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다흘린흰소리
훔치다 /장진영
길가다/언젠가는
2015. 1. 1. 16:38
훔치다/장진영
몸뚱이마저 쓸모없다 푸념이시다, 걸레를 주신다, 먼지를 훔치면서 구석구석 흘리셨던 한숨까지 훔쳤다, 올겨울 자식 집에 머물면서 인색했던 공경이나 훔치시라 했으나 홀로 피고 지는 자괴화自塊花를 피우셨나 홀대忽待꽃을 보셨나 “머니머니해도 살던 집이 조아야” 하시면서 떠나셨던 어머니,
온기 남은 자리를 훔치다가 반들반들 꿰인 108염주를 보았다, 반야의 빛이었다, 얼마나 많은 날이 손끝에서 흘러갔을까, 새벽빛 합장으로 몸을 일으킨 곡진한 두 무릎은 근심으로 수척해졌을 것인데, 그 누구도 눈물 한 점 훔쳐 주지 못했다.
몸에 고인 물기를 다 쏟으시고 지문은 모두 저 염주에게 내주었다, 지문이 길을 만들고 자식들 뿔뿔이 그 빛을 따라 떠났다, 어머니를 훔쳐 나 여기까지 왔구나, 눈마저 살점마저 나눠줘 버리고서 잡히지 않는 머리칼을 줍고 계신 앙상한 어머니, 박제되어 가는 한 마리 새 같다, 손바닥에 얹으면 잠드시겠다, 날아가시겠다. [2014 겨울호- 시와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