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다흘린흰소리

사랑이란 이름으로

길가다/언젠가는 2009. 12. 12. 11:21

 

  나무의 행간위엔 빈칸만이 있다, 그 빈칸을 드나든 것은 바람과 때아닌 겨울 가랑비뿐이다, 칼바람과 함박눈이라도 숨겨 놓고 봄바람 흉내로 어슬렁거리며 마당에 흩뿌려진 낙엽을 건들기도 한다, 낙엽은 온몸 맡긴 채 바람이 낸 길 따라 내 뒹굴고 창틈으로 드나든 바람 앞에 나의 텅 빈 여백은 자극된다,

  한여름 빽빽하니 박혀있던 푸르름을 이리 철저하게도 버릴 수가 있을까, 이렇게 버려야만 신춘의 싹을 기약이라도 한다는 것일까, 장독 옆에 우뚝 선 목련나무에서는 21일간의 알을 깨고 갓 태어난 햇병아리 망울 닮은 눈이 움트고 있다, 알게 모르게 시나브로 커가고 있다, 앙상한 가지 끝에 매달린 그 눈 위에는 맹장군의 위세로 덤벼드는 매찬 바람과 폭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린 눈망울은 백설문자 속에 덮여 며칠이고 꿈을 꿀 것이고 조각 햇볕으로나마 언 눈眼 비비며 목련꽃이란 환한 얼굴로 봄의 문을 열 것이다, 터질 것이다.

 

 

 

  우리들이 일궈 논 “장초60”의 마당엔 꽃망울 터진 지 오래다, 제암산, 억불산, 지리산, 하다못해 킬리만저 봉우리에서도 꽃 피웠고 지금도 터지고 있다, 멈출 줄 모르는 행진의 마당에 풍기는 향기로 살맛 난다, 엊그제는 우리들의 얘기 방에 500번째로 게재된 광님 친구 글을 보면서 뿌듯했다, 그 뒤를 이은 경탁 친구의 글맛도 냅다 좋았다, 아른거림으로 드나든 새로운 친구들의 가입도 환영하면서...친구들이 써 놓은 글 아래 덧글 모음은 환상에 가깝다, 또박또박 정성으로 가득 찬 한 마디에 눈물겹도록 좋다, 이것은 우리의 길목에서 엮고 있는 역사다,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서로의 부둥킴이다, 끈끈한 우정이다, 사랑이다, 홧팅!!

 

  묵묵히 꾸렸던 성경 친구의 뒤를 이어 춘성 친구의 열정과 운영위 소임에 정성을 다하는 종채, 승한, 연자 친구의 따뜻함에 찬사를 보내면서 길가다 흘린 사랑이란 이름을 건다.

 

 출처ㅣ장흥초등학교 60회/천년학 세트장에서 

 

 

 

 

 

사랑이란 이름은 /길가다

 

 

  사랑 앞에 이해한다는 것은 오만한 포식동물의 포장이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허상의 그림자를 뒤에 놓고 간교한 미소, 가냘픈 갈대의 시늉을 모방한 순간의 아름다움으로 현혹시켰던 양귀비의 속셈이었는지 모른다. 사랑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쌓아 올린 오해라는 삽질 모아 모래 탑을 쌓고 식어가는 달빛에도 사르르 무너졌던 가슴앓이로 시작된 슬픈 이름이었다. 사랑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으며 이별만큼 아픈 사연 어디 있으랴만,

  그 누구를 그 무엇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별마저 사랑할 줄 아는 달금질에 굳어진 뜨겁다가 차갑기도한 심장으로 사랑과 이별의 성분마저 아랑곳하지 않고 용광로에 이글대다, 그 무엇이란 하나로 껴안을 수 있을 만큼 가슴 넓은 철인의 몫일 수밖에 없다.

  사랑 뒤에 슬픈 숫자를 세어보라. 눈물, 그리움, 외로움, 욕심, 절망 앞에 시달리다, 끝내 목매 달임, 끊임없이 밀려드는 고독과 지울 수 없는 상처자국 흔적 끝에 피고 지는 애환의 꽃잎들여,

  지금도 너와 나는, 병든 사랑이라도 갈구하는 어리석고 천진스럽기도 한, 사랑의 아편쟁이들일지도 모른다. 사랑한다는 것은 꼭 갖고 싶다는 심보를 바닥에 깔고 몹쓸 세균처럼 퍼지는 불행의 덫일 지를 몰랐던가, 달을 보라, 해를 보라, 산과 들, 바다 위에 떠있는 허공에서도 길을 내는 바람 소리 듣자구나. 별들의 속삭임도 듣자구나, 보여주고 들려줄 뿐, 가지려 해도 나의 것만이 될 수 없었기에, 그 사랑으로 동경(憧炅)은 영원한 것을,

  달 아래 그림자 놓고 어머니를 불러보라, 보름달 같은 얼굴로 다가선 어머니, 별처럼 해맑은 망울로 다가선 어머니의 사랑은 비춰주고 주기만 했을 뿐, 어머니의 어머니, 수많은 어머니의 이름이 그렇듯이, 사랑의 눈물로 푹 패인 눈시울 깜박이며 사랑의 이름으로 노래하신 어머니의 노래여, 어머니, 그런데요, 어머니께서 주고 주고 다 퍼주시고도 마르지 않고, 슬프지 않은 꼭 아문 그 사랑의 비결 하나, 오늘 밤 귀뜀 해 주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