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하루

[스크랩] 2005 문예중앙 신인상 당선작 / 치즈굴리기 대회, 외

길가다/언젠가는 2006. 1. 7. 14:58

치즈 굴리기 대회 / 정다운

 

 

 

  여기저기 배다른 자식들을 뿌려두었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할머니들은 서로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한데 모여든 자식들은 자잘한 레밍쥐 떼 같아서, 삼사 년에 한 번씩 무진장 불어나 바다로 간다는 그들처럼 줄지어 물속으로 뛰어들 것 같았다

 

  내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들은 모여서 묘지를 샀다 바다 위에 노랗고 둥근 달 두 개 내 할머니는 결국 봉분 하나를 차지할 수 있게 될 것이지만 모르지, 어떤 딸들은 제 엄마의 불사른 뼈를 어느 밤 몰래 큰 봉분 아래 파묻을지도 등을 구부린 채 밤새 달을 지키는 아버지는 발가락이 물에 젖는지 가끔 어깨를 떨고

 

  할아버지의 하관은, 치즈 한 덩이 굴러내려가는 것 같았다 모두가 와르르 엎어졌고 평생 온전히 불려본 적이 없었던 아버지 아버지, 끝도 없이 무덤 속으로 굴러내려갔다 영국의 쿠퍼 언덕에서처럼 잔디가 햇볕에 반짝이는 오후 여자고 남자고 정신없이 뛰어내려가 언덕을 구르는 그 유쾌하고 미련한 축제- 바다로 풍덩 풍덩 지친 그들, 그러나 레밍쥐와 달랐던 것은 얼굴의 짠 물 털고 언덕을 다시 기어 올라간다는, 죽지 않고 살아간다는, 그저 골절된다는 그것

 

 

 

 당나귀처럼,

 

 

 

어떤 절망은 사소해질 것이라고 말하지 마라

모든 밤은 아침을 밟고 걸어온다

사내들의 구두코가 검은 것은

기름진 아침의 살점으로 늘 반들거리기 때문이다

자루는 신발장보다 크고 우리는 때로

그것을 소금으로 채울 만큼 약삭빨라

물을 만나면 넘어져 일어나지 않았을 뿐

이를 딱딱 부딪치면 별들이 튀어오른다

하늘에 별이 떴다, 라고 말하면서

일어나지 않았을 뿐 고약한 추위였다

자루는 천천히 흐물흐물해졌고 우리는 손을 들어

이토록 작고 가볍다고 흔들어댔다

당나귀처럼 헹헹 웃으면서

쭈그러든 절망을 팔러 갈 수 있었다

잔돈을 흔들며 돌아오는 길은

머리카락에 매달린 소금 알갱이들이 잘강이는 소리

바삭바삭한 밤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헹궈도 사라지지 않는 자루

저도 모르게 그 안에 솜을 쑤셔넣고

물속에 드러누운 채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밤

하늘에 별이 가득하고 입술은 파랗고

거대한 자루 위에 누워 후회하는 밤

물 먹은 밤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다

모든 밤은 아침을 밟기 위해 걸어간다

우리는 때로 사소한 소금을 한 주먹 쥐고

여러 번 헹궈잴 수 있었을 뿐

어떤 절망도 결코 사소해지지 않는다

 

 

 

 홍게의 춤

 

 

 

수천의 홍게가 유리창을 두드리며 걸어가고 있다

그들의 발소리에 잠에서 깬다, 십이월이다

지난밤까지 내려간 것은 수컷의 마지막 무리였나 보다

암컷들은 가는 다리를 뻗어 숲의 나뭇잎을 만지작거리고

천천히 기어나오기 시작한다

알을 주렁주렁 매달고 어떤 놈들은 혀를 빼물듯

너무 불린 덩어리를 가슴 바깥에도 내놓고 있었지만

어떤 놈도 제 알이 무거워 흘리고 가진 않는다

섬이 완전히 젖어야만 그놈들은 나온다

곧, 좀 더 많은 암컷들이 쇄도할 것이다

나는 창문을 닫고 굳은 빵을 부숴 정원에 뿌려준다

긴, 행렬이다

그 행렬이 끝나면 알 없이 따라갔던 놈들은

수컷들과 함께 고원으로 돌아가고

그리고 이 섬에 크리스마스가 올 것이다

십만 개의 알을 가진 암컷들은 천천히 다가가

쓸려나가는 파도 위에다 알을 털 것이다

온몸을 흔들면서, 나는 방 안에서 춤을 출 것이다

홍게처럼 두 팔을 높이 들고, 앞뒤로 몸을 흔들면서

서툰 놈들은 파도가 들어올 때 몸을 털다가

알은 해변 위에 남기고 제가 들어가버리기도 하지만

바다 속은 눈처럼 뿌옇게 내리는 알들로 가득 차고

일주일 밤낮 때로 한 달 동안 춤추고 나면

빈 몸의 게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빈 배를 쓸면서 깊은 잠을 잘 것이다

 

 

 

 

 

그 집 마당에는 대추나무가 있다

엄마는 주인집 몰래 푸른 대추를 따주었다

엄마는 팔이 길어 골라 딸 줄 알았다

하루에 세 개 이상은 따주지 않았다

감쪽같았다

 

세수를 하다 말고 손톱으로 비누를 긁어놓으면

밤에 엄마는 쥐가 갉아 먹었다고 소리를 쳤다

내일은 쥐약을 뿌려야지, 불이 꺼졌다

쥐약은 파란색이다 반짝거린다

나는 어둠 속에서 쥐처럼 손톱을 물어뜯었다

노오란 비누 맛 감쪽같았다

 

모든 것은 재빠르고 흔적도 없었다

이딴 쥐 사는 방, 주인 여자랑 싸우고 이사하던 날

엄마는 남은 쥐약을 대추나무 아래에 파묻고는

발로 나무를 콱 쥐어박았다

푸른 대추 후두둑 떨어졌다

마당에 붙어 줍고 있는 내 손을 몹시 후려치자

몇 알 도로 굴러가버렸다

손을 다치면 손가락을 쪽쪽 빠는 거지만

나는 차마 입에 가져가지 못해

손등을 바지에 문지르고 서 있었다

 

엄마 무릎 사이에 끼여 용달차를 타고 가는 동안

나는 주먹 안에 남은 한 알 얼른 입에 넣었다

감쪽같았다

나는 아무리 약을 쳐도 죽지 않는, 쥐처럼

골목을 옮아갔다

 

 

 

테트라포드*

 

파도는 네 발 달린 콘크리트 덩어리 앞에서

쉽게 찢어진다 무쳐 먹기 알맞다

사람들은 바다의 귀퉁이를 꼭꼭 씹어 먹는다

허기지면 제 발을 씹는다는 문어처럼

흡반을 떼어 먹고 자꾸 미끄러지는 것 같다

새들도 사람도 처음엔 발이 네 개였다

두 개는 날개가 되었고 두 개는 손이 되었다

새는 날고 싶었고 사람은 아마 만지고 싶었을 게다

만지다 지쳐서 제 손을 베고 잠을 자고 싶었을 게다

사람의 손은 어떤 물고기들에게 너무 뜨거워

열이 나서 죽는다 한다 다시 바다 속에 던져주어도

몸이 너무 뜨거워 헤엄을 멈춘다 한다

사랑한 자들의 얼굴은 손자국, 온통 울긋불긋하고

숨이 막혀 떠나기도 하지만 때로 떠난 자들은

소파 블록에 묶인 채 발견되기도 할 것이다

파도는 네 발 달린 콘크리트 덩어리 앞에서

쉽게 찢어지고 그 속에 물고기들 숨어 산다

파도의 틈틈마다 줄을 드리운 방파제 낚시꾼들

때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꾸욱꾸욱 울어대던 새끼 복어를 누군가 다시

파도 속에 던져 넣는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 테트라포드 : 원뜻은 네발 동물. 파도 피해를 막기위해 항구의 방파제 좌우 바다 속에 집어넣는 시멘트 괴

출처 : 진영님의 플래닛입니다.
글쓴이 : 진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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