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합시다

감동이 있는 글/이승하

길가다/언젠가는 2006. 1. 15. 02:07
감동이 있는 글

뼈저린 꿈에서만/전봉건

그리하라면
그리하겠습니다.
개울물에 어리는 풀포기 하나
개울 속에 빛나는 돌멩이 하나
그렇습니다 고향의 것이라면
무엇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지금도 똑똑하게 틀리는 일 없이
얼마든지 그리하겠습니다.

말을 하라면
말하겠습니다.
우물가에 늘어선 미루나무는 여섯 그루
우물 속에 노니는 큰 붕어도 여섯 마리
그렇습니다 고향의 일이라면
무엇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지금도 생생하게 틀리는 일 없이
얼마든지 말하겠습니다.

마당 끝 큰 홰나무 아래로
삶은 강냉이 한 바가지 드시고
나를 찾으시던 어머님의 모습.
가만히 옮기시던
그 발걸음 하나 하나
나는 지금도 말하고 그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한 가지만은
그러나 아무리 몸부림쳐도 그것만은
내가 그리질 못하고 말도 못합니다.
강이 산으로 변하길 두 번
산이 강으로 변하길 두 번
그러고도 더 많이 흐른 세월이
가로 세로 파놓은 어머님 이마의
어둡고 아픈 주름살.

어머님
꿈에 보는 어머님 주름살을
말로 하려면 목이 먼저 메이고
어머님
꿈에 보는 어머님 주름살을
그림으로 그리려면 눈앞이 먼저 흐려집니다.
아아 이십 육 년
뼈저린 꿈에서만 뫼시는 어머님이시여.
ㅡ전봉건, <뼈저린 꿈에서만> 전문


전봉건 시인의 <뼈저린 꿈에서만>을 이해하려면 시인의 생애에 대한 고찰이 반드시 필요하다. 시인은 1928년 평안남도 안주군 동면 명학리 10번지에서 7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관리인 부친을 따라 도내 여러 곳을 전전하며 성장기를 보낸다. 해방되던 해에 숭인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유와 시를 찾아 곧바로 월남, 고향을 영원히 등지게 된다. 즉, 월남한 이후 고향은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땅이 되며, 많은 일가 친척과 친구들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전봉건 시인에게 고향 상실과 국군 사병으로 참전한 6.25 체험은 그의 시에 아주 중요한 모티프로 지속적으로 작용한다.
전봉건은 23세인 1950년에 {문예}지에 시가 추천되어 등단한 이후 1988년에 작고할 때까지 많은 시집과 시선집, 시론집을 내며 우리 시단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활동한다. 그는 특히 1969년 4월 시전문지 {현대시학}을 창간하여 우리 시의 발전을 위해 지대한 공헌을 하신 분이다.
시 <뼈저린 꿈에서만>이 발표된 것은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을 때였다. 남과 북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마련한 '조국통일 3원칙'은 지금 보아도 가슴이 설렌다. 통일을 외부세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통일은 무력에 의하지 않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실현한다, 사상 제도를 초월하여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서는 당시 냉전체제 속에 있던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을 정도로 획기적인 것이었다. 일단 남북이산가족이 휴전 이후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을 것인가. 시인은 월남한 이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 어머니를 만나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꿈에 부풀어 애타는 마음으로 사모곡을 불렀으니, 바로 <뼈저린 꿈에서만>이다.
이 시의 제3연과 5연을 이산가족이 읽는다면 눈물을 글썽일 것이다. 어머니의 발걸음 하나 하나를 지금도 그릴 수 있다는 것과, 주름살을 그림으로 그리려면 눈앞이 먼저 흐려진다는 대목은 읽는 이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음이 있다. 독자가 설사 이산가족이 아니어도 북에 계신 어머니를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 아들의 비원(悲願)을 듣는다면 눈시울이 뜨거워질 것이다. 통일은 정치적 논리와 경제적 이해타산을 따지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남북한 이산가족이 쌓인 한을 푸는 만남의 자리가 연중 몇 차례 이루어지는 데서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
분단 상황이 어머니와 자식을 못 만나게 한 세월, 그 세월이 이 시가 씌어졌을 당시 이미 26년이나 되었고, 시인의 사무친 그리움은 날이 갈수록 쌓여만 간다. 그리하여 1982년에 펴낸 시집 {북의 고향}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나온다.

산모퉁이를 돌아서는데 눈 한 송이가 내 등어리를 파고들었습니다 늙어 한쪽 눈만 보시는 어머님의 그 눈 하나도 산모퉁이까지 쫓아와서 내 등어리를 파고들었습니다 그 뒤로 나는 삼십여 년을 이남에서 살고 있습니다
ㅡ<눈> 부분

시인은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고서 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되던 해에 눈을 감았다. 북의 어머니 또한 언제 돌아가셨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쪽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막내아들이 보고 싶어 눈물의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2000년 8월 15∼18일과 11월 30∼12월 2일 두 차례에 걸쳐 서울과 평양에서 실시된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온 국민에게 남북 화해와 통일의 당위성을 심어주었다. 임종을 앞두고서도 눈을 감지 못하는 분들의 가슴에 우리는 모두 못을 박고 있다. 전봉건 시인의 시를 읽으니 21세기에는 반드시 통일이 되어 이산가족의 한이 조금이라도 풀리기를 더욱 간절히 바라게 된다.

*이승하교수의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