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다흘린흰소리

어느 벗에게 느닷없이,,자바자바 셔츠(오규원)를 받고

길가다/언젠가는 2007. 8. 26. 14:39

  몇 해 전, 어느 친구에게 느닷없이 재밌게 읽혀지는 시이니 감상 잘 하고 속내 바르라하면서 오규원 선생님의 "자바자바 셔츠"시를 보내 왔다, 몇 번이고 읽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재밌었고  읽으면서 시장통의 그림도 나의 옛 풍경-[방방 곳곳 길거리며 백화점이며 빈 건물의 공간을 빌어 양말이며 속곳, 넥타이, 주로 덤핑-일명, 삥이라고도 함) 장똘뱅이 (1992~2004)시절도 그리면서 감히 어설프게나마 바르기(감상)로 했다,

 

 

자바자바 셔츠

 

오규원

 

 

자아바, 자아바

쿵(발을 구른다)

고올라, 자바

짝짝(손뼉을 친다)

아무놈이나

쿵, 짝짝

 

자아바, 자아바

쿵(발을 구른다)

고올라, 자바

짝짝(손뼉을 친다)

 

여기는 남대문 시장 오후의

난장이다 티이를 파는 李씨는

리어카 위에 올라 肉鐸을 친다

하루의 햇빛은 쿵 할 때마다 흩어지고

짝짝 손뼉에 악마구니처럼 몰려오고

여자들은 제각기 두 발로 와서

李씨의 가랑이 밑에 허리를

구부린다 엘리제 카사미아 캐논 히포

아놀드 파마 새미나 마리안느를

두 손으로 잡는다 건방진 여자들은

한 손으로 제 얼굴까지 바싹 끌어당긴다

 

상가의 건물은 金剛의 영혼으로

여자들의 어깨를 짚고

여자들은 우뚝 선 李씨 무릎 아래 엎디어

 

자아바, 쿵

(잡는다)

고올라, 자바

짝짝

(골라 잡는다)

고올라, 고올라

(잽싸게 고른다)

자바자바

(끌어당긴다)

 

여기는 서울의 난장이다

李씨는 잡히는 대로 티이를

구석으로 팽개친다

 

자바자바

그놈

골라 자바

그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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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시집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우리는 이 시집을 통해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 가는

한 시인의 고뇌와 열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마치 예리한 칼끝으로 파서 새긴 것 같은,

타락하고 상품화된 세계에 대한 냉정한 비판과 독특한 시각이 행간마다,

글자 하나 하나마다 드러나 있습니다

 

 

  읽은 이로 하여금  청각과 시각을 열게 하는 현장감 넘치는 시(詩)다. 첫 무대 장치를 전통시의 형태를 접고 시장통 길거리의 행인을 부르는 호객꾼을 등장시켜 야설(野說)적이면서 풍자적으로 전개, 무엇인가를 호소하려는 힘찬 메시지로 들려진다.

  중간 연의 부분, 타이를 펼치고 행인보다 높은 위치에서 메이커(현대문물)에 발광하는 여자들을 질타한다. “히포 아놀드 파마 ,,,,,,마리안느를 잡는다. 건방진 여자들은 한 손으로 고른 타이를 쥐고 이것도 부족해 행상하는 사내의 얼굴마저 바싹 끌어당긴다.”  부분에 있어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심적 표출의 핵심을 엿보는 것 같다.

  다른 각도로 보면 현실의 무대는 여자로 하여금 상당한 몫을 할애 당했고 여자는 그 할애된 몫으로 날개를 달고, 활보하는 허상과 무모함, 사치성을 질타하는 시인의 비아냥이 엿 보인다.

  이것도 부족해 금강의 영혼으로 세워진 육중한 집(상가)의 벽은 혹여, 여자들의 어깨에 의해 지탱되어지는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소비문화 면목을 조명함으로써 여성의 반목이 보여 지기도 한다. 이씨의 무릎 밑에서 좌판위에 펼쳐있는 타이를 고르는 여자들의 모습이 초라한 여운으로 남겨지기도 한다. 마지막 연의 ‘그놈’이란 매끄럽지 않은 시어를 반복 선택함으로써 현실의 부당성과 내면의 불안한 정서를 끄집어내어 고발하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이것이 서울의 난장이고 요즘 현실의 난장판인가 보다,

 

 

 남의 시를 감상하고 그 느낌을 말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어려운 일이며 위험한 일이다. 아름답고 순수한 수많은 시들을 어설픈 평론가나 학자로 하여순수성이 탈색되는 경우를 수없이 봐왔고 지금도 진행 중 이다.

 우리들은 현실 떠나 살 수 없듯이 시 또한 시대성의 몸부림 속에서 고뇌하고 호소하고자 하는 것을 각자는 글로 표현한다. 시도 시대에 따라 변천하며 살아있는 생명체임에 부인할 수 없다.

  90년대 이후 일명 중앙문단과 지방문단의 양 갈래에 갈등과 혼돈으로 방황하는 시인의 그림자 역력하다.

  문인들은 빈부의 격차(유명세-베스트 북)는 빈익빈 부익부(*질과 양은 형평성을 잃고- 메스컴, 평론가, 교단, 문학단체, 중앙문단의 허와 실, 출판사와 서점의 픽션등등-독자들을 농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현실에 더 이상 저항되지 못했고 아쉬움의 여운을 떨치지 못하고  십만?이 넘은 시인은 뇌하고 있는 현실이다. 서정시의 순수한 갈증으로 있다.

 내면의 맑은 영혼이 힘을 잃어가는 주눅 든 이름 없는 시인의 모습이 초라해진다.

그러나 나의 영혼을 팔아 가면서까지 억지의 글은 결코 쓰지 않을 것이다.

  일 년에 한 두 편의 글이 나에게 온다면 한 두 편의 글에 만족할 것이며 감사해야 할 것이다, 

  절필의 불안도 많았다,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얼마나 괴로워했고 몸부림의 밤이 있었던가,

  학창시절부터 어설픈 습작을 밤새 하였던 몸부림과 마라톤 타자기의 토닥거림 뒤, 나부랭이 시에 흥분을 아끼지 않았던 순수의 그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며 유효하고 있는 자신은 계속 될 것이다.

  학창시절 민중이니, 민족이니, 모더니즘, 휴머니즘의 수많은 갈래의 혼돈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더 순수하고 겸허한 내면의 맑은 영혼을 향하여 찾을 것이다. 서정주의 국화와 김춘추의 생명의 꽃노래를 더 사랑 할 것이며 백석, 한용운, 김수영, 박목월, 유치환, 한용운, 천상병,,,,,,수많은 맑은 영혼으로 노래했던 시인들의 시를 사랑할 것이다.

  한용운의 ‘임’은 광복과 함께 아름다운 연인의 상像으로 간직 할 것이며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의 ‘봄’또한 순수한 우리들의 서정으로 간직 할 것이다.

   이왕 시에 대해 종알거림을 끄집어 내었으니 - 한국문단을 그런대로 자리 잡고 계신 신경림 시인의 얘기를 잠깐 하겠다.

  어느 날, 어느 학교에 ‘작가와의 만남‘이란 강단에서 강의를 마치고 신경림 시인의 자작시가 박혀진 시험지를 그 학교 국어 담당 선생이 신경림 시인에게 주면서 풀라고 하였다.

  10문제였던 걸로 기억된다. 그런데 신경림 선생의 자작시를 직접 신경림 선생이 맞춘 답은 3~4문제 뿐 이었던 것이다.

  신경림 시인께서는 이것을 보고 한국문단과 교육의 허실을 한탄하였고 진정한 시(감상, 창작....) 교육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문단의 현실이고 모순이라 난 조심히 생각된다.

  우리들은 더 이상 부끄럼 없는 시를 써야 할 것이다.평가 받기보다는 죽어서 떳떳이 후손에게 읽혀지고 그 맑은 영혼을 자랑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내문서를 뒤적이다 2005년 05월-