽어서 비로소 잉태된 그이의 흔적이에요 온통 그믐밤처럼 꺼멓던

탄광촌 제 몸 곡괭이가 되어야 살아남던 삶들 그들의 구멍 숭숭 뚫린 가슴의

空洞 같던 갱 앞에서 스스로 온몸 불꽃 피워 어두운 삶을 밝히려 했던 그이

몸 안주 삼아 들고 다니던 내 들병이 같던 새월 썩은 몸둥이 무엇이 좋다고

밤마다 파고들어 몸 던져 껴안아야 할 날들을 몸으로 말해 주던 그이.

 

 

그 흉터 술맛 떨어진다고 흘러 흘러온 갯촌의 시린 술주정을 피해 얼굴이 밑천인

이 화류의 세계에서 내치는 손길 손톱 세워들고 돼지 얼굴 보고 잡아먹냐고

악머구리 몸부림 대신 홀로 어둠 속의 방파제로 나와 일렁이는 밤물결 앞에 서면

마치 최면이듯 부드럽게 속삭이는 그 영원한 잠에의 유혹---그 허망이 지어놓은

집으로 돌아가서 그이와 함께 잠들 이불만 펴면 되는 것을.

 

 

그러나 선생님 병도 오래 앓으면 수족 같은  정이 든다 했던가요?

얼굴에 술을 끼얹으며 썩은 내 품을 파고드는 비린 생선내음

절이고 절여진 퇴락한 어촌의 그 한서린 세월 그것 또한 내가 껴안아야 할 흉터가

아닌가요? 이 땅 암호처럼 그이가 내게 주고 간 흉터 그 살아 있는 날들의

의미가 아니던가요? 잡풀도 새들의 둥지를 짓는데----.

 

 

 

 

*물고기 무덤

 

 

물고기야
나는 생선을 좋아한다. 살아, 퍼득퍼득 뛰는 놈을 회
를 쳐, 초고추장에 푹,
소주 한 잔 칵! 생각만 해도 의시시하다
뜨거운 천렵의 강가에선 더욱 소름끼친다
살아, 퍼득이는 놈을 찾아 천방지축이 되는 나의
벌거벗음, 물고기야
사람의 몸 속에는 강이 있다
모든 것을, 태어난 곳으로 되돌려주는
살은 살에게 주고, 뼈만으로 흐르는 강이 있다
그 뼈의 강은
죽비,
깨라! 살 한 점 없는 부끄러움 빈 그릇 위에 앙상히
떠올라도
물고기는 무덤을 짓지 않는다
물고기의 눈에는 눈꺼풀이 없다
뼈는 물고기의 주검을 물로 흐르게 하지만
살은 항문으로 오물을 흐르게 한다
그럼 물고기의 무덤은 인간의 뱃속? 그러나
물고기야
어두운 밤길, 가로등을 켠 뼈가 있다
제 어둠을 밝히지 못해 두 눈 핏발 켠 뼈가 있다
살은 살에게 주고, 아무리 뼈만으로 헤엄치고 싶어도
줄 살이 없는 뼈가 있다
그때, 너는 살을 찾기 위한 단백질 주공급원,
밤길을 걸어, 차가운 上流의 물에 핏발 아픈 두 눈의
열을 푸는
열목어,
그 뼈의 가로등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부끄러움의 뼈 한 자락도 부끄러워, 방취제인
무덤을 뿌린다
나는 생선을 좋아한다
소주 한 잔 촛불 켜마, 내 몸 속의 강에 살 한 점 남김
없이
너를 방생하며, 뼈를 다오
티없이 맑은 下流의 물에 열목어를 다오

 

- 몽유 속을 걷다-

 

 

 

*빈집 속의 빈집




땅끝을 지나, 빈집에 들어서야

내가 빈집 속의 빈집이었음을
알겠네. 땅끝에 매달려/

저기, 수척한 바다처럼 누워있는
사람, 그 바다에 /

나는 얼마나 많은 섬들을 띄워놓았던가
말의 섬들,/

햇살 속에 온갖 어족의 비늘로도 반짝이던
그 다도해,그러나 그 섬들은/

이제 마당가에 뒹구는 빈 장독들처럼
불룩해진 배로 /

상상임신의 헛구역질만 하고 있음을 보네,
말의 뼈를 뽑아 /

삭아버린 서까래 하나 얹지 못한
덜컹이는 바람벽의 못 하나 되지 못한 /

빗방울 스미는
저 녹슨 함석 지붕 하나 떠받치지 못한 /

말의 무수한 발자국만 남긴
몸, 이제 이 땅의 끝까지 지나왔지만 /

저기,赤湖에 잠겨
잡풀 우거진 빈집으로 누워있는 사람,/

그 빈집에 들어서야
내가 빈집 속의 빈집이었음을 알겠네

 

 

 

*환상통(幻想痛)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가지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다

나무도 환상통을 앓는 것일까?
몸의 수족들 중 어느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듯한, 그 상처에서
끊임없이 통증이 배어 나오는 그 환상통,
살을 꼬집으면 멍이 들 듯 아픈데도, 갑자기 없어져 버린 듯한 날

한때,
지게는, 내 등에 접골된
뼈였다
木質의 단단한 이질감으로, 내 몸의 일부가 된
등뼈.

언젠가
그 지게를 부수어버렸을 때, 다시는 지지 않겠다고 돌로 내리쳤을 때
내 등은,
텅 빈 공터처럼 변해 있었다
그 공터에서는 쉬임없이 바람이 불어왔다

그런 상실감일까? 새가 떠난 자리, 가지가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것은?

허리 굽은 할머니가 재활용 폐품을 담은 리어카를 끌고
골목길 끝으로 사라진다
발자국 없고, 바퀴 자국만 선명한 골목길이 흔들린다

사는 일이, 저렇게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라면 얼마나 가벼울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잇는 창 밖,

몸에 붙어 있는 것은 분명 팔과 다리이고, 또 그것은 분명 몸에 붙어 있는데
사라져 버린 듯한 그 상처에서, 끝없이 통증이 스며 나오는 것 같은 바람이 지나가고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 가지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다

 

 

*짜장면 한 그릇만 사주실래요?



나는 처음, 그 말이 그녀의 울음인지 몰랐다
나는 배가 고파요-. 오늘 밤, 잠잘 곳이 없어요-. 하
는, 신음인지도 몰랐다
한 불구의, 공원을 떠돌아 다니며 몸을 파는 어린 창녀
의, 남자를 유혹하는
눈웃음인 줄만 알았다
걸을 때마다 몸과 심한 불화를 일으키는, 미발육의, 우
스꽝스러운 그 몸이
얼마나 값싼 것인가를 나타내는, 기호인 줄만 알았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않아, 걸을 때마다 등나무처럼 뒤
틀리는, 그 기형의 걸음걸이로
남산 공원을 떠돌며, 만나는 남자들에게마다 <짜장면
한 그릇만 사주실래요?> 하던
그말이-.

나는 갈 곳이 없어요-.
지금<내 몸이 불타고 있어요>하는, 비명인지도 몰
랐다

자신의 불구,
그 부끄러움을 마비시키기 위해, 신경 안정제를 마약처럼
삼키고
그 몽롱함으로, 공원의 풀숲
공중변소 속에서도 몸을 팔던 그녀
어릴 때부터 그 짜장면 한 그릇을 먹는 것이 꿈이었던
그것이 그때, 그녀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세계였던-,
그 몸을 팔기 위해
걸어 들어간 공원의 어두운 풀숲
더러운 냄새나는 공중변소 속에서, 그 우스꽝스런 불구
의 몸 때문에
양동 빈민굴 사창가에서마저 몸을 팔 수 없어, 남산 공
원의 떠돌이 창녀가 된
그녀가 마지막으로 움켜쥘 수 있었던-.

짜장면 한 그릇만 사주실래요?

정말 나는 처음 그 말이, 종의 돌연변이인 줄만 알았다
변이 유전인자에의한, 이상 진화인 줄만 알았다
자신의 불구 때문에, 영혼이 먼저
소아마비에 걸린-.


-[환상통]중에서
실천문학사 -

 

 

 

 

 

 

 

출처 : 진영님의 플래닛입니다.
글쓴이 : 진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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