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하루

2009년 상반기 시인세계 당선작/노지연

길가다/언젠가는 2009. 2. 25. 23:07

 

세상의 모든 저녁

--------------------------------노지연

 


당신의 신전 속에는 구름이 구어지는 상점*이 있지
나는 따끈한 달과 별과 바람을 넣고 달콤한 구름을 만들거야
당신의 신전이 모든 어둠을 어둑어둑 집어먹기 전에

 

1복제품, 달

 

잘 익은 달을 허공에 깨트려 먹는 맛!

움푹 패인 달이 휘청거리며
느릿느릿 자신의 늘어난 태엽을 감아 올린다
윤기 나는 밤이 감은 눈을 뻔쩍 뜨며
헐렁한 그림자들의 나사를 조인다
차곡차곡 진열된 어둠들이 짧게 흔들린다
복제된 달의 그림자들이
정육점의 고깃덩어리처럼
신전의 허방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어둠의 입술에 흥건한 침이 고인다
복제된 달이 담쟁이넝쿨처럼 일제히
신전의 기둥을 휘감는다
어둠이 휘발성이 되어
비닐봉지처럼 붕붕 날아오른다
허공으로 후드득 증발한다

 

2 바람의 신전

 

당신이 당신의 신전에 앉아 기도 할 때
나는 당신의 신전에 걸린 바람을 걸쳐 입고
당신을 복제하지

점점 달이 떠올라
나는 자꾸만 기침이 나와
사실, 이건 오래 전
우리 몸 속에 내재된 어둠의 본능이지

나는 당신을 입고
당신은 나를 입고
우리를 스쳐 지나가던 바람들이
끊임없이 당신과 나를 복제하지
매일매일 당신과 내가 늘어나지

어둠이 늑대처럼 갸르릉
기침을 하며 몰려오지

 

3 구름 BASKIN ROBBINS 31

 

복제된 달을 좋아해
차가운 핏방울 냄새를 사랑해
이 세상 모든 복제품들을 구워줘
모락모락 피어나는 바람을 넣고
뭉텅뭉텅해진 구름을 먹을 테야
입 한 가득 번져오는 차가운 빗방울!

낡은 태양을 구워 넣은 체리주빌레와
그림자들을 노릇노릇 구워 넣은
파스타치오 아몬드를 먹어봐

점점 모호해지는 어둠의 경계
눈 녹듯 사라지는 구름들을
한 입 가득 털어 넣고

신전 위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나
당신의 신전 속에는 구름이 구워지는 상점이 있지

 

*김중일의 시 '구름이 구어지는 상점' 에서 인용

 

 

*노지연: 1991년 출생. 고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학과 2학년 재학 중.

추계예술대학교 고교생 백일장 장원. 명지대학교 고교생 박일장 차상.

전북대학교 고교생 백일장 차상등

 

*시인회의에서 따옴/글쓴이;김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