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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초의선사-茶神傳, 東茶頌

길가다/언젠가는 2010. 1. 13. 13:20

 

 

 출처-우리 茶의 재조명<조선 후기의 다인들>에서 -최계원 지음

 

스님은 正祖 10年, 1786年(丙午年) 全南 務安郡 三鄕面에서 태어 나셨다. 俗家 姓은 張氏, 本貫은 興城, 字는 中孚(중부), 나이 15歲에 出家하시니, 法名은 意恂(의순). 艸衣(초의)는 法號(拈花之號).

이밖에  여러가지 號가 있는데, 그중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一枝庵(일지암), 海師, 艸師 等이 있다.

 

   스님은 임금으로 부터, 大覺登階 普濟尊者 艸衣大禪師라는 號를 下賜받으신 바, 스님이 茶僧만의 스님이 아니고, 詩 書 畵 三絶에 德이 높으신 高僧이었던 까닭이리라.

  

   나이 15歲 되던, 1801年 羅州郡 茶道面 雲興寺(운흥사)를 찾아가, 碧峰 敏性(벽봉 민성)스님을 받들어 出家하시어 수도 하시던 중, 19歲에 이르러, 靈岩 月出山에 홀로 오르시어 暝想에 잠겨있다가, 바다에서 떠오르는 달을 보시고, 忽然 깨친 바가 있어, 이후 매사에 막힘이 없었다고 전한다.

 

   그 後, 海南 大興寺에서 高僧大德 琓虎 倫佑(완호 윤우)스님을 모셔, 具足戒(구족계)를 받으시었다. 艸衣라는 法號는 이때 받으신 것이다. 衣鉢傳人의 拈花之號(염화지호). 法統은 曹溪門人.

 

   艸衣라는 法名의 由來는 高麗 때 野雲禪師가 쓰신 自警文에 <采根木果慰飢腸, 松落草衣遮色身>이라는 글귀가 있는데, 이 글에서 빌렸다는 說과, 中國 史略에 <穴居陶居 構木爲巢 食木實衣草衣>에서 빌렸다는 說이 있다. 一說에는 의미와 무관하게, 스승 완호 대선사께서, 엤날 達磨大尊者께서, 慧可禪師에게, 自身의 法을 衣鉢(의발--옷과 밥그릇)을 내려 줌으로서 代를 잇게 하였다는 故事에 따라서 縞衣, 荷衣, 草衣라는 法號 셋을 지어 제자들에게 내려 주었다는 說도 있다.

 

   20代 중반 무렵, 강진 茶山 草堂으로 나아가 流配 中이던 茶山 先生에게 儒學과 詩書를 배워, 儒佛 양 분야에 두루 깊은 학문을 兼備하실 수 있었다. 이 무렵 스님은 丁若鏞 先生 等과 함께, 月出山 白雲洞에 들어가 같이 生活하며 詩, 書, 畵를  같이 짓고, 읽고, 그리셨는데, 이때 이 분들이 그리고 詩를 넣어 쓰고, 跋文(발문)을 쓴 作品이 白雲圖, 또는 靑山圖라 한다.

 

   30代에 들어 서울과 全州, 慶州 佛國謝 等을 돌아 다니시면서, 學識 높은 선비들과 두루 교류를 하며 知識을 쌓았고, 여러 절의 佛事에 참여, 佛殿 上樑文을 지어 모시거나, 佛敎 關聯 刊行 사업에 참여 하셨다 한다.

 

   禪師 39歲 되시던 西記 1824年 一枝庵을 지으셨다. 이후 71歲로 入寂하신 1856年까지 이곳에 居處하시었다. 그의 全 生涯를 통한 思想과 哲學이 集大成된 곳이고 우리나라 茶 文化의 聖地가 된 곳이다. 東茶頌을 저술하신 곳이 바로 이 일지암이다.

 

   禪師 53歲 되시던 1837年 봄, 東茶頌을 著戌하시니, 모두 31句頌으로 茶의 起源, 茶 나무의 모양,  茶의 效能과 製茶法, 우리 茶의 優秀性 等을 說明하시었다.

 

   禪師 55歲 되시던 1840年, 憲宗으로 부터 大覺登階普濟尊者艸衣大禪師라는 號를 받으시었다. 禪師의 學識과 큰 德이 임금에게 까지 알려져, 湖南八高의 한 사람으로 선택되었던 것이다. 당시 憲宗 임금께서는 王室에서 그림을 그리던 小痴 許鍊 先生에게, "湖南에 艸衣라는 승려가 있다는데, 그의 指行이 어떠한가?"'하고 직접 물으셨다 한다. 당시 조선사회는 佛門을 賤視하던 社會였음에 비추어 볼 때, 禪師의 學德이 얼마나 높았었나를 짐작하게 하는 逸話라 할 수 있다. 

 

   禪師 58歲 되시던 1834年에 故鄕을 떠나온지 무려 43年만에 고향을 찾으시고 詩 한 수를 남기셨다. 15歲의 어린 나이에 出家하여 실로 오랫만의 歸鄕이었다.

 

                                歸 故 鄕 詩 (귀 고 향 시)    고향에 돌아오니  癸卯年  

 

        遠 別 鄕 關 四 十 秋 (원 별 향 관 사 십 추)    고향 땅을 멀리 나가  사십년이 흘러 갔고,

        歸 來 不 覺 雪 盈 頭 (귀 래 불 각 설 영 두)    지금까지 머리카락 희어진것 알지 못했네. 

        新 基 草 沒 家 安 在 (신 기 초 몰 가 안 재)    샛골은 풀에 묻혀 있으나, 집 그대로 있고,

        古 墓 苔 荒 履 跡 愁 (고 묘 태 황 리 적 수)    무덤은 이끼로 황량하고 발자취만 슬프네.    

        心 死 恨 從 何 處 起 (심 사 한 종 하 처 기)    마음 비웠는데 한은 어디에서 일어나는고.

        血 乾 淚 亦 不 能 流 (혈 건 루 역 불 능 류)    피는 말라버렸고 눈물조차 흐르지 못하네.

        孤 丈 更 欲 隨 雲 去 (고 장 경 욕 수 운 거)    외로운 나,구름 흐르는대로  또 가려 할제,

        已 矣 人 生 愧 首 邱 (이 의 인 생 괴 수 구)    수구초심이라는 옛 말이 부끄러울 뿐이네.

 

  마음을 비우고 空門에 들어, 生死를 超越했다 해도, 根本을 더듬을 제, 어찌 마음이 明鏡이길 바라겠는가?  이 시를 살피니 오히려 大禪師의 고매한 인품과 無碍의 法心이 오히려 크게 다가옴은 어쩐 연유인지...

 

   禪師 71歲 되시던 해에, 平生 知己였던 阮堂 先生께서 作故하시었다. 두 분은 한 지붕 아래서 거의 三年 세월을 같은 밥을 드시며 지냈을 만큼 各別한 사이였다. 阮堂 死後, 知己를 잃은 허전함에서 인지, 日常 해오던 詩作이며, 著述을 中斷하시고 禪定에 드시는 일이 잦았고, 山門 밖 出入을 거의 하지 않으셨다 한다.

 

   禪師 81歲 되시던 高宗 三年 8月 2日, 몸져 누워 계시던 禪師는, 侍者를 불러, 부축하라 하신 뒤, 西쪽을 향해 跏趺坐하시고 앉아 고요함에 드시니, 歲壽 81歲요, 法臘 65歲였다.

 

다신전(茶神傳) 제1장 채다(採茶)/ 초의선사


採茶之候 貴及其時(채다지후 귀급기시)
太早 則味不全 遲則神散(태조 즉미부전 지즉신산)
以穀雨前 五日爲上(이곡우전 오일위상)
後五日次之 再五日又次之(후오일차지 재오일우차지)
茶芽 紫者爲上(다아 자자위상)
面皺者次之 團葉又次之(면추자차지 단엽우차지)
光面如篠葉者最下(광면여소엽자최하)
撤夜無雲 浥露採者爲上(철야무운 읍로채자위상)
日中採者次之 陰雨中不宜採(일중채자차지 음우중불의채)
産谷中者爲上 竹下者次之(산곡중자위상 죽하자차지)
爛石中者又次之 黃砂中者又次之(란석중자우차지 황사중자우차지)

찻잎을 따는 철은 그 시기를 귀히 여기니라.
너무 이르면 맛이 온전치 못하고, 또 늦으면 신묘함이 흩어진다.
곡우 이전 5일간이 제일 좋은 철이요, 다음 5일간이 두 번째이며,
그 다음 5일간이 세 번째 좋은 철이로다. 차 싹은 자색이 돋는 것이 제일이요,
잎 면이 주름진 것이 다음이며, 동그랗게 말려진 것이 그 다음인데,
조릿대 잎처럼 잎이 펴져 번뜩이는 것은 최하니라.

어둠이 물러갈 무렵에 밤이슬을 머금은 것을 딴 것이 제일 좋고,
해가 떠오른 이후 낮에 딴 것이 다음이며,
구름이 끼거나 비가 올 경우에는 마땅히 찻잎을 따지 아니한다.
산 속 계곡에서 생장하는 것이 제일이고, 대나무 아래에서 자라는 것은 두 번째이며,
자갈밭에서 자라는 것이 세 번째인데, 누런 모래땅에서 자라는 것 또한 세 번째이니라

* 다신전(茶神傳)
다신전은 차 생활에 필요한 차의 지침서로서 스님이 45세(1830년) 때에
일지암에서 정서해서 펴낸 것이다. 다신전은 스님의 완전한 창작이 아니고
중국의 [만보전서(萬寶全書)]라는 백과사전 속에 수록되어 있는
[채다론(採茶論)]의 원문을 초출(抄出)해 내서
제명(題名)을 하고 발문(跋文)을 달아 만든 책이다.

그러니까 스님이 43세(1828년) 때 여름에 지리산 칠불선원(七佛禪院)에 갔다가
그곳에서 등초(謄抄)해 가지고 와서 사원에서 차를 알고자 하는 이가 많아
그 2년 뒤인 경인년 봄에 책명을 [다신전(茶神傳)]이라 하고
그 경위를 말미에 달아 한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이 책의 체제와 내용을 보면 전부 22개 항목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채다(採茶), 조다(造茶), 변다(辨茶), 장다(藏茶), 화후(火候), 탕변(湯辨),
탕용노눈(湯用老嫩), 포법(泡法), 투다(投茶), 음다(飮茶), 향(香), 색(色), 미(味),
점염실진(點染失眞), 다변불가용(茶變不可用), 품천(品泉), 정수불의다(井水不宜茶),
저수(貯水), 차잔(茶盞), 식잔포(拭盞布), 다위(茶衛)]등(等)이다. 
그리고 말미에 발문(跋文)을 달아 놓았다.

다신전(茶神傳) 제2장 조다(造茶)


新採揀去 老葉及枝梗碎屑(신채간거 노엽급지경쇄설)
鍋廣二尺四寸 將茶一斤半焙之(과광이척사치 장다일근반배지)
候鍋極熱 始下茶急炒 火不可緩(후과극열 시하다급초 화불가완)
待熟方退火 徹入篩中 輕團那數遍(대숙방퇴화 철입사중 경단나수편)
復下鍋中 漸漸減火 焙乾爲度(부하과중 점점감화 배건위도)
中有玄微 難以言顯(중유현미 난이언현)
火候均停 色香全美(화후균정 색향전미)
玄微未究 神味俱疲(현미미구 신미구피)


새로 따온 찻잎은 늙은 잎과 억센 줄기 그리고 부스러기 등을 골라 버리고,
솥의 넓이가 두 자 네 치(지름 78㎝)의 큰 가마(노구)솥에
곧바로 차 한 근 반(885g)을 덖노라. 솥이 아주 뜨거워졌을 때
비로소 찻잎을 넣고 급히 덖는데, 이때 불의 세기를 낮추지 말아야 하며,
차가 익으면 솥에서 꺼내 넓은 어레미에 펼쳐 놓고
가볍게 주물러 비기기를 여러 번 하니라.

다시 솥 속에 넣고 점점 불기운을 약하게 하면서 알맞게 건조를 하다보면,
그 속에는 현묘함이 숨겨져 있는데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도다.
불을 균정하게 잘 다루면 차의 색과 향기가 모두 좋으나,
현묘함이 숨겨져 있음을 헤아리지 아니하면 차의 신묘함은 모두 사라지게 되노라.

 

다신전(茶神傳) 제3장 변다(辨茶)


茶之玅在乎 始造之精(다지묘재호 시조지정)
藏之得法 泡之得宜(장지득법 포지득의)
優劣定乎始鍋 淸濁係乎末火(우열정호시과 청탁계호말화)
火烈香淸 鍋寒神倦(화열향청 과한신권)
火猛生焦 柴疎失翠(화맹생초 시소실취)
久延則過熟 早起却還生(구연즉과숙 조기각환생)
熟則犯黃 生則着黑(숙즉범황 생즉착흑)
順那則甘 逆那則澁(순나즉감 역나즉삽)
帶白點者無妨 絶焦點者最勝(대백점자무방 절초점자최승)

차생활의 묘락(妙樂)은 차를 처음 만드는 지극정성(至極精誠)에 있고,
차를 잘 저장(貯藏)하는 방법을 터득함에 있으며,
차를 정결(淨潔)하게 우려내는 기술을 얻는데 있도다.

차의 품질(品質)이 좋고 나쁨은 처음 덖는 솥에서 결정되고,
차의 맑고 탁함은 마지막 건조(乾燥)하는 불과 관계가 있노라.

불길이 사나우면 향기(香氣)는 맑지만, 솥이 식으면 신묘(神妙)함이 부족하게 되며,
불길이 맹렬하면 차가 타게 되고, 불길이 약하면 비취색(翡翠色)을 잃게 되노라.

오래 덖으면 너무 익어버리고, 솥에서 일찍 꺼내면 도리어 설익게 되는데,
너무 익은 즉 누런색을 띠게 되고, 설익은 즉 어두운 색깔을 띠게 되니라.

순리(順理)에 따르면 차는 달고 부드러우며, 역리(逆理)에 따르면 차는 쓰고 떫게 되니라.
차가 희끗희끗한 부분이 있는 것은 무방하나, 잘 덖어진 것이 가장 낫느니라.

다신전(茶神傳)  제4장 장다(藏茶)


造茶始乾 先盛舊盒中(조다시건 선성구합중)
外以紙封口 過三日俟其性復(외이지봉구 과삼일사기성복)
復以微火焙 極乾待冷(부이미화배 극건대냉)
貯壜中輕輕築實 以箬襯緊(저담중경경축실 이약친긴)
將花筍篛及紙 數重封紮壜口(장화순약급지 수중봉찰담구)
上以火煨磚 冷定壓之(상이화외전 냉정압지)
置茶育中 切勿臨風近火(치다육중 절물임풍근화)
臨風易冷 近火先黃(임풍이냉 근화선황)


차를 만들어 비로소 건조(乾燥)하려면 먼저
전부터 사용해오던 합에 넣어 바깥 입구를 종이로 막고
삼일을 경과시키면서 차의 성질(性質)을 회복(回復)시키도다.
다시 약한 불에 쬐어 극도(極度)로 말리고 식기를 기다렸다가
단지에 가볍게 쌓아 저장하는데, 대나무 껍질로 속옷 두르듯 감싸고
또 꽃처럼 피어난 대나무순 껍질과 종이로 여러 겹 단지 입구를 봉하여
그 위를 불로 구운 벽돌로써 차갑게 눌러 고정시키고, 다육기(茶育器)속에
두되 절대 바람을 쏘이거나 불에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하니라.
바람을 쏘이면 차가워지기 쉽고 불을 가까이 하면 먼저 노래지니라.

 

다신전(茶神傳) 제5장 화후(火候)

烹茶旨要 火候爲先(팽다지요 화후위선) 
爐火通紅 茶瓢始上(노화통홍 다표시상)
扇起要輕疾 待有聲 稍稍重疾(선기요경질 대유성 초초중질) 
斯文武之候也(사문무지후야)
過于文則水性柔 柔則水爲茶降(과우문즉수성유 유즉수위다항)
過于武則火性烈 烈則茶爲水制(과우무즉화성열 열즉다위수제)
皆不足於中和 非茶家要旨也(개부족어중화 비다가요지야)


*차를 달이는 요령은 불을 잘 살피는 것이 우선이로다.
화롯불이 붉게 달아오르면 탕관(湯罐)을 비로소 얹고,
부채질을 가볍게 하면서 물 끓는 소리가 나면 점점 세게 부치는데,
이것을 문무지후라고 하니라. 불길이 너무 약하면
물의 성질이 유순(柔順)해지고, 유순하면 차가 가라앉게 되며,
불길이 너무 강하면 불의 성질이 맹렬(猛烈)해지고, 맹렬하면 차가 뜨게 되니라.
이는 모두 중화에 부족한 것으로 다인들로서 불을 살피는 요지(要旨)가 아니로다.

 

 다신전(茶神傳) 제6장 탕변(湯辨)


湯有三大辨 十五小辨(탕유삼대변 십오소변)
一曰形辨 二曰聲辨 三曰氣辨(일왈형변 이왈성변 삼왈기변)
形爲內辨 聲爲外辨 氣爲捷辨(형위내변 성위외변 기위첩변)
如 蝦眼 蟹眼 魚目 連珠(여 하안 해안 어목 연주)
皆爲萌湯(개위맹탕) 直至湧沸 如騰波鼓浪(직지용비 여등파고랑) 
水氣全消 方是純熟(수기전소 방시순숙) 如 初聲 轉聲 振聲 驟聲(여 초성 전성 진성 취성)
皆爲萌湯(개위맹탕) 直至無聲 方是純熟(직지무성 방시순숙)
如 氣浮一縷 二縷 三四縷(여 기부일루 이루 삼사루)
及縷亂不分 氤氳亂繞 皆爲萌湯(급누란불분 인온난요 개위맹탕)
直至氣直冲貫 方是純熟(직지기직충관 방시순숙)

* 물을 끓이는 것은 크게 세 가지로 분별하고,
작게는 열다섯 가지로 분별하니라.  첫째는 물이 끓는 모양으로 분별하기요,
둘째는 물이 끓는 소리로 분별하기요,  셋째는 물이 끓는 증기로 분별하니라.

형태(形態)로 분별하는 것은 탕관(湯罐)의 속을 살펴보고 분별하는 것이요,
소리로 분별하는 것은 탕관 밖에서 소리를 듣고 분별하는 것이며,
증기로 분별하는 것은 수증기의 모양과 소리로 민첩하게 분별하는 것이로다.

게의 눈, 새우의 눈, 고기의 눈, 구슬을 연이어 꿴 것 같은 것들은 모두가 맹탕(萌湯)이로다.
샘이 솟듯이 끓는 상태에 막 도달(到達)하여 물결이 솟아오르고 북을 치듯 끓는 것 같으면
물 기운이 모두 소멸되므로 바야흐로 이것을 순숙(純熟)이라 하노라.

처음 나는 소리, 소리가 구르듯 다소 이어지는 소리,
진동(振動)하는 소리, 말달리는 소리 등은 모두 맹탕이로다.
무성(無聲)에 막 이르렀을 때, 비로소 순숙(純熟)이라 하노라.

수증기(水蒸氣)가 한 줄기, 두 줄기, 서너 줄기 떠오르다가 줄기를 셀 수 없고,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로 뒤엉켜 오르는 수증기는 모두 맹탕이로다.
수증기가 수직(垂直)으로 탕의 수면을 꿰뚫어 솟아오르게 되면 비로소 순숙(純熟)이라 하노라.

 

 

다신전(茶神傳)  제7장 탕용노눈(湯用老嫩)
                                          

蔡君謨 湯用嫩而 不用老(채군모 탕용눈이 불용노)  蓋因 古人製茶(개인 고인제다)
造則必碾 碾則必磨 磨則必羅(조즉필연 연즉필마 마즉필라)
則茶爲飄塵 飛粉矣(즉다위표진 비분의)  于是和劑 印作龍鳳團(우시화제 인작용봉단)
則見湯而 茶神便浮(즉견탕이 다신변부)  此用嫩而 不用老也(차용눈이 불용노야)
今時製茶 不假羅磨 全具元體(금시제다 불가라마 전구원체)
此湯須純熟 元神始發也(차탕수순숙 원신시발야)
故曰湯須五沸 茶奏三奇(고왈탕수오비 다주삼기)

*  채군모는 탕수는 덜 끓여진 것을 썼고, 너무 끓여진 것을 쓰지 않았도다.
대개 옛 선인들로부터 유래되는 차 만드는 방법으로는 차를 만들 때에는 반드시
연으로 빻고, 빻은 것은 맷돌로 갈았으며, 갈은 것은 반드시 체질을 하였도다.

이럴 경우 차 티끌이 나부끼게 되고 차가루가 휘날렸도다.
이것으로 향기로운 약을 가미해서 용단(龍團)과 봉단(鳳團)을 찍어 만들고,
탕에 넣어 보면 다신이 곧 떠오르도다.
이것은 덜 끓여진 것을 쓰고 노쇠한 것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오늘날에 있어서 차를 만드는 방법은 체와 맷돌을 이용치 않고,
온전하게 갖추어진 원래의 찻잎모양 그대로를 쓰니라.
이때에 쓰는 탕수는 모름지기 순숙해야만 본래의 다신이 비로소 피어나도다.
그러므로 탕은 모름지기 순숙해야만 차는 세 가지 기이한 효력이 나타나는 것이로다.

 

다신전(茶神傳) 제8장 포법(泡法)

       
探湯純熟 便取起(탐탕순숙 변취기)
先注少許壺中 祛蕩冷氣傾出(선주소허호중 거탕냉기경출)
然後投茶 茶多寡宜酌(연후투다 차다과의작)
不可過中失正(불가과중실정)
茶重則味苦香沈 水勝則色淸氣寡(차중즉미고향침 수승즉색청기과)
兩壺後又用 冷水蕩滌 使壺凉潔(양호후우용 냉수탕척 사호양결)
不則減茶香矣(부즉감다향의)
礶熟則茶神不健 壺淸水性常靈(관숙즉다신불건 호청수성상령)
稍俟茶水冲和 然後分釃布飮(초사다수충화 연후분시포음)
釃不宜早 飮不宜遲(시불의조 음불의지)
早則茶神未發 遲則玅馥先消(조즉다신미발 지즉묘복선소)


* 탕이 순숙해짐을 감지하면 곧바로 탕관을 내려 우선
탕수를 다관에 조금 부어 냉기를 가셔내면서 깨끗이 씻어내노라.
그런 후 차를 다호에 넣되 찻잎이 많거나 적지 않게 적당히 넣어
중정을 잃지 말아야 하니라. 차가 많으면 맛은 쓰고 향기는 침중해지고,
물이 많으면 빛깔은 맑지만 맛이 부족하도다.        

두 차례 다호를 사용하고 또 쓸려면 냉수로 씻어내 다호를 서늘하고
청결하게 사용해야 하니라. 그렇지 않으면 차향이 감소하게 되니라.
다관이 뜨거우면 다신이 건실치 못하며,
다호가 맑으면 물의 성질은 마땅히 신령스럽도다.
차와 물이 잘 융화되도록 잠시 기다린 연후에 식으면 천에 걸러 마시되,
너무 빨리 거르지 말아야 하고, 너무 늦게 마셔도 아니 되니라.
빠르면 다신이 피어나지 않고, 늦으면 신묘한 향이 먼저 사라지도다.

다신전(茶神傳) 제9장 투다(投茶)

        
投茶有序毋失其宜(투다유서무실기의)
先茶後湯曰下投(선다후탕왈하투)
湯半下茶 復以湯滿曰中投(탕반하다 부이탕만왈중투)
先湯後茶曰上投(선탕후다왈상투)
春秋中投 夏上投 冬下投(춘추중투 하상투 동하투)

*차를 넣는데도 차례가 있으니 마땅함을 잃어서는 안된다
차를 먼저 넣고 탕을 다음에 하는 것을 下投(하투)라 하고
탕을 반쯤하고 차를 넣은 다음 탕을 다하는 것을 中投(중투)라하고
탕을 먼저 하고 나서 차를 넣는 것을 上投(상투)라 한다
봄과 가을에는 중투를 하고 여름에는 상투를, 겨울에는 하투를 한다.

 

다신전(茶神傳)  제10장 음다(飮茶)


飮茶以客少爲貴(음다이객소위귀) 
客衆則喧 喧則雅趣乏矣(객중즉훤 훤즉아취핍의)
獨啜曰神(독철왈신)  二客曰勝(이객왈승)
三四曰趣(삼사왈취)  五六曰泛(오륙왈범)  七八曰施(칠팔왈시)


* 차를 마시는 데에는 사람이 적은 것이 좋도다.
사람이 많으면 시끄럽고, 시끄러우면 고상한 분위기가 부족하도다.
홀로 마시면 신령스럽고, 손님이 두 명까지는 뛰어나며,
서넛이 마시면 취미를 즐김이고,
오륙 명이 마시면 들뜨게 되며, 칠팔 명이 마시면 배품이로다.

 

다신전(茶神傳) 제11장 향(香)


茶有眞香(차유진향)
有蘭香有淸香有純香(유난향유청향유순향)
表裏如一曰純香(표리여일왈순향)
不生不熟曰淸香(불생불숙왈청향)
火候均停曰蘭香(화후균정왈난향)
雨前神具曰眞香(우전신구왈진향)
更有含香漏香浮香問香(갱유함향누향부향문향)
此皆不正之氣(차개부정지기)


* 차에는 眞香(진향)  蘭香(난향) 淸香(청향)  純香(순향)이라는 것이 있다.
겉과 속이 같으면 순향이라 하고,
설익지도 않고 너무 익지도 않은 것을 청향이라 하며,
火候(화후)가 고른 것을 난향이라 하고,
비오기 전에 채다하여 싱그러움을 갖춘 것을 진향이라 한다.
또 含香(함향), 浮香(부향), 間香(간향)등이 있으나 그것은 좋지 못한 향이다.

 

동다송 (東茶頌) 제1송
 

后皇嘉樹配橘德   (후황가수배귤덕)
受命不遷生南國   (수명불천생남국)

密葉鬪霰貫冬靑   (밀엽투산관동청)
素花濯霜發秋榮   (소화탁상발추영)
枯射仙子粉肌潔   (고사선자분기결)
閻浮檀金芳心結   (염부단금방심결)

후황이 아름다운 나무(차나무)에
귤나무와 같은 덕(德)을 갖게 하였으니,
명(命)을 받아서 옮겨가지 아니하고
빽빽한 이파리는 싸락눈과 싸우며 겨우내 푸르르고,
흰꽃은 서리에 씻기어 가을정취를 빛내누나.
고야산에 사는 신선의 살결같이 희고 깨끗하며,
염부제의 단금같은 황금빛으로 꽃술을 맺었구나.

 

제2송 / 이슬을 머금은 취금의 혀

姑射仙子粉肌潔(고사선자분기결)
閻浮檀金芳心結(염부단금방심결)
沆瀣漱淸碧玉條(항해수청벽옥조)
朝霞含潤翠禽舌(조하함윤취금설)
                      
고야선인의 뽀얀 살결마냥 깨끗하고
염부단금 황금꽃술 아름답게 맺혔네
맑은 이슬 흠뻑 젖어 푸른 가지 벽옥같고
아침 안개 촉촉히 젖어 푸른 싹 새혀같네


차나무는 과로(瓜蘆)와 같고 잎은 치자(梔子)와 같으며
꽃은 흰 장미와 같고 꽃술은 황금 빛과 같다.
가을에 꽃 피니 맑은 향기가 은연하다고 한다.
이태백이 말하기를 "형주(호북성 강능현) 옥천사의
맑은 시냇가의 모든 산에 茶나무(茗艸)가 온 산에 널리
나 있는데 가지와 잎이 푸른 옥가지(碧玉條)와 같다.
옥천사 진공(眞公) 스님이 항상 그것을 따다가 茶로 마셨다."고 한다.

 

술을 깨게 하고 잠을 적게 한다

    동다송(제4송)/ 초의 선사

解醒少眼證周聖(해성소안증주성)
脫粟飮菜聞齊孀(태속음채문제상)
虞洪薦羞乞丹邱(우홍천수걸단구)
毛仙示叢引秦精(모선시총인진정)

술깨우고 잠줄인다 주공이 증언했고
거친 밥 차 한잔, 제의 안영 그랬다네
우홍은 제물올려 단구자의 차를 얻고
털긴신선은 차밭을 보이려고 진영을 이끌었네

신선이 진정을 이끌고 산 아래로 내려와
떨기진 茶나무를 가리켜 주고 떠났다가
얼마 후 다시 돌아와 주머니 속에서
귤을 꺼내어 진정에게 전해 주자,
진정이 놀 라서 茶를 등에 지고 돌아왔다고 한다.

 

제6송 : 百珍催永(백진최영) (모든 음식 가운데 으뜸이다)

巨唐尙食羞百珍(거당상식수백진)  沁園唯獨記紫英(심원유독기자영)
法製頭綱從此盛(법제두강종차성)  淸賢名士誇雋永(청현명사과준영)

당나라 음식숭상 온갖 진미 바쳤지만
공주에게 하사한 음식에 자영차만 기록됐네
茶를 만드는 요령 그때부터 성행하여
청현 명사들은 음미하고 그 맛 좋다 자랑했네


온갖 진미중에 준영이.
큰 당나라가 음식을 숭상하니 진수가 백가지이나
심원에서는 유독 자영紫英을 적었다
법제하는 강목이 이를따라 성해져 맑은 현사와
이름난 선비가 준영雋永을 떠벌렸네.


*심원은 후한 명제때 공주의 동산이 심수沁水가에 
있은데서 비롯한 것이라 한다. 
*준雋은 살찐 새고기인데 한나라 괴통이 
전국시대 때의 일을 논한 글을 지어 준영이라 했는데 
그뜻은 의미가 심장深長하다는 말이다. 
唐 德宗 每賜同昌公主饌與茶 有綠花紫英之號. 茶經稱茶味雋永. 
(당 덕종 매사동창공주찬여차 유록화자영지호 차경칭차미준영)
당나라 덕종이 동창공주에게 찬과 차를 내릴때마다 
녹화綠花와 자영의 호칭이 있었다. 차경에 차맛의 준영을 일컬었다.
*덕종은 차를 즐겼는데 흔히 소酉+禾나 후추를 가미해서 음료했다한다 
제7송 : 一染失眞(일염실진) - 다른것에 물들면 참됨을 잃는다 
綵莊龍鳳團巧麗(채장용봉전교려) 費盡萬金成百餠(비진만금성백병)
誰知自饒眞色香(수지자요진색향) 一經點染失眞性(일경점염실진성)
용과 봉을 잘도 그려 둥글고도 아름다워 
만금을 허비하며 온갖 떡차 만들었네 
누가 알랴 스스로 풍요로운 참빛깔 참향인 줄 
한 번 물들고 나면 참성품 잃어버리네 

(大小龍鳳團 始於丁謂 成於蔡君謨 以香藥合而成餠 餠上飾以龍鳳紋 
供御者 以金莊成. 東坡詩, 紫金百餠費萬錢. 
萬寶全書, 茶自有眞香 眞味 眞色 一經他物點染 便失其眞.: 
대소용봉단 시어정위 성어채군모 이향약합이성병 병상식이용봉문 
공어자 이금장성 동파시 자금백병비만전
만보전서 다자유진향 진미 진색 일경타물점염 변실기진) 
크고 작은 용봉단은 정위가 한 것으로 부터 시작해서 채군모에게서 
이루어지고 향약으로 합해 떡을 만들어 떡위에 용봉의 무늬를 꾸몄는데 
어용에 바치는 것은 금분金粉으로 이루었다. 소동파의 시에, 
자금색 떡 백개에 만전을 쓴다. 만보전서에, 
차는 스스로 참향과 참맛 참색이 있는데 한번 다른 물건에 
찍어 물들리면 쉬이 그 참을 잃는다. 
*단團은 공처럼 둥근꼴의 경단이고 병은 호떡같이 둥글납작한것 
보통 용단과 봉병으로 만들었다 송나라 웅번의 선화북원공차록에 보면 
개보말년(968-976)에서 태평흥국(976-983)초 그러니까 976년경 
처음 만들기 시잣했다 한다 찻가루를 덩어리한 것에 용봉의 무늬를 찍은 
상품말차로서 명나라초 홍무24년(1391) 부터 진상이 금지되고 엽차인 
차아茶芽로 고쳐 올리게 하고부터는 차츰 외국에 까지 탕에 우리는 
포차식 엽차가 유행하고 말차는 보기 어렵게 되어졌다. 
*정위丁謂(966-1037)는 송나라 소주사람으로 자는 위지 또는 
공언 도관을 일으키고 거듭 상서로운 물건을 올려 총애를 구하고 
재상이 되어 환관과 결탁해 정권을 전단하고 진국공에 봉해 졌으나 
인종 즉위후 지방관으로 폄직되었다가 뒤에 비서감을 지냄. 
*채군모(1012-1067)는 차록을 지은 송의 채양으로 
군모는 그의 자字 시호는 충혜 지금 복건성 선유현 사람.
 
 제8송 : 手栽全嘉(수재전가)
정성껏 가꾸고 만들어야 아름답다
道人雅欲全其嘉(도인아욕전기가) 曾向蒙頂手栽那(증향몽정수재나) 
養得五斤獻君王(양득오근헌군왕) 吉祥蘂與聖楊花(길상예여성양화)
도인이 평소에 차맛을 온전코자 
몽산 정상 오르시어 손수 차를 심으셨네 
다섯 근을 길러 얻어 군왕에게 올렸나니 
길상예와 성양화 그것이었네 

* 도인은 관습적으로 불교수도인을 두고 말해왔고 
도자道者는 도교, 부대사(497-569)는 자가 현풍이며 
남북조때 남조사람으로 결혼해서 자식을 둔 우바새로서 
낮에 품팔고 밤에 설교했으며 부대사록 심왕록이 전한다 한다.
(傅大士 自住蒙頂結庵하고 植茶凡三年에 
得絶嘉者를 號聖楊花, 吉祥 라 하고 五斤을 持歸供獻하니라:
부대사  자주몽정결암  식다범삼년
득절가자  호성양화  길상  오근  지귀공헌)
* 부대사(傅大士)는 몽산정(蒙山頂)에 암자를 짓고 
살면서 茶를 가꾸어 3년이나 결려 가장 좋은 차를 
만들어 성양화(聖楊花), 길상예(吉祥蘂)라 이름지어 
5근을 가지고 들아와 임금께 바쳤다. 

제9송: 雲澗月(운간월) 
雪花雲腴爭芳烈(설화운율제방렬)  雙井日注喧江浙(쌍정일주훤강절) 
建陽丹山碧水鄕(건양단상벽주향)  品製特尊雲澗月(품제특존운간월)
설화차 운유차 짙은 향기 다투고 쌍정차 일주차는 강절에서 이름 높다 
건양 단산 물푸른 고을에서 만들어진 운간차 월감차 질도 좋아라 

(東坡詩, 雪花雨脚何足道. 山谷詩, 我家江南採雲月+臾. 
東坡至僧院 僧梵英葺治堂宇嚴潔 茗飮芳烈 問此新茶耶 英曰 茶性 新舊交 則香味復. 
草茶成兩浙 而兩浙之茶品 日注爲第一 自景祐以來 洪州 雙井白芽漸盛 近世製作尤精 
其品遠出 日注之上 遂爲草茶第一. 
遯齋閑覽, 建安茶 爲天下第一 孫樵送茶焦丹部曰 晩甘候十五人 遣侍齋閣 此徒乘雷而摘 
拜水而和 盖建陽丹山 碧水之鄕 月澗雲龕之品 愼勿賤用 晩甘候 茶名. 
茶山先生乞茗疏, 朝華始起 浮雲효효於晴天 午睡初醒 明月離離於碧澗. 
*효효의 효는 세개의 白이 합한 글자로 밝을 효. 
:동파시 설화우각하족도 산곡시 아가강남채운율 
동파시승원 승범영즙치당우엄결 명음방열 문차신다야 영왈 다성 신구교 즉향미복
초다성양절 이양절지다품 일주위제일 자경우리래 홍주 쌍정백아점성 근세제작우정 
기품원출 일주지상 수위초다제일 둔재한람 건안다 위천하제일 손초송다초단부왈 
만감후십오인 견시재각 차도승뢰이적배수이화 개건양단산 벽수지향 월간운감지품 
신물천용 만감후다명 다산선생걸명소 조화시기 부운효효어청천 오수초성 명월리리어벽간)
소동파(蘇東坡)의 시에, "설화(雪花)를 양각(兩脚:註解)으로 
어찌 말할 수 있 을까?"라는 싯구가 있고, 황산곡(黃山谷:黃庭堅)의 
시에서도 "강남 우리 집에서 는 운유차(雲 茶) 잎을 딴다"라고 하는 싯구가 있다. 
소동파가 어느 한 사원(寺院)을 찾으니, 범영(梵英:宋僧) 스님이 사원을 
잘 단 장하여 말끔히 하고 향기 어린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에 "이 차는 햇차입니까" 하고 묻자 범영이 "차의 성질은 
햇차와 묵은차를 섞으면 차의 향기와 맛이 되살 아난다"고 하였다. 
초다(草茶)는 양절(兩浙:浙東과 浙西) 지방에서 만들어졌는데, 
양절 지방의 차 중에서는 일주차(日注茶)가 으뜸이었다. 
그러나 경우(景祐:宋仁宗 연호, 1034~ 1037)년간 
이후로 홍주산(洪州産) 쌍정차(雙井茶), 백아차(白芽茶)가 점차 
좋아 졌는데 근세에는 더욱 더 정제(精製)되어 그 품질이 
일주차(日注茶)보다 훨씬 뛰 어나 마침내 초다(草茶) 가운데 제일이 되었다. 
《돈재한람(遯齋閑覽)》에 "건안차(建安茶)는 천하 제일이다. 
손초(孫樵)가 초단부(焦丹部)에게 茶를 보내면서 말하기를 
"만감후(晩甘候) 15인을 재각(齋閣) 에 보내노라. 이 무리들은 
번개를 타고서 잎을 채취하였고 정성껏 물에 절하고 서 법제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건양(建陽), 단산(丹山) 벽수(碧水)의 월 간차(月澗茶), 
운감차(雲龕茶) 품질이 천하게 쓰여서는 안됨을 말한 것이다. 
만 감후(晩甘候)는 茶 이름이다. 
다산 선생(茶山 先生)의 《걸명소(乞茗疏)》에 
"아침 햇살에 일어나니 맑은 하 늘에 구름이 둥실거리고, 
낮잠에서 깨어나니 푸른 시냇물에 밝은 달이 어른거리 네"라고 하였다. 
제10송 : 味藥兼兩(미약겸양) 육안차 맛과 몽산차 약을 겸하다 
東國所産元相同(동국소산원상동)
色香氣味論一功(색향기미논일공)
陸安之味蒙山藥(륙안지미몽산약)
古人高判兼兩宗(고인고판겸양종)
우리 차는 중국차와 원래 같으니 
색깔 향 느낌 맛 한가지라 말해오네 
육안차는 맛이요, 몽산차는 약효라하지만 
우리 차는 둘 다 겸했다 옛사람 칭송했네 

(東茶記에 云或疑東茶之效는 不及越産이라 하나 以余觀之컨대 色香氣味 少無差 異로다 
茶書에 云陸安茶는 以味勝하고 蒙山茶는 以藥勝이라 하나 東茶는 盖兼之 矣라 
若有李贊皇, 陸子羽면 其人이 必以余言爲然也리라 하니라 :
동다기에 운혹의동다지효는 불급원산이라 하나 이여관지컨대 색향기미 소무차 이로다
다서에 운육안다는 이미승하고 몽산다는 이약승이라 하나 동다는 개경지 의라 
약유이찬황, 육자우면 기인이 필이여언위연야리라 하니라)
* 동다기(東茶記:丁若鏞 著述》에 이르기를 
"어떤 이는 우리 나라 茶의 효능이 중국 월주(越州)에서 생산된 茶에 
미치지 못한다고 의심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색(色), 향(香), 기(氣), 미(味)에서 
모두 별다른 차이가 없다. 다서(茶書)에 육안차(陸安茶)는 맛으로 뛰어나고 
몽산차(蒙山茶)는 약효가 높다 하였으나, 우리 나라 茶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겸하고 있다. 
만일 이찬황(李贊皇)이나 육우 (陸羽)가 살아 있다면 
반드시 "나의 말을 그들도 수긍하리라 믿는다" 라고 하였다
 
동다송 제11송 : 八牲還童(팔순 노인이 동안이 되다) 
還童振枯神驗速(환동진고신험속) 八牲顔如夭桃紅(팔질안여요도홍)
我有乳泉把成秀碧百壽湯(아유유천읍성수백백수탕) 
何以持歸木覓山前獻海翁(하이지귀목멱산전헌해옹)
마른 가지 되살아나듯 동안되는 영험있어 
여든 노인 양뺨이 도화처럼 붉어지네 
내 사는 곳 유천(乳泉:石間水)솟아 
수벽탕 백수탕 그 물로 끓이었네 
목멱산 앞 해옹에게 어이 갖다 드릴거나 

(李白云 玉泉眞公年八十 顔色如桃李此茗香淸異于他 所以能還童振枯 而令人長壽也
唐蘇廙著 十六湯 第三曰 百壽湯人過百息 水逾十沸 或以話阻 或以事廢 如取用之
湯已失性矣 敢問 皤鬂蒼顔之老夫 還可執弓扶矢
以取中乎 還可雄登闊步以邁遠乎第八曰 秀碧湯 石凝天地秀氣 而賦形者也
琢而爲器 秀猶在焉 其湯不良未之有也 近酉堂大爺 南過頭輪 一宿紫芋山房 嘗其泉
曰 味勝酥酪
이백운 옥천진공년팔십 안색여도리 차명향청이우타 소이능환동진고 이령인장수야
당소이저 십육탕품 제삼왈 백수탕 인과백식 수유십비 혹이화조 혹이사폐 여취용지
탕이실성의 감문 파빈창안지로부 환가집궁부시 이취중호 환가웅등활보이매원호
제팔왈 수벽탕 석응천지수기 이부형자야 탁이위기 수유재언 기탕불량미지유야
근유당대야 남과두륜 일숙자우산방 상기천 왈미승소락)
* 이백(李白)이 말하기를, "옥천진공(玉泉眞公)은 나이 여든에 
얼굴빛이 복사꽃 오얏꽃처럼 불그스레하였다. 이 차의 맑은향기가 
다른 지방에 비해 특이한 까 닭에 동안(童顔)으로 다시 돌아오고 
시든 나뭇잎이 되살아나듯 장수를 누리도록 만든 것이다."고 하였다. 
당(唐) 소이(蘇 )의 저서 《16탕품(十六湯品》 제3은 백수탕(百壽湯)이니, 
사 람은 백 번의 인내를 겪고 물은 열번 넘게 끓여야 한다. 
혹 말더듬이나 반신불 수된 사람까지도 이 차를 마시면 본성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감히 묻거니와 흰 머리가 성성하고 얼굴빛이 창백한 
노인이 다시 젊어져서, 활을 들어 화살을 쏘면 적중하고, 
젊은이처럼 활보하여 먼길을 갈 수 있는 것일까? 
제8은 수벽탕(秀碧 湯)이니, 돌은 천지(天地)의 수기(秀氣)가 
엉겨 모여 형상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을 쪼아서 그릇을 만들어도 
천지의 수기(秀氣)가 담겨 있으니, 그 탕(湯)이 불량함이 있을 수 없다. 
얼마 전에 유당어른(酉堂大爺)께서 남쪽으로 두륜산을 지나는 길에 
자우산방(紫芋山房:一枝庵)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유천(乳泉) 물을 마시고 
"물맛이 소락( 酪)보다도 훨씬 좋구나" 하였다
 
동다송 제12송 : 九難四香(아홉가지 어려움과 네가지 향기)
又有九難四香玄妙用 우유구난사향현묘용
何以敎汝玉浮臺上坐禪衆 하이교여옥부대상좌선중 
九難不犯四香全 至味可獻九重供  구난불범사향전 지미가헌구중공
구난 사향 현묘한 작용이여 
어떻게 가르칠까 저 옥보대 위 좌선하는 대중들 
아홉가지 법제 갖춰 네 향기 그윽하니 
지극한 맛 구중궁궐에 올릴 수 있겠네 

(茶經에 云茶有九難하니 一日造, 二日別, 
三日器, 四日火, 五日水, 六日炙, 七 日末, 八日煮, 
九日飮이니 陰采夜焙는 非造也요 嚼味嗅香은 非別也요 
羶鼎腥甌는 非器也요 膏薪敍炭은 非火也요 飛湍壅潦는 非水也요 
外熟丙生은 非炙也요 碧粉飄塵 은 非末也요 操艱攪遽는 非煮也요 
夏興冬廢는 非飮也라 萬寶全書에 茶有眞香, 有 蘭香, 有淸香, 有純香하니 
表裏如一曰純香이요 不生不熟曰淸香이요 火候均停曰蘭香이요 
雨前神具曰眞香이니 此謂四香이라 하니라. 
智異山 花開洞에 茶樹羅生四五十里하니 
東國茶田之廣이 料無過此者라 洞有玉浮 臺하고 
臺下에 有七佛禪院이어늘 坐禪者 常晩取老葉하야 
晒乾然柴하고 煮鼎如烹 菜羹하니 濃濁色赤味甚苦澁이라 
政所云 天下好茶가 多爲俗手所壞라 하니라 :
다경에 운차유구난하니 일일조 이일별,
삼일기 사일화 오일수 육일적 칠일말 팔일자,
구일음이니 음채야배는 비조야요 작미후향은 비별야요
전정성구는 비기야요 고신포탄은 비하야요 비단옹요는 비수야요
외숙내생은 비적야요 벽분표진은 비말야요 조간교거는 비자야요
하응동폐는 비음야라 만보단서에 다유진향, 유난향, 유청향, 유순향하니
표리여일왈순향이요 불생불숙왈청향이요 호후균정왈난향이요
우전신구왈진향이니 차위사향이라 하니라
지리산 화개동에 다수라생사오십리하니
동국다전지광이 료무과차자라 동유옥부 대하고
대하에 유칠불선원이어늘 좌선자 상만치료엽하야
쇄건연시하고 자정여평 채갱하니 농탁색전미심고삽이라
정소운 천하오다가 다위속수소개라 하니라)
*다경(茶經)에 이르기를, 차에는 아홉 가지 어려움이 있다. 
차 만드는 것 차의 품질을 감별하는 것 차를 만드는 
그릇과 차를 마시는 도구 불을 다루는 법 차에 사용되는 
물 차를 덖는 일 가루를 만드는 일 물을 끓이 는 법 차를 마시는 법. 
음산한 날씨에 찻잎을 따서 밤에 말리는 것은 차를 만드는 법(造法)에 어긋나 는 것이며, 
차 부스러기를 이로 깨물어 
혀끝으로 맛을 보거나 코에다 대고 냄새 를 맡는 것은 식별(識別)이 아니며, 
노린내 나는 솥이나 비린내 나는 것은 그릇 이 아니며, 
풋나무나 덜 탄 숯은 연료라 할 수 없고,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수와 장마비로 고인 물은 물이라 할 수 없고, 
겉은 익었으나 속이 설익은 것은 자(炙) 라 할 수 없다. 
푸르스름한 가루가 먼지처럼 나는 것은 가루를 만든 것(作末)이 라 할수 없다. 
급히 서둘러 휘젓는 것은 물 끓이는 법이 아니며, 
여름엔 실컷 마시고 겨울에 그만 두는 것은 茶 마시는 법이 아니다. 
《만보전서(萬寶全書)》에 茶에는 참 향기(眞香), 난초 향기(蘭香), 맑은 향기 (淸香), 
순박한 향기(純香)가 있다. 안팎이 똑같은 것을 순박한 향기, 설지도 않고 
너무 익지도 않은 것을 맑은 향기, 불이 고루 든 것을 난초 향기, 
곡우 이 전의 싱그러움이 갖추어진 것을 참 향기라 한다. 이를 네 가지 향기라 한다. 
지리산 화개동(花開洞)에 茶나무가 사오십 리에 걸쳐 자라고 있는데, 
우리 나 라 茶나무 자생지로 이보다 더 넓은 곳은 없다. 
화개동에 옥부대(玉浮臺)가 있 고 그 밑에는 칠불선원(七佛禪院)이 있는데, 
그곳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이 항상 찻잎을 늦게 따서 땔감 말리듯 말려 솥에다 
시래기국 끓이듯 삶으니 색은 탁하며 붉고 맛은 몹시 쓰고 떫은 茶를 만들어 마시고 있다. 
이 것이 바로 "천하에 좋은 茶가 속된 사람들의 손에 의해 버려진다"라고 하는 것이다.
[출처-다음 옥련암] 성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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