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하루

[스크랩] 참깨를 털면서- 김준태

길가다/언젠가는 2008. 9. 25. 21:39

 

 

출처-다음카페/풀천지

 

  

   참깨를 털면서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 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년을 가차이 살아 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낸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 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김준태(金準泰, 1948~   ) 전남 해남출생의 시인

    조선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목요회(木曜會)》동인으로 활동

    1969년《전남일보》《전남매일》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시인>,<머슴>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

    1977년 첫 시집 <참깨를 털면서> 발간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당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발표한 이유로 해직됨

    조선대학교 인문대 초빙교수 역임

    작품 경향은 산업사회하에 붕괴되어가는 고향을 주로 노래했으나 1980년 광주민중항쟁 이후부터는

    광주사랑, 공동체정신, 생명중시, 인간해방, 식민문화 극복, 참나라·참세상을 열망하는 시를 썼음

    시집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었다>(1981), <국밥과 희망>(1984), <불이냐 꽃이냐>(1986), <넋통일>

   (1986), <아아 광주여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1988), <칼과 흙>(1989), <꽃이 이제 지상과 하늘을>

   (1994)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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